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2000.09.14

‘한빛 게이트’인가 ‘단순 사기극’인가

불법 대출 사건 갈수록 의혹만 증폭… “외압 실체, 돈의 행방을 알고 싶다”

  • 입력2005-06-17 13: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빛 게이트’인가 ‘단순 사기극’인가
    ‘한빛 게이트’인가 ‘단순 사기사건’인가. 한빛은행 불법 거액대출 사건은 요지경 속이다.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씨(52)에 대한 박지원 장관의 대출압력 의혹, 사직동팀의 내사 배경, 박장관과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의 세 차례통화 등 이번 사건은 온통 의혹투성이다. 검찰은 추석 전에 사건을 종결한다는 계획이나 이런 의문들이 명쾌히 풀리지 않는 한 두고두고 뒷말이 무성할 것으로 보인다.

    ● 사건, 왜 불거졌나

    사건 초기 한빛은행 김진만 행장측에서는 본점 차원의 개입 정도를 파악하기에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길 부행장이 박혜룡씨와 만나는 등(8월10일)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반면, 김행장측에서는 전혀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것. 이런 정황은 ‘김행장과 이부행장 간 갈등설’과 겹쳐 이부행장이 의혹의 한 당사자로 부상한 이유가 됐다. 이부행장은 이번 사건의 실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진만 한빛은행장은 “8월14일 아침에 관악지점에 대한 감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11일 감사가 찾아와 관악지점의 대출 이상 징후가 있어 특검을 해야겠다고 보고해 왔고 이에 철저하게 감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일주일 전쯤 당에 이와 관련된 제보가 접수됐다”고 전했다. 사건이 불거지기까지 물밑에서 다양한 흐름이 전개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대출업체간 갈등이 이번 사건을 불러온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크월드, 록정개발, 에스이테크 등은 6월21일부터 본점 감사가 시작된 8월 초까지 160여 차례에 걸쳐 대출받은 돈 463억원을 갚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100여 차례 대출을 받고도 모두 갚아온 상태여서 왜 이들은 6월20일 이후에는 돈을 갚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에 갚을 돈을 둘러싸고 불화가 생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는 것.

    신창섭 한빛은행 전 관악지점장은 애초 “지난 3월 부임해 보니 이미 아크월드와 록정개발 등에 200억원이 대출된 상태였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추가 대출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록정개발의 경우 올 3월 외부 회계감사 결과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76억원이 많아 회사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차대조표상 부채가 322억원, 자산이 246억원인데도 대출은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신 전 지점장은 이수길 부행장으로부터 “아크월드사를 도와주라는 전화를 받았고 이것이 대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술해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신 전 지점장이 본점 검사에서 “위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니 조금만 시간을 주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대목도 주목된다. 이부행장은 이에 대해 “특정업체를 봐주라고 전화한 기억이 없다”며 부인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촌수로 따질 수 없는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박혜룡씨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거액대출을 받은 점, 박장관이 이부행장과 세 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한 점(박장관과 이부행장은 이 통화는 대출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본점 부행장이 직접 일선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고 만난 점 등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한 지점장의 사기극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아 보이는 점이다.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씨가 “박장관에게 두 차례 대출압력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도 규명해야 할 의혹.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로는 신 전 지점장이 불법대출을 주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 전 지점장이 왜 대규모 불법대출을 했는지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신 전 지점장은 대출사례비로 박혜룡씨에게서 1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신씨가 19억원의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고 말했지만 신 전 지점장의 변호인인 채종훈 변호사는 “단언컨대 그 돈은 30여명에게 투자를 받아 중개해준 것에 불과하다. 대출사례비로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관악지점장은 전결한도가 건당 3억원, 업체당 7억5000만원으로 알려졌다. 신 전 지점장은 68개 업체의 명의를 도용해 165장의 허위 내국신용장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아크월드 등에 불법대출했다. 일선은행 지점장들은 “본점의 최고위층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외압이 있었다면 지점장인 신씨가 아닌 본점 고위층을 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한빛은행은 올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장려하던 상황이었고 대출 실무작업을 맡은 대리급과 지점장이 공모하면 밝히기가 어렵다며 본점 차원의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신 전 지점장이 ‘이수길 부행장의 전화압력’을 공개함으로써 재무와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이부행장의 개입 여부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부행장의 개입이 확인될 경우 관심은 ‘이부행장의 배후 인물은 없느냐’로 빠르게 옮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김행장은 4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부행장은 이번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으며 어떤 외압이나 청탁도 없었다”고 말했다. “관악지점의 불법 대출은 신 전 지점장과 박혜룡씨 등이 공모한 단순 사기극”이라는 것.

    한빛은행 검사부가 8월31일 발표한 ‘관악지점 사건 관련 여신현황’에 따르면 본점의 특별감사가 시작된 8월12일 현재 한빛은행 관악지점은 아크월드 등에 담보대출 424억원, 위조 내국신용장을 이용한 대출 470억원 등 모두 1004억원을 빌려줬다. 한빛은행이 이들 업체에 98년 이후 정상적으로 담보대출한 돈은 424억원. 그러나 담보가치는 168억원어치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중 은행들의 경우 기업대출일 때 통상 대출금의 130% 가량을 담보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악지점의 불법대출 규모는 580억원으로 이중 연간 매출액 150억원대에 불과한 아크월드에 287억원이 흘러갔다. 한빛은행은 특별감사 기간 중 아크월드 등 4개 업체로부터 50억원을 회수, 954억원이 남아 있는 상태다.

    수사 관계자들은 “박씨가 하루하루 어음을 막는 데 대출금을 썼다고 진술해 경리장부를 확인하고 있으나 장부 기재명세를 액면대로 믿기 어렵고 억 단위로 쪼개진 돈의 행방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자금 추적에 한계가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아크월드에 들어간 대출금 중 상당액이 경리장부에 누락돼 있어 이중 상당액은 정치권 등 다른 쪽으로 샌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관악지점에서 아크월드사에 대출해 줬다는 자금과 실제 대출금 사이에 51억원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돈의 행방은 외압 의혹 및 신 전 지점장의 무리한 대출 배경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검찰도 이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 사직동팀 보복수사했나

    이운영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은 99년 2월 박지원 장관이 전화로 대출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아크월드가 전망 있는 회사이니 15억원을 지급보증해 주라”고 했다는 것. 그러나 박씨 형제는 한달 뒤인 3월 초 영동지점을 방문했을 때 5억원만 보증받았다. 그리고 4월 초 사직동팀에서 이씨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 이씨는 이에 대해 “대출을 안해준 데 앙심을 품고 보복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직동팀은 “이씨에 대한 내사는 세 곳의 제보로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박씨 형제가 방문하기 한달 전에 박장관이 전화를 했다는 주장, 당시 이사장이던 최수병씨와 절친한 박장관이 굳이 지점장에게 전화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점 등은 이씨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그러나 박장관이 이씨의 선처를 요구하는 이씨측 사람과 세 차례나 만났다는 주장을 보면 미심쩍은 부분도 없지 않다. 이씨 주장의 사실 여부를 분명히 밝히는 것도 검찰의 몫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