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2000.10.19

노벨상 수상 작가의 수준 높은 화제작

  • 입력2005-06-28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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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특정 책을 자주 인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책의 권위에 의존하기 위해서거나(속물적으로 보면 자신의 현학을 과시하는 데도 이용된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을 만큼 뚜렷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98년 해냄 펴냄)도 칼럼니스트들이 썩은 정치판을 개탄할 때나, 혹은 세기말적인 상황에 경종을 울릴 때 즐겨 인용하는 소설이다. 그만큼 강렬하다.

    “눈이 안 보여.” 신호대기 중이던 차 안에서 나온 남자가 이렇게 외친다. 이 불쌍한 눈 먼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준 ‘착한 사마리아인’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차 도둑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내 차 도둑의 눈도 보이지 않게 되고 경찰의 인도로 집에 도착하는 신세가 된다.

    갑자가 눈이 멀어버리는 신종 전염병이 번지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정치인들은 전염을 막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수용시키고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에는 약탈과 강간과 살상이 난무한다. 하지만 작가는 희망을 남겨둔다. 눈 먼 남편을 따라 실명을 가장하고 수용소로 들어온 의사의 아내. 이제 앞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의사의 아내는 기꺼이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을 도우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는 사람들. 그들이 “눈이 보여”라고 외칠 때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눈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또다시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번 기회에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독파해둘 것을 권한다. 어차피 며칠 뒤에는 또 새로운 수상작 소식이 독서가들을 설레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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