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9

2000.11.16

누가 이 ‘슬픈 싸움’ 일으켰나

살인적 노동 시달린 한 사회복지사 죽음 4800여 동료 울려…섣부른 기초생활보장제가 부른 비극

  • 입력2005-05-27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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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 ‘슬픈 싸움’ 일으켰나
    2000년 9월20일경부터 전국 동사무소, 면사무소는 ‘전쟁터’가 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혜 금액이 통지되면서 수혜대상에서 제외됐거나 생계비가 깎인 사람들이 거센 저항을 해온 것이다. “월 30만원 주던 생계비를 8만원으로 줄여놓았다.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냐”는 식의 불만들이었다. 욕설, 협박, 핏대선 고함이 마구 쏟아졌다. 불같이 화를 내는 영세민들의 ‘카운터 파트너’는 누구였을까. 동사무소 하급 직원들, 그 중에서도 복지업무를 전담하는 사회복지사들이었다.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은 “평생 얻어먹을 욕을 이때 다 들었다”고 말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을 준비할 땐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시행 후에는 정부와 영세민 사이에 끼여 자기들만 ‘동네북’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를 대신해 ‘분풀이용 샌드백’이 됐다며 울분을 토로한다.

    여름내내 출장조사… 4명몫 혼자

    이런 가운데 주부 사회복지사 박정희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사망은 가뜩이나 참담한 지경에 놓여 있는 전국 4800여 복지사들을 모두 울게 만들었다. 2000년 3월 서울 동작구청의 7급 직원이었던 박정희씨(36)는 경기 안양시 안양2동사무소로 배치됐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2개월 뒤였다. 안양시에서 출퇴근하던 그녀는 “직장이 가까워져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의 업무는 상상을 초월했다. 의료보호,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 여성, 영유아 관련 기존 복지업무에다 기초생활보장제 시행 준비까지 맡았다. 출산으로 약해진 몸을 추스릴 여유가 없었다. 안양2동의 기초생활보장 조사대상 세대는 481세대. 안양시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그녀는 5월부터 일일이 가정방문하며 생활수준이나 건강상태, 부양가족 등을 조사했다. 4명의 복지사가 나눠 맡도록 돼 있는 이 일을 그녀는 혼자서 해나갔다. 예산부족으로 안양2동에 다른 복지사를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 집 조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골목을 누비며 집을 찾고, 복지사를 고깝게 보는 주민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그녀는 500시간을 보냈다.

    안양2동사무소 직원 이일현씨(37)는 “7월까지 현장조사를 끝내기로 일정이 잡혔지만 박씨는 시간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사무소에 돌아와서 열 가지도 넘는 경우의 수를 대입해 대상자 가구를 선별하는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의 지침이 번번히 바뀌어 그때마다 산정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8월 말 박씨는 481세대의 현장조사를 드디어 끝냈다. 한숨 돌리는 순간 갑자기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10월7일 그녀는 심한 구토를 했다. 서울강남성모병원의 정밀진단결과 그녀는 위암말기로 판명됐다. 위를 덮은 암세포는 이미 골수까지 전이돼 있었다. 남편 이호석씨(38·안양시 청소년수련관 수련팀장)는 “바쁘다면서도 아내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플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생계비 적다”항의에 마음고생도 커

    10월21일 오후 12시50분 박씨는 남편과 두 자녀를 남기고 숨을 거뒀다. 위암 판정을 받은 지 14일 만이었다. 안양시청은 박씨에 대해 ‘순직처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사망소식은 전국의 사회복지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인터넷엔 그녀를 추모하는 사회복지사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복지사들은 “그녀의 죽음에서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복지사사이트(www.socialworker.co.kr)에 올라 있는 글로 복지사들의 참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출산한 뒤 미처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그 여름 땡볕에 500세대를 혼자 조사했다. 기초생활보장이 무엇인가. 우리 동료들은 정말 기초적인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나도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살았다” “신규신청자 상황보고, 복지행정시스템 보고… 실적보고는 끝이 없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는 재산, 자동차, 부양의무자 기준을 계속 바꿨다. 한번 지침이 바뀌면 며칠 밤새워 한 일을 처음부터 새로 한다.”

    빗발치는 항의를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데 대한 한탄도 나왔다. “1명의 대상자를 책정하는데 소모되는 시간이 얼마인지 아는가. 3개월의 짧은 조사 기간에 이 이상 어떻게 더 철저할 수 있나? 그럼에도 온갖 비난의 화살은 우리가 다 맞고 있다” “‘TV에는 10월부터 장밋빛으로 바뀐다던데… 왜 도리어 적냐’며 괴성과 상소리까지 지르는 수급자들… 또 우리 총알받이 책임인가” “생계비가 생각보다 조금 입금되었다고 나를 죽이겠다고 한다” “집에까지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벨소리에도… 험상궂게 생긴 민원인이 와도 가슴이 뛴다.”

    사회복지사들은 자신들이 돌봐야 할 사회적 약자로부터 ‘원수’ 취급을 받고 있는 데서 큰 자괴감을 느낀다. 한 복지사는 “보람이 없어졌다”며 사표를 던졌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공정한 운영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의 설문조사에서 402명 복지사의 80.6%는 현 제도에 대해 “수급대상자 조사의 공정성과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10월23일 서울 월계2동에서 조모씨(49·무직·장애2급)는 기초생활보장제 시행 이후 생계지원비가 월 21만원에서 7만원으로 줄어든 것을 비관, 목숨을 끊었다. 많은 저소득자들이 이 제도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고 복지사들은 이들과 ‘상처뿐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과연 누가 이 ‘슬픈 싸움’을 일으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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