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2000.11.02

농촌 ‘정보화 모내기’ 더딘 걸음

컴퓨터 보급, 초고속 통신망 등 기반시설 미비…지속적인 계도와 교육 필수적

  • 입력2005-05-16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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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 ‘정보화 모내기’ 더딘 걸음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남부마을. 1700여 가구에 총인구가 5300여명에 불과한 한적한 이 시골 마을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이다. 지역 국회의원(김효석 의원)의 노력을 통해 대형 공기업에서 사용하던 구형 컴퓨터 40대가 주민들에게 기증되었다. 농촌의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한 시범마을 형태로 도시와 농촌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그만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남부마을은 벼농사 이외에도 200여 농가가 딸기와 방울토마토, 오이 등 시설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는 전형적 농촌이다. 이들 시설원예 농가를 중심으로 컴퓨터가 각 가정마다 보급됐다. 그러나 문제는 50대 이상이 대부분인 농민들 중에서 컴퓨터를 만져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안방을 차지한 컴퓨터가 농사짓는 부모들의 몫이 아니라 학교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 중고생 자녀들의 게임 도구로 둔갑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때쯤 인근 지역의 대학생들이 이 마을을 찾았다. 도내에서 정보화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되어 있는 호남대의 컴퓨터 동아리 학생들은 지난 여름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나와 컴퓨터가 설치된 집집마다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이 지역 농민들에게 컴퓨터를 부팅하는 방법부터 워드프로세서 사용법 등을 가르치며 ‘농활’이 아닌 이른바 ‘컴활’을 시도했다.

    “이 나이에 무슨 인터넷” 노령 농민들 시큰둥

    그러나 가정에 보급된 개인용 컴퓨터는 아직 농민들이 이를 통해 이메일이나 인터넷을 활용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골 마을에서 정보화 기지 역할을 하는 것은 동네 우체국의 몫인 경우가 많다.



    올해 2월 3대의 컴퓨터를 설치해 모든 지역 주민들이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은 담양군 대전우체국에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주요 고객은 수업을 끝마친 학생들인 경우가 대부분. 최근 들어서는 오전 시간에 젊은 주부들도 적지 않게 다녀간다. 이 우체국 이용호 국장은 “30, 40명의 중고생들이 우체국에 모여 채팅도 하고 회의도 갖는 등 청소년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령층의 관심은 아무래도 시큰둥한 편. 대전우체국에서 만난 최윤월씨(63)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영농 정보를 얻고 출하 물량이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면 배울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배울 시간도 없는 데다 이 나이에 무슨 인터넷을 배우겠냐”는 간단명료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인구 수가 53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을 정보화 시범기지로 선정한 담양군과 민주당 담양-곡성-장성 지구당은 주민들의 인터넷 활용도를 높여 궁극적으로는 농산물 수급 조절까지도 이뤄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명 한명의 농민들이 자기가 경작하고 있는 작물의 예상 수확량이나 출하 물량 등을 인터넷에 올리면 이것을 모아 영농DB를 구축해 공유함으로써 농산물 가격 폭락 등, 수급 불균형에 따라 농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작목별 영농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교육시킨다면 수확량 증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여기에다 지역 주민들간의 사이버 공동체도 만들고 이를 통해 ‘사이버 면장’까지 뽑는다면 금상첨화.

    그러나 아직도 이 정보화 시범마을에는 이뤄놓은 성과들보다는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많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초고속통신망 등 농민들이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위한 기반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 이 지역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지난 8월부터였으니 그동안은 그저 농민들이 문서 작성 등 정보화의 본질과는 무관한 단순 작업 정도에 컴퓨터를 활용해 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역 관계자들은 “우선은 농민들이 컴퓨터와 친해지고 컴퓨터를 ‘갖고 놀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5년 전부터 이 지역 농민들에게 PC통신을 활용한 영농정보 이용 방법을 가르쳐왔다는 담양군 의회 이규현 의원의 지적은 농촌 지역의 정보화가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대도시는 벌써 2개 이상의 통신망 사업자가 ADSL 시장을 놓고 서비스 개선 등 경쟁체제에 들어가 있지만 농촌 지역의 경우 이제야 ADSL이 깔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사용하려고 해도 엄청난 통신비가 문제가 될 뿐더러 아직도 농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대도시의 아파트 밀집 지역처럼 근거리통신망(LAN)을 활용할 수 없는 데다 인터넷 이용 속도도 문제가 된다.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탁의성씨(46)에게 인터넷 이용 속도는 어느 정도 나오는지 물어보았다.

    “속도라고요? 고놈 기다릴려면 애터져 불쟤∼.”

    대전면측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면사무소에 메인 서버를 구축해 이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케이블TV망 설치나 정부의 행정전산망을 공유하는 방안 등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농민들만으로는 부족하다싶어 주요 정보통신기업이나 지역 대학의 전산센터 등과 자매결연을 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촌 정보화를 촉진해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역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민들이 농기계를 구입할 때 저리자금을 융자받는 것처럼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인터넷 이용을 위한 통신망을 가설할 때는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 조건도 내놓고 있다. 물론 이는 정부가 현재 우리나라의 지역간 정보화 격차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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