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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한 푼 안내는 의사들 엄청 많다

중소 종합병원 의사들 신고액은 실급여의 절반 수준…신고액에 대한 세금도 병원 몫

세금 한 푼 안내는 의사들 엄청 많다

세금 한 푼 안내는 의사들 엄청 많다
서울시 서대문구 A종합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김모씨(41)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돈으로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세금뿐만 아니라 의료보험과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험료와 국민연금, 심지어 주민세도 낸 기억이 없다. 김씨와 함께 근무하는 전문의 30여명도 상황은 마찬가지. 관할 세무서는 장부상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탈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뿐, 그 어떤 방지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중소 종합병원 의사들의 급여지급 명세 자료는 투명한 ‘유리상자’에 갇혀 정직하게 세금을 물고 있는 일반 봉급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100∼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에서는 의료법인의 이사장이나 병원장이 직접 전문의들의 ‘집단탈세’를 주도하고 있었다. 병원장과 의사 간의 탈세 커넥션은 워낙 은밀하게 진행돼 일부 간부직원을 제외하고는 직원들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다.

A병원의 급여명세 자료에 드러난 김씨의 지난 10월 세무서 소득 신고액은 350만원. 의사들 중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신경외과 전문의의 월급이 350만원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이에 따른 갑종근로소득세와 주민세,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을 모두 합해 57만6800원이 월급에서 공제돼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이 병원 경리과에서 매달 25일 김씨의 통장으로 실제 입금하는 총 급여액은 800만원, 지급명세 내부자료에도 김씨의 총 급여액을 800만원이라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결국 김씨는 450만원의 소득에 대한 세금과 각종 공공보험료를 탈세하고 누락한 셈이다. 그렇다면 김씨는 350만원 부분에 대해선 급여명세대로 세금과 보험료를 낸 것일까.

“매달 800만원을 김씨의 이름으로 무통장 입금하고, 350만원에 대한 세금과 여타 공제액 부분은 병원에서 일괄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전공과별로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습니다. 송금자도 김씨이고 수취인도 김씨이기 때문에 꼬리가 잡힐 염려가 없죠.” 기자에게 관련 자료를 넘겨준 이 병원의 한 관계자는, 결국 김씨를 비롯한 이 병원 전체 전문의 가운데 개인이 내는 세금은 한 푼도 없다고 증언했다.

“세금 문제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그런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세금 포함해서 857만원으로 계약하면 됐는데 병원에서 편리를 봐준다기에…. 저희들은 퇴직금도 없는데 뭘 그러십니까?” 김씨는 450만원에 대한 탈세액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병원에서 납부하는 세금과 보험료 부분만 자신이 (그것도 병원에서 받아서) 더 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강남구의 B종합병원. 병상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 병원의 의사들도 ‘세금 한 푼 안내는 의사들’이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정액제로 되어 있는 월급의 지급방식이 무통장 입금 방식이 아닌 병원장 직불 방식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경리과 직원도 믿지 못해 병원장이 직접 현금이나 자기앞 수표를 병원장실에서 매달 의사들에게 지불한다는 것.

이 병원 내과 전문의 이모씨(39)의 실제 총급여는 600만원. 이 중 세무서 신고액은 310만원, 갑근세와 보험료 등을 합한 공제액 52만원(310만원에 대한)을 병원에서 납부해 주고 있었다. 소아과 전문의 강모씨(37)도 실급여액 450만원 중 280만원만을 신고하고, 그에 대한 공제액 45만여원은 병원에서 해결해 주고 있다(‘표’ 참조).

“대학병원과 초대형 종합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 종합병원이 모두 같다고 보면 됩니다. 정액제가 아니면 의사들이 오려고 하지도 않아요. 실제 소득기준으로 신고를 한 뒤 병원에서 그들의 세금과 보험료까지 대납해주려면 부담이 현재의 세배 이상으로 커집니다.” B종합병원 기획실장 이모씨(46)는 의사들의 세무서 신고금액은 실제 급여액과 전문의 연차에 관계없이 병원 간부직원 월급보다 조금 많은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귀띔했다. 일부 병원들 중에는 일반 직원들보다 의사 수입을 낮게 신고했다가 세무서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매년 20만원이나 30만원씩 신고금액을 올려, 세무서의 의심을 피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심지어 연말정산 때 추가납부 지시가 떨어져도 병원이 이를 물어줍니다. 의사들은 연말정산이란 개념 자체를 몰라요. 관심도 없고…. 어쨌든 자신의 손에 매달 약속한 금액의 돈이 쥐어지면 되는 거죠.”

이씨는 중소 종합병원들의 탈세가 결국은 관행화된 의사들의 ‘정액 계약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부상엔 정식 직원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들 의사는 세금에 관계없이 매달 얼마씩의 정액을 받는 계약직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병원을 그만둬도 퇴직금이 없다.

“의사 사회 안에 공식단가가 형성돼 있습니다. 지방일수록 전공과별 월급단가는 더 높아집니다. 그래서 탈세규모도 더 커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구시 달서구 C종합병원의 송모 이사(39)는 종합병원 의사들의 탈세관행이 전문의를 구하기 힘든 지방일수록 더욱 심하다고 전했다. 이 병원은 정액제 의사의 소득을 일반 직원들의 급여수준보다 낮게 신고했다가 관할 세무서로부터 경고를 받은 케이스. 그러나 세무서측은 탈세액에 대한 추징은 하지 않은 채 병원에 소득신고액을 높여줄 것만을 요구했고, 병원측은 신고액을 약간 올리는 선에서 ‘합의’했다.

원천세인 갑근세가 자진신고액에 따라 세금이 결정되는 일반사업자의 종합소득세와 같이 ‘흥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세무서의 경고 이후에도 이 병원 전문의들의 탈세는 계속됐다. 월급 총 지급액이 800만원인 이 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의 소득신고액은 아직도 절반 수준인 400만원에 그치고 있으며, 세금을 포함한 전체 공제액 73만2200원도 병원에서 대납해 주고 있다. 내과 전문의는 600만원에 300만원 등으로 전체 중소 종합병원에서 실급여액과 신고액의 비율이 2대 1로 정형화되고 있다는 게 송이사의 주장이다.

“문제는 신고 금액 이외의 월급과 세금부담액을 어떻게 지급하느냐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병원 수입으로 나머지 월급을 지급했다가는 세무서에 적발될 것이 뻔하고….” 서울시 A병원 김모원장(49)은 30명에 가까운 전문의들의 ‘탈세’를 돕기 위해 인건비 명목으로만 매월 1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해 놓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큰 폭으로 줄기는 했지만, 의약분업 이후에도 입원환자용 약품 선택 수수료(랜딩비)와 특정 상품명의 약을 처방함으로써 얻는 처방전 리베이트가 비자금 조성에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난해 11월 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를 도입했음에도 약품의 ‘할인’ 구입으로 인한 수입도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결국 의사들의 탈세를 위해서 병원장이 비자금을 챙겨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종합병원 하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병원장들의 비자금 조성이 한계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죠. 비자금이 없으면 탈세를 못하고, 탈세를 못하면 의사 월급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대한병원협회의 한 관계자는 의약분업과 의료계 폐업으로 병원경영이 악화되면서 병원협회 내부에서도 종합병원 전문의들의 탈세와 병원의 세금대납 행태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전했다.

99년 11월15일 12.8% 인상, 2000년 4월1일 6.0% 인상, 7월1일 9.2% 인상, 9월1일 6.5% 인상…. 지난 1년간 정부는 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도와 의약분업에 따른 손실 보전 차원에서 의료보험 수가를 무려 4차례나 인상했다. 이로써 생긴 국민 추가부담은 3조1855억원이고, 내년까지 5000억원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앞으로 시민들은 의사들의 줄어든 수입을 보전해주기 위해 연간 8만원씩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납세 의무를 저버린 의사들이 국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0.11.30 261호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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