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9

2000.08.31

“춤추는 이미지 써놓은 스크린 소설 보실래요”

  • 입력2005-10-14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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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노 로망’(Kino Roman)이란 낯선 문학장르를 가지고 6년 만에 귀국한 영화감독 김영혜씨(41). 흔히 생각하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급조해 소설로 만들거나, 시나리오 자체를 출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점에서 키노 로망은 오히려 시나리오에 가깝다.

    스크린 소설이라고도 하는 이 글쓰기는 러시아와 폴란드 등지에서 자리잡은 장르로 영화의 산문판(散文版)이라 할 수 있다. 즉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감정, 행동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행동과 대사만으로 사람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은 나중에 시나리오나 콘티의 기초가 된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여성과 사회’ 편집장을 지내며 영화 평론가로도 활약한 바 있는 김영혜씨는 “눈앞에 춤추는 이미지들과 내 귀에 속삭이며 들려오는 말들을 종이 위에 옮겨놓고 싶어” 첫 창작물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일일이 글로 붙들어매는 것이 힘들었고, 글로는 가능해도 이미지로 나타낼 수 없는 것들을 자꾸 집어넣으려는 자신과 싸우며 이 작업을 마쳤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런던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 K가 서점 진열장에서 고래 두 마리가 물을 뿜으며 유영하고 있는 그림엽서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K의 귀에는 어느덧 고래 울음소리가 들리고 엽서를 구입한 뒤 바다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 이후로는 만남의 연속이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젊은 여성, 추억으로 지탱하는 산장의 노인들, 권태로 지쳐버린 중년의 독신남자…. 마침내 바다에 다다른 K가 춤추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다 탄성처럼 나직이 내뱉는다. “아, 아버지!”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 ‘로드무비’가 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빼곡이 들어 있어 이 영화가 어떤 색깔일지 짐작하게 해준다.

    한때 평론가로 활약했던 김영혜씨는 94년 영국으로 건너가 영화진흥원에서 영화이론과정을 마치고, 사우스템스 칼리지에서 예술사와 사진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영국 국립영화학교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 올해 영화연출과를 졸업했다. 그가 만든 단편 ‘환멸’은 99년 부산국제영화제와 동숭아트센터 해외작가전 초대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솔로 트래블러’의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영국측과 첫 장편영화 제작을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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