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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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주고 밀어주고… 꼴불견 체육계

  • 입력2005-05-17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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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져주고 밀어주고… 꼴불견 체육계
    프로야구 초창기 명포수로 이름을 날린 이만수(당시 삼성). 현재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보조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최근 스포츠투데이에 ‘반성문’을 보내왔다. 프로야구 정규시즌에서 현대가 박종호를 타격왕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마지막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은 것과 관련해 선배로서 아쉬움을 가득 담은 자신의 경험담을 기고한 것이다. 이만수 코치는 84년 당시 홈런과 타점 부문 1위가 확정됐다. 남은 것은 타율 부문. 이 하나만 따내면 타율`-`타점`-`홈런 등 타격 부문의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할 수 있었다. 사실 트리플크라운은 타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다.

    삼성은 그를 밀어주기 위해 당시 재일교포 출신 타자인 롯데 홍문종에게 더블헤더 경기서 9타석이나 연속으로 볼넷을 줬다. 홍문종의 타율을 묶어두는 데 성공한 삼성은 결국 이만수에게 트리플크라운을 안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해 프로야구 담당 기자들이 시상하는 시즌 MVP에 이만수는 탈락했다. 이만수 코치는 당시를 회고하며 “훌륭한 기록은 세웠으나 나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스포츠의 본질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승부세계의 현실에서 이 말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 프로 종목은 물론이고 일부 아마추어 종목에서도 승부 조작, 타이틀 밀어주기 등의 추태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일이 우발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구조적으로 진행된다는 데 있다.

    우승 나눠먹기 등 고교야구서도 구설수

    차범근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몇년 전 한 월간지를 통해 폭로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 지지부진한 조사 끝에 ‘그런 일은 없었다’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축구계에선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라는 견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축구 정규리그가 끝날 즈음 팀 순위가 결정되고 난 뒤 선`-`후배간 져주기와 밀어주기가 횡행해왔다는 것. 여기엔 파리목숨과 다를 바 없는 감독직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승률이라도 높여 체면치레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가 깔려 있다고 한다. 한솥밥을 먹고 사는 감독들로서는 이러한 암묵적인 부탁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야구의 승부조작 의혹은 최근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각종 대회의 우승팀을 한번 살펴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대회를 휩쓰는 팀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고교야구 첫 대회인 대통령배를 2연패한 조성옥 부산고 감독은 사석에서 “첫 대회를 이기고 나면 다른 학교의 동료 감독은 물론 심판진, 대한야구협회 임원들 모두 나머지 대회에서는 느슨하게 해주길 은근히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주문을 쉽게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협회 주최의 지방 전국대회에는 승부조작과 관련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다. 갈수록 특정 에이스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는 고교야구에서 모 고등학교는 지난해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에이스를 투입하지 않았다. 결국 상대팀이 우승기를 가져갔다.

    농구의 경우 프로 원년 박광호 동양 감독과 신선우 현대 감독이 승부 헌납으로 보이는 플레이를 리그 막판에 펼쳐 팬들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실업팀 현대의 선-후배 사이(신감독이 선배)이기도 한 이들은 들끓었던 승부조작 의혹에 대해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

    상대 골라 져주기 중 지금도 야구인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있다. 최근 현대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경기를 벌이고 있는 삼성의 84년 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당시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은 강한 전력의 해태 대신 비교적 만만하게 본 롯데를 포스트시즌 파트너로 고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삼성은 이 경기에서 롯데에 졌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이상했다. 삼성은 초반 7-0으로 리드하다 9-11로 역전패당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에이스 최동원이 4승을 거둔 데 힘입어 롯데가 삼성을 4승3패로 누르고 우승했다. 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곤 한국시리즈에서 매번 미끄러진 삼성은 호사가들에 의해 이때부터 “져주기의 저주가 붙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다”는 조롱을 받고 있다.

    승부조작도 있는데 타이틀 밀어주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티 안 나는 종목이 바로 씨름이다. 전문가들도 잘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잘 짜인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돼 실제로 조작이 이뤄졌는지 여간해선 알기 어렵다. 80년대 예선리그에서 같은 소속팀 선수가 맞붙을 경우 대개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예선을 통과해왔다. 여기서부터 부정이 끼여들었다는 게 씨름계의 얘기다. 예선리그에서 힘을 빼면 본선에 올라가서 불리하니 체력 비축 차원에서 소속팀 선수간 져주기는 오히려 당연시됐다. 최근엔 예선리그가 폐지되고 토너먼트로 치러지나 역시 밀어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백두급의 경우 스타일이 커서 간혹 드러나긴 해도 경량급으로 내려가면 알 수가 없다.

    한국프로야구가 올해 정규시즌 막바지에 그토록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은 추태의 버라이어티쇼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인조잔디 구장에 특히 약한 두산은 롯데 대신 LG를 포스트시즌 상대로 택한 모양이다. 그래서 LG와의 마지막 더블헤더 1차전에서 두산은 13안타를 때려내고도 0-1로 패하고 말았다.

    2차전엔 7-4로 앞선 9회 초 3점을 내줘 동점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타격왕 타이틀을 노리던 김동주는 9회말 한 차례 더 타석에 들어설 기회까지 갖게 됐다. LG와 두산은 두 경기서 최다안타 부문 타이틀 경합자인 이병규와 장원진을 동시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결국 둘은 이 타이틀을 공동 수상하게 됐다. 프로야구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서울의 라이벌이 모처럼 뜻을 합쳐 갖가지 볼썽사나운 일을 연출한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상대방과 아예 경기를 미리 짜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MBC의 김상훈은 시즌 최종전에 앞서 타격 1위를 다투었는데 롯데 야수들의 도움으로 손쉽게 타격왕을 따낼 수 있었다. 김상훈은 이날 3루 쪽으로 계속해서 번트를 댔는데 대는 것마다 안타가 됐다. 그는 이날 3타수 3안타에 모두 번트안타라는 해괴한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다.

    선수가 선수에게 주는 메리트상이 있었다면 과연 믿겠는가. 89년 당시 빙그레(현 한화)의 한 선수는 자신의 타점왕 등극을 위해 후배들이 자신의 앞 타석에서 출루할 경우 상금을 수여했다. 이 때문에 3루에 있던 주자는 후속 타자가 안타를 때려내도 홈을 밟지 않고 그 선수가 칠 때까지 기다리는 ‘엽기 플레이’를 펼쳤다.

    승부조작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는 따지고 보면 연-고대 정기전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고려대 81학번인 선동렬(해태-주니치, 현 KBO 홍보위원)은 가장 뜻 깊었던 승부를 묻자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닌 정기전에서 연대를 누른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연-고전은 선수들이 승부에 너무 집착해서 문제가 된다. 지난해 정기전 야구경기에서도 홈플레이트에서 생긴 사소한 몸싸움이 양팀 선수들의 집단 패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 1942년 그의 타율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4할을 약간 웃돌았다. 따라서 마지막 게임에 출전하지 않으면 그는 4할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테드 윌리엄스는 출전을 강행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4타수3안타의 투혼을 펼쳐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더욱 빛냈다.

    ‘비난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던 80년대 한국프로야구 모 감독의 말은 전적으로 틀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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