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9

2000.08.31

월북자 가족들의 복권

  • 입력2005-10-14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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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북자 가족들의 복권
    지난 주 우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가슴뭉클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치매 노인의 말문이 열리고, 거의 기억력을 상실한 노인이 자식을 알아보는 이 기적 같은 일을 목격한 우리는 혈육의 정(情)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며, 언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무기력한 도구인지 실감하였다. 그러나 감동의 기억, 뛰고 있는 심장만을 갖고서 이 의연(依然)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드라마 뒤에 가려진 냉엄한 정치현실이 많은 질문거리와 숙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혈육이 만나는 것은 분명 ‘인도적인’ 사업이지만, 그 가족이 50년 전에 헤어지게 된 사실들, 그리고 북과 남의 가족이 다칠까봐 이산가족으로 신고하지도 않은 채 살아야 했던 지난 50년의 세월은 결코 ‘비인도적인’ 역사만은 아니다. 즉 북측 상봉단의 상당수, 특히 북한에서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저명 인사들 중 상당수는 남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쟁 발발 전후 북한을 선택한 월북자이며, 또 일부는 인민군에 징집되어 북조선 ‘인민’이 되었다. 더구나 방문단 단장인 유미영은 독립운동가의 딸이자, 남한에서 장관까지 역임했다가 동반 월북한 인사인 최덕신의 부인이다.

    이들 월북자 때문에 남측의 남은 가족들 대부분은 ‘빨갱이 가족’으로 지목받아 일찍이 소설가 김성동이 피울음을 토한 것처럼 “사람들이 침뱉고 발길질하고 죽여도 좋을 빨갱이 새끼”로 지난 수십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더러는 차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 땅을 떠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소설가 이문열처럼 자신을 고통에 빠뜨린 아버지를 원수처럼 생각하거나 원망하면서 살았다. 결국 인민군 입대자 혹은 자진 월북자 가족들은 단지 오랜 세월 사랑하는 혈육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 ‘이등 국민’ 혹은 사실상 ‘죽은 목숨’의 신산(辛酸)을 맛보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번에 상봉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의 대다수가 아직도 이 연좌제의 공포에 짓눌려 공개적으로 북에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사 월북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쟁 중 가족 구성원의 부역혐의로 테러, 학살당한 가족들 대부분은 더 큰 슬픔을 안고 이 상봉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이 광기의 세월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미 광인(狂人)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번의, 월북자가 상당수 포함된 방문단을 이렇게 환영하는 일을 두고 “왜 월북자들을 이렇게 환대하는가”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지적은 정당한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는 이들을 원수 취급하고 그 가족들에게 발길질하다가 이제 와서 이들의 만남을 ‘인도적인 사업’이라고 칭송한다면 정부로서는 일관되지 않은 자세를 갖고 있는 셈이다. 특히 납북자, 전쟁포로, 전쟁 당시의 희생자, 북파 간첩 등 남북이 체제 대립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고통받았던 모든 사람의 해원(解寃) 사업을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인 사업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이번의 조치 역시 정치적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의 이 상봉은 월북자 가족들을 사실상 완전히 복권해준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난 시절 반공 냉전정책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도 완전히 복권해줘야 할 것이다.



    감격은 순간이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과 이를 지켜본 우리들은 “왜 다시 만나서 함께 살 수 없는가”라는 물음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산가족 문제를 단순히 인도적인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산가족들을 50년 동안 만나지 못하도록 막았던 이 강고한 분단의 장벽, 그 장벽을 쌓아올린 사람들, 그리고 월북자 가족들을 ‘벌레 보듯이’ 하면서 발길질하고 차별했던 남한 사회와 보통의 남한사람들 의식에 흐르는 냉전의 찌꺼기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남북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날은 이러한 냉전의 잔재를 완전히 걷어내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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