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4

2000.10.12

대선 불패신화 ‘딕 모리스’ 열풍

미국·멕시코서 ‘킹메이커’ 활약·전자정치 선도…방한 앞두고 정·재계 대거 접촉 움직임

  • 입력2005-06-24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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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불패신화 ‘딕 모리스’ 열풍
    딕모리스. 미국 아칸소주 법무장관이었던 빌 클린턴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시켰고 1992년 그를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다. 딕 모리스는 1996년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할 때도 선거총책임자였으며 올해 당선된 폭스 멕시코 대통령의 선거도 지휘했다.

    국적과 당파를 초월한 ‘대통령 만들기의 귀재’ 딕 모리스가 ㈜이프레지던트의 초청을 받아 10월6일 3일간 일정으로 한국에 온다. 그의 첫 서울 방문을 앞두고 국내 정-재계에 ‘딕 모리스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인과 기업가들은 그와 만나거나 손을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딕 모리스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 바로 그가 갖고 있는 ‘대선에서 이기는 전략’과 ‘전자정치(E-Politics)사업’ 때문이다.

    정치권, 선거캠프 영입 의사

    주최측은 딕 모리스가 10월7일 고려대에서 ‘미국 대선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 목적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딕 모리스는 방한기간 중 민주당 한화갑 의원 등 여-야 중진의원들을 만날 계획이다. 이 밖에 차기 대권후보로 알려진 인사 등 상당히 많은 국내 정치인들과 접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회의원들 상대로도 강연하며 386정치인들을 따로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정계에선 특별한 공직이 없는 미국인이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현역 정치인과 연쇄적으로 만나는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정치인들은 일차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거전략가와 만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 행정학 교수는 “정치권에선 차기 대선을 앞두고 딕 모리스를 자기 캠프의 선거전략가로 영입하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 대선 때 한 정당이 딕 모리스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딕 모리스는 지난 7월 멕시코 대선에서 야당 후보 비센테 폭스를 도와 승리함으로써 ‘미국 국내용’이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에 한국 정계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벤처기업 D사의 박 모 대표는 “이번 방한에서 그의 회사 ‘vote.com’의 한국진출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말한다. vote.com은 미국에서 전자정치(E-Politics)의 신기원을 이뤘다. 이 사이트는 각종 정책-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다. 인터넷사이트에서 설문조사는 흔하다. 그러나 이 곳은 수 만∼수 십 만 명이 조사에 응해 신뢰도가 매우 높고 설문에 참여한 네티즌들의 의견이 해당 정책당국에 모두 이-메일로 보내진다는 점이 다르다. 즉 행정, 정치에 실질적 압력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자정치란 대체로 인터넷이 특정 사안에 대한 다수 의견을 형성해 각종 정책결정이나 선거에 영향을 주며 엄청난 액수의 정치후원금을 모집하는 창구로도 활용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때 인터넷은 정치인과 유권자가 가장 많이 접하는 장소가 된다. 딕 모리스는 “미국 정치는 확실히 전자정치로 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 vote.com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초청자측에 따르면 딕 모리스는 한국에 앞서 일본을 방문한다. 주된 이유는 요미우리신문사와 함께 영국-호주판에 이어 일본판 vote.com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리스는 올 초 “vote.com의 한국 진출을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정치문제를 상품화하는 인터넷산업이 통할까. 그리고 올해 미국정치의 ‘화두’인 전자정치문화가 이식될 수 있을까. 이프레지던트의 함성득교수(고려대 행정학과)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인터넷 설문조사의 ‘스피드’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날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정치수요를 창출할 대선(2002년)이 다가오고 있다. 규모와 공신력을 갖춘 정치 사이트만 등장한다면 한국 정치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은 빠르게 커질 것이다.”

    벌써 재계에선 딕 모리스와의 제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딕 모리스는 서울의 한 국제변호사를 통해 한국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K그룹은 소유주의 차남이 중심이 돼 한국판 vote.com을 출범시키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다. 이 기업은 방한기간 중 딕 모리스와 직접 만나 구체적 논의를 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룹 내부에서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정치사이트 운영사업에 뛰어들 경우 그룹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돼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엔 S그룹이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딕 모리스측은 K그룹 관계자를 만나기로 한 자리에 S그룹 관계자를 대신 참석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올들어 일부 한국 언론은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딕 모리스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이들 기사의 서두에는 ‘본지 독점’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계에서 딕 모리스는 상당한 ‘고급 취재원’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은 취재뿐 아니라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언론사들이 딕 모리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프레지던트에 따르면 일부 언론사들이 공동초청자 자격으로 한국에서 딕 모리스 단독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언론사도 그와 접촉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에서처럼 언론사가 vote.com을 운영하게 될 경우 언론사로서의 사회적 영향력과 수익 측면이 함께 향상될 수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벤처업계에선 국내의 정치사이트들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 입장이지만 ‘전자정치분야의 ‘야후’격인 vote.com은 뭔가 다를 것이라며 흥미를 보이고 있다. 이 사이트의 ‘슬로건’인 ‘정치의 대중화’ ‘인터넷으로의 권력이동’은 특히 관심을 끄는 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벤처기업 D사 대표 박씨는 “아직 한국에서 인터넷은 정치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지만 몇몇 업체만 뜬다면 사정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면서 “전자정치가 소수 정치인들에게 독점돼 온 국가의 의사결정과정에 다수의 네티즌들이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는 새로운 정치문화라면 진지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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