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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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사업 창구 한개로는 벅차디요”

北, 아태평화위 업무 민화협·민경련에 분담…‘창구 다변화로 효율성 제고’ 목적인 듯

  • 입력2005-05-31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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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남사업 창구 한개로는 벅차디요”
    북한 당국이 대남-대외사업 창구의 다변화로 업무조정을 꾀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대외사업에 주로 나서는 북한측 핵심인사들의 역할분담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와 같은 창구 다변화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변화된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의 지형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내부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의 흐름이 포착된 것은 지난 10월부터다. 먼저 북한에 그동안 식량 및 물자 지원을 해온 민간단체들이 제3국에서 북한측과 접촉하거나 북한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북 정보수집을 통해 북한 대남-대외사업 창구의 다변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온 정부 당국은 이들의 북한 주민 접촉 결과 보고나 방북 결과 보고서를 통해 그같은 변화를 재확인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북한 당국이 그동안 사실상 대남-대외업무의 유일 창구였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이하 아태평화위) 업무의 상당 부분을 민족화해협의회(위원장 김영대·민화협)와 민족경제협력연합회(회장 정운업·민경련)로 이관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그 배경을 “그동안 아태평화위가 도맡아온 대남-대외 업무를 기능별로 분산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민화협은 민간 교류협력, 민경련은 경협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에 갑자기 만들어진 아태평화위는 ‘민간단체’다. 지난 10월 평양에서 만난 아태평화위의 한 고위관계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국가들과의 친선과 평화를 도모하는 민간단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아태가 민간단체이지만 실은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에도 관여했으며 현대와 삼성 그리고 평화자동차(통일교) 같은 남쪽의 여러 부문과 사업을 해왔다”고 말해 사실상 민간단체의 형식을 띤 노동당 외곽조직임을 감추지 않았다.



    아태평화위의 위상은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김용순 위원장은 자신의 직계이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의 막후 주역인 송호경과 대일 외교의 주역 이종혁, 그리고 대남사업 전문가로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수석대표)인 전금철(전금진) 등 쟁쟁한 인사들을 부위원장으로 거느리고 있다. 또 현대 정몽헌 회장의 상대역을 맡고 있는 강종훈을 아태평화위의 실무를 도맡는 사무총장격인 서기장으로 거느리고 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의 외곽조직인 아태평화위는 당초 미국-일본과의 민간교류를 겨냥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미-대일관계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사실상 남북관계에만 전념해왔다. 특히 아태평화위는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같은 대형 대북 프로젝트를 성사함으로써 대북사업을 추진하려는 남측 인사들 사이에서 “모든 길은 아태로 통한다”고 말이 나올 정도였다.

    따라서 창구 다변화로 대남-대미-대일관계를 총괄했던 아태평화위의 권한이 분산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북-대외관계의 변화에 맞춰 아태의 총괄 지휘 아래 대남-대외사업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소요 인력 및 담당기관 등의 업무조정이라는 관측이 더 유력하다. 아태평화위로서는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한 일정을 소화하고 급증하는 대남사업을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일수교협상 같은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밀려들자 업무의 분산-이양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주목할 변화는 그동안 아태평화위가 전담해온 대남사업 가운데 민간 대북지원 및 교류협력사업은 민화협, 대남 교역 및 경제협력사업은 민경련으로 창구를 이원화한 것이다. 따라서 아태평화위는 두 기관을 창구로 대남 교류협력 및 경협을 총괄지휘하면서 대미-대일 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태평화위의 한 관계자는 “그간 아태가 상대해온 현대와 삼성과의 사업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규모가 큰 남한 대기업과의 대북 프로젝트는 아태평화위가 관장할 것임을 시사했다.

    창구 다변화는 방북에 필요한 초청장의 초청 주체가 달라지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통일부 교류협력국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북측 초청기관이 아태로 단일화되어 있었으나 지난해부터는 민경련 명의의 초청장이 많아졌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민화협 초청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같은 사정을 반영하여 현재 방북을 희망하는 민간인이 아태와 민경련 그리고 민화협 명의의 초청장을 받을 경우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예외 없이 방북을 허용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북측이 대남교역 창구를 민경련으로 단일화함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받아오는 방북 초청장은 대부분 민경련 명의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한과 교역을 희망하는 업체는 반드시 민경련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경련의 활동범위가 넓어졌다. 그만큼 민경련 정운업 회장의 위상도 높아졌다.

    민경련이라는 조직이 대외적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98년 10월 아태평화위 초청으로 방북한 현대의 정몽헌 회장 일행이 북측과 체결한 경제협력분야 합의서의 서명 당사자로 민경련 정운업 회장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현대는 이때 북측과 두 가지 합의서를 체결했는데 서명 주체는 아태평화위와 민경련이었다. 이는 사업의 실무는 민경련이 담당하되 아태평화위가 이를 담보하는 형식을 띤 것이다.

    정운업은 92년 7월 당시 김달현 부총리가 남북경협 논의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 수행한 인물로 70년대부터 무역회사에 몸담은 북한의 ‘외화벌이 1세대’다. 삼천리총회사, 광명성경제연합회 같은 무역회사 총사장(회장)을 두루 거친 정운업 회장은 현재 남북 정부간 경협 실무접촉 북측 수석대표도 맡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민경련을 내각 직속의 외곽기관이거나 내각의 성(省)으로 승격할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실제로 내각 산하인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무역일꾼들의 일부는 소속이 민경련으로 바뀌었다. 민경련은 베이징(대표 이치훈·전 광명성경제연합회 베이징 대표부 대표)과 단둥(丹東) 두 곳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아태평화위로부터 남북 민간 교류협력 업무를 넘겨받아 새별로 떠오른 민화협의 역할도 주목할 대상이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로 나와 낯익은 김영성 민화협 부위원장은 지난 9월 백두산 관광단으로 방북한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앞으로 민화협이 북남간 사업에서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 뒤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을 전후해 방북한 남측 정당-사회단체 참관단 및 ‘한겨레’ 취재팀의 방북 초청장도 민화협 명의였다.

    민화협의 핵심 인사는 김영대 위원장과 김영성, 허혁필 부위원장이다. 각각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참사를 겸하고 있는 김영대 위원장과 김영성 부위원장은 남북 확대정상회담에도 배석했으며,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이해찬 의원은 정당-사회단체 회담에서 남북국회회담 재개를 제안해 김영대 위원장으로부터 원칙적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허혁필 부위원장은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함께 평양공항에 나와 장충식 한적 총재를 영접했다.

    민화협은 현재 베이징에 참사 한 명을 두고 남측 민간단체들과 접촉하고 있다. 민화협의 움직임이 눈길을 끄는 것은 앞으로 남북 민간교류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개가 넘는 남한 사회의 대표적인 정당-사회단체들이 함께 모인 통일운동 상설협의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그동안 북측 민화협에 대화협력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강만길 교수(민화협 상임의장)는 김영대 민화협 위원장과 만나 남북 민화협간 대화협력을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바 있다. 한완상 민화협 상임의장 또한 백두산관광단과 정당-사회단체 참관단의 일원으로 최근 두 번 방북해 민화협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북측의 창구 다변화가 정부간 교류협력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활성화할 조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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