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2000.10.19

방향감각 잃은 ‘러시아 북해 함대’

경제사정 악화로 유지 불능 상태…승무원 부재·잇단 방사능 유출 등 최악 상황

  • 입력2005-06-28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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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향감각 잃은 ‘러시아 북해 함대’
    커스크호 침몰 사건 이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의문이 있다. 러시아 북해 함대가 과연 이대로 존속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러시아 북해 함대 소속 핵잠수함 커스크호가 바렌츠해에 침몰했을 때, 북부 유럽 언론들은 한결같이 다음 침몰 사건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북해 함대의 안전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자 불안감이었다.

    오스카 II급의 커스크호가 침몰한 바렌츠해는 노르웨이해와 인접해 있고, 러시아 북해 함대의 핵잠수함과 전함들이 대서양으로 나오려면 노르웨이해를 거치기 때문에 러시아 핵잠수함의 방사능 유출은 북부 유럽인들에게는 절대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커스크호 침몰은 커스크호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다. 러시아 북해 함대의 현주소를 알게 하는 사건이었고, 북해 함대를 포함한 러시아 해군의 문제였으며, 더 나아가 러시아의 문제였다. 병영 근무중이던 군인이 배급을 받지 못해 굶주려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터져나오는 현재의 러시아 경제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어야만 유지가 가능한 핵 가동 함대를 과연 러시아가 별 문제 없이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러시아 북해 함대는 러시아 해군이 운영하는 태평양 함대, 흑해 함대, 발틱 함대 등 4대 함대 가운데에서도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 1996년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109척의 핵 잠수함 가운데 67대가 북해 함대에 소속되어 있다. 일부 서방 세계의 정보 평가는 북해 함대 소속 핵잠수함 척수를 84대로 추산하고 있으나,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현재의 정보 평가대로라면 러시아 해군의 핵잠수함 숫자는 2003년까지 약 80척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나, 러시아 해군의 양대 함대인 북해 함대와 태평양 함대를 비교할 때 앞으로도 북해 함대는 최강의 전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해 함대는 탄생 당시부터 이 함대가 운영되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러시아의 해군 전력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바렌츠해와 백해는 15세기 경부터 러시아 상선대의 주요 거점이었다. 독일 해군이 발틱해의 주요 전력으로 부상한 이후 러시아는 북방 지역의 부동항을 갈망했다. 무르만스크 피요르드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부동항 폴리아니가 건설된 것은 1899년의 일이다.

    1917년 무르만스크까지의 철로가 열리면서 러시아는 마침내 사시사철 이 부동항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 전략 지역에 ‘소련 북해 함대’가 창설된 것은 1933년 여름. 스탈린의 폴리아니 방문이 계기가 되었고, 1937년 지금의 이름인 북해 함대(Northern Fleet)로 개칭되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콜라 반도의 항구와 무역항은 소련의 최대 전략 요충지였으나, 전쟁이 끝날 때쯤 미국 해군이 소련 해군보다 훨씬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련으로서는 미국의 해군 전력을 따라잡기 위한 함대 전력 보강 작업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콜라 반도를 거점으로 한 현대식 함대는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디젤엔진으로 가동되는 잠수함이 원자로 가동의 핵잠수함으로 대체되어 북해 함대에 처음 배치된 것은 1958년 7월1일이다. 이미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인 미국의 노틸러스호는 4년 전인 1954년에 진수식을 마친 뒤였다. 북해 함대에 배치된 러시아 최초의 핵 잠수함 K-3 레닌스키 콤소몰호는 그해 7월3일 처음으로 백해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튿날인 4일 처음으로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4대 함대 중 최소 규모였던 북해 함대는 1950~1970년에 러시아 최대 규모이자 가장 중요한 함대로 그 위상을 드러냈다.

    북해 함대의 거점인 콜라 반도에는 6개의 새로운 해군 기지와 함께 핵잠수함 시설이 건설되었고, 동시에 5개의 대형 해군 기지창이 조성되었다. 당시 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핵잠수함 총 척수의 3분과 2를 흡수한 북해 함대가 미국의 해군 전력을 능가하게 된 것이다.

    1989년부터 러시아의 북해 함대는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다. 1991년 소련 붕괴와 정치 개혁, START I·II로 인한 전략무기 감축, 이어진 러시아의 악화된 경제 사정 등이 북해 함대의 전력을 급변시키게 된 것이다. 1989년은 소련이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인196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한 해로 기록된다.

    현재 북해 함대의 주임무가 러시아의 국경 방어임은 물론이다. 소련 붕괴 전, 소련 해군의 핵 잠수함들은 미국의 동서 해안을 포함해 남지나해와 페르시아만 외곽을 정찰했다. 현재 이 정찰 임무는 대폭 축소된 상황이며, 북해 함대의 경우 몇년 전에 비해 대서양 정찰 활동이 20%나 줄어들었다. 미 해군의 전략 핵잠수함과 러시아 북해 함대의 핵잠수함들이 냉전 때부터 북극해의 빙하 밑에서 신경전을 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해 함대의 핵잠수함 활동만 축소된 것이 아니다. 1989년 이후 북해함대의 해군 함정 수는 40%나 감축되었고, 대다수의 함정들이 핵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예비역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노벰버, 에코, 호텔급의 1세 핵잠수함 전체와 빅토, 찰리, 양키, 델타급의 2세 핵 잠수함 60%가 이미 활동을 중단했다. 몇년 전 러시아 해군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더이상의 핵잠수함 건조 계획이 없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미 세베로드빈스크급의 제4세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북해 함대의 위기론엔 경제 사정 악화로 인한 유지 불능 상태가 더욱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구소련 군사공업 시설의 대부분이 민간 생산시설로 전환된 지는 오래다. 해군 조선소도 예외는 아니다. 핵잠수함 건조 시설의 4분의 3이 이미 가동을 중단했고 세바스토폴, 니콜라예프 등 함정 건조용 조선소 일부는 러시아 국경 바깥인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을 정도다.

    1995년 북해 함대에게 책정된 1년치 예산은 상반기에 이미 다 소요되었고, 월급을 받지 못한 해군 장교들은 정찰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정도다. 바다로 나가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핵 잠수함이 승무원 숫자도 다 채우지 않은 채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함대 소속 함정 판매, 함정 고철 처리, 기지 대여 등 러시아 해군이 나름대로 재정 확충 작업에 골몰하고 있긴 하지만, 완벽한 핵잠수함 및 함정 유지 능력은 이미 상실된 지 오래다. 북해 함대 소속의 핵잠수함 사고와 이에 따른 방사능 유출 사건은 커스크호가 처음이 아니다. 이 원자로 사고는 러시아 정부의 비밀 유지로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거나 공개되었다 하더라도 그 진상 및 환경 오염 등 피해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1970년 4월 노벰버급 핵잠수함 K-8의 비스카야만 침몰 사건은 러시아 해군이 사건 발생 20여년이 지난 1991년까지도 비밀에 부쳤다. 이 외에도 1986년 10월의 양키급 K-219, 1989년 4월 K-278 콤소몰리츠호 침몰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 벨로나재단(Bellona Found-ation)은 몇 년 전부터 러시아 북해 함대의 방사능 유출 사고를 추적해오고 있다. 북해 함대에 소속되어 현역 장교로 근무했던 알렉산드르 니키틴이 1995년 양심선언을 통해 북해 함대의 방사능 유출 사고 내막을 폭로하게 된 배경에도 이 벨로나재단의 뒷받침이 있었다.

    ‘북해 함대의 양심선언’으로 불린 ‘니키틴 케이스’는 러시아는 물론 북부 유럽 등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니키틴의 비밀 유출죄를 걸고 넘어진 러시아 검찰과 인권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니키틴은 5년여의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지난 9월13일 러시아 대법원의 최고회의는 니키틴의 손을 들어주었다. 커스크호 침몰 사건이 터진 일주일 후였다.

    북해 함대는 어디로 가는가. 승무원 부재, 유지 불능 상태, 계속되는 방사능 유출 등 러시아의 국력이 바닥을 기는 최악의 상황에서 북해 함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돈을 먹고 크는’ 핵잠수함이 고철로 바뀌어 제 몸값을 하더라도 원자로 처리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일부 NGO가 고물이 된 러시아의 핵잠수함을 사들여 안전하게 고철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 의회와 펜타곤의 입은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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