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

“내 갈 길 내가 간다”

“지금 내가 먹을 밥은 어린애 밥”…앞으로는 ‘카리스마’ 아닌 ‘보통사람의 리더십’ 필요

  • 입력2005-06-17 11: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내 갈 길 내가 간다”
    지난 6월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 차남의 결혼식. 이날 식을 앞두고 한 최고위원은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때웠다. 원내총무와 사무총장을 지낸 동교동계 실력자가 홀로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라면 냄새가 가득 밴 방에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민주화 운동 하느라 정치 탄압을 받던 시절, 아내가 돈 벌러 나가면 나는 집에서 아이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주곤 했다. 그랬는데 그 아이가 벌써 커서 장가를 간다니 새삼 그 시절 일이 떠올라 라면을 먹고 싶었다.”

    한위원 주변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한위원의 ‘인간적인 면’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로 당선된 배경의 첫째가는 요인을 꼽으라면 아마도 ‘넉넉한 마음씨’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한국에서 화합 잘하기로는 수훈갑’이라는 이름 석자를 빌린 삼행시가 화제가 됐는데….

    “그건 원래 나의 카운터파트였던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이 원내총무를 그만두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었다. 당시 박의원이 ‘한총무를 겪어보니 우선 거짓말을 못하더라. 그리고 한국에서 화합 잘하기로는 수훈갑이더라’고 덕담한 내용이 보도됐는데, 거기서 빌려왔다.”

    이번 경선에서 1위로 당선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를 시작하면서 늘 김대중 대통령의 곁을 지킨 일관성, 내가 당의 뿌리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우선 평가를 받았다고 본다. 여기에 민주화 투쟁 경력과 당원들에게 별로 나쁜 사람으로 알려지지 않은 점도 한 요인일지 모르겠다. 특히 영남 지역 사람들과 친한 사실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영남 쪽은 집권 후 지금까지 스물두 번이나 갔다. 거의 매달 간 셈이다. 영남에 가면 항상 ‘대통령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도와달라, 여러분들이 필요한 데 있으면 나를 써 잡숴라’고 말했다. 이런 점을 영남에서도 인정하는 듯하다.”

    이번 경선에서 이른바 ‘3자 연대’에 대한 비판론이 적지 않았다.

    “철저한 연대를 약속한 것도 아니고 이를 공표한 것도 아닌데 철저하게 비난만 받았다. 내가 경선 기간 중 부산에 갔을 때 여성 모임에 참석했는데 김기재 의원이 그걸 주선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김의원이 연대를 발표했다. 나는 지역적인 안배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쪽에 원내세력이 없으니까, 최고위원이 지역 대표성을 가져야 우리 당이 그쪽의 유권자들과 접촉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김중권 최고위원과도 연대를 표명한 적은 없다. 김 최고위원이 영호남 화합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고, 나 역시 화합을 주장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대의원들이 묵시적인 연대성을 느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인제 최고위원과의 표 차이가 예상 외로 커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나도 그런 얘기 들었다. 그러나 나는 등수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내가 대통령만 모시다 처음으로 경선에 나왔는데 7명 중 7위만 해도 성공한 것이다. 하물며 1, 2위를 다퉜다는 것은 큰 성공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욕심을 더 부리겠는가. 경선 끝나고 보니 내 표는 다 지키지도 못했다. 경선을 시작한 뒤 계속 줄어들기만 했지 늘어난 것이 없다. 내 표가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대통령 후보 경선이 아니라 최고위원 경선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는 많은 견제를 받았다. 사면초가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정도와 순리대로 밀고 가자고 다짐했다. 사방이 절벽이었는데, 표가 어느 틈으로 나와 나를 지지했는지…(웃음). 나를 지지한 대의원들에게 뭐라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보여줄 ‘한화갑식 정치’의 일단을 소개한다면?

    “물론 한 차원 높은 정치를 하는 것이 당원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를 대권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오해가 없길 바라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 당이 여당인데 국제적인 교류가 부족하다. 이번에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만 해도 우리가 초청을 못 받았다. 이것은 세계적 보수정당들이 만든 모임인 ‘인터내셔널 데모크라틱 유니언’에 가입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당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모임에도 가입하고, 일본의 자민당이나 중국의 공산당 등 국제적인 보수세력들과도 교류해야 한다. 과거에 내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격이 조금 맞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을 할 참이다. 또 중후한 책임정치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있다.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점차적으로 정치적 위상을 높여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런 결과가 올 수도 있겠지만, 꼭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가만있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억지를 부린다고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정도를 가면서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거기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기차가 선로 위를 가는 것처럼 나는 아예 팔자대로 살기로 작정했다. 그러니까 편한 것이다.”

    정치적 야심이 순리대로만 달성되겠는가.

    “앞으로는 정치 현상이나 모든 사회 현상이 과거와 달라 잠깐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정도와 순리대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항상 지키는 기본 자세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좋은 정책과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쟁자들이다. 경쟁에 이기면 성장하고, 지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생활정치라든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보통사람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지, 개발독재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와 같은 카리스마 리더십은 지나갔다. 사회도 다원화, 다양화돼 조화력이 필요하고 보통사람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나는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잘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원칙과 정도에 어긋나면 손해보더라도 타협하지 않는다. 정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권노갑 최고위원이 ‘당의 중심에 서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권위원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그분이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지, 그분 생각을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분과의 관계는 사적인 것도 있고 공적인 것도 있는데, 공적인 것은 공적인 대로, 사적인 것은 사적인 대로 그렇게 해나가면 된다.”

    말처럼 쉬울 것 같지는 않은데….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이번 경선 과정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안다. (목소리를 높이며) 그런데 사람은 근본적으로 정직해야 한다. 내가 좀 섭섭하게 했다 하면 미안하다, 이렇게 먼저 이야기한 다음 대화해야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덮어놓고 하려니까 대화가 진심으로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교정돼야 한다.”

    ‘양갑 불화설’이 계속 나온다.

    “불화설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갈 길 내가 가는 거다. 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다. 정치적인 행보를 내가 하는 것이다. 권고문도 대통령을 같이 보좌하면서 그분 행보를 그분이 하는 것이지, 나하고 상의하거나 내 길을 그분이 결정하는 게 아니잖은가.”

    당 쇄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전당대회가 끝났어도 거의 변화가 없는 듯하다.

    “그 질문은 내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경선 과정에서 최고위원 후보들이 당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다. 어떤 분은 ‘뒤집어놓겠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떤 경우라도 당을 비판할 입장이 못 된다. 내가 평생을 모신 분이 당 총재고, 같은 동교동 식구들이 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당을 비판하면 우리끼리 싸우는 것이 되고, 총재를 비판하는 것이 된다. 이 입장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의원이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그게 내가 갈 수 있는 정도다. 앞으로 정치는 경쟁과 협조를 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은 선배와 동료를 헐뜯고 상처 내고 거기에 올라타 내가 최고라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주장은 앞으로 지도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도 장점이 있고, 동료 선배도 장점이 있고, 이 장점 가지고 경쟁하자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한위원에 대해 킹 메이커냐, 대권 주자냐 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질문 없는 걸로 해달라(웃음).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기 팔자대로 사는 거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 따름이다. 거론할 시기도 아니다. 어린애가 먹을 밥이 있고, 어른이 먹을 밥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을 밥은 어린애 밥인데 어떻게 어른 밥 먹기를 흉내내겠는가.”

    차기 대통령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 정책이나 남북문제, 외교력은 한국 역사상 출중한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경제 문제도 IMF 외환위기를 벗어났고, 개혁조치를 완결하면 도약 단계에 들어선다. 남북문제는 처음이자 최고의 성공이다. 햇볕정책은 우리가 연구하고 만든 것을 우리가 실행하는 것으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이니셔티브 쥐고 실행하는 것이다. 다음에도 이런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 안착토록 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