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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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결투’ 홈런왕 누가 되나

박경완·이승엽·송지만 선두그룹…국가대표 차출 시드니 올림픽 기간이 최대 변수

  • 입력2005-08-22 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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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인의 결투’ 홈런왕 누가 되나
    2000시즌 한국프로야구의 홈런 순위는 자고 나면 바뀐다. 한마디로 예측불허다. 최후의 홈런왕이 누가 될지 도무지 점칠 수 없는 물고 물리는 레이스다.

    7월30일 현재 박경완(현대)이 29개로 홈런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홈런왕 이승엽(삼성)은 28개, ‘뉴 페이스’ 송지만(한화)은 27개로 박경완의 턱밑에 있고 박재홍과 퀸란(이상 현대), 우즈(두산)는 25개의 홈런를 때렸다. 심정수(두산)는 24홈런으로 선두를 5개 차로 추격하고 있다.

    총 133경기를 치르는 페넌트 레이스 일정을 70% 소화했지만 새 천년 홈런왕은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내심 누구를 점찍어두고 있을까. 역시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98년 22세 나이에 32홈런으로 이 부문 최연소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있다. 99년에는 우즈에게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해에도 38개의 홈런을 쳤다. 지난해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무려 54홈런을 쏘아올려 한국야구사에 금자탑을 세웠다. 어리지만, 그의 검증된 홈런 만드는 재주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승엽의 최대 강점은 힘으로 타구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유연성을 이용한 테크닉으로 홈런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구질이나 코스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담을 넘기는 재주가 뛰어나고 상대팀 에이스도 곧잘 공략한다. 이제는 관록도 붙어 피말리는 홈런 경쟁에서 심리적인 부담감을 스스로 삭이는 여유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올해도 역시 투수들의 집중 견제일 것으로 보인다. 요즘 경기에서 투수들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국민타자’ 이승엽과 정면승부를 펼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후반기 팀 순위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이 되면 이승엽을 볼넷에 걸리게 하거나 피해갈 것이 뻔하다.

    이만수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포수 홈런왕을 노리는 박경완은 이승엽을 가장 위협하는 복병이다. 그는 지난 83년 이만수가 세웠던 포수 부문 시즌 최다홈런 기록(27홈런)을 일찌감치 갈아치웠다. 그는 요즘 보기에도 시원시원한 파워 배팅으로 수원 담을 훌쩍 넘기고 있다. 프로 10년차인 박경완의 시즌 최다홈런은 지난해 기록한 23개. 올 시즌 홈런이 많아진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팔꿈치 부상이 큰 작용을 했다.

    평소 오른쪽 팔꿈치에 부서진 뼛조각이 돌아다녀 통증을 느꼈던 박경완은 지난 겨울 미국에서 이 부위를 수술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검진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팔꿈치 근육을 강화하면 단단한 근육이 뼛조각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기 때문에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결정이 박경완을 입단 후 처음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리게 했다. 그 결과 그의 파워가 월등히 향상됐다. 그가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화 이글스의 주력타자로 떠오르며 홈런 레이스에 가세한 송지만. 그는 2000시즌이 낳은 신데렐라다. 96년 입단한 송지만은 지난해까지 그저 그런 외야수로 평가됐을 뿐 한번도 각광받지 못했다. 타격 폼이 말을 탄 듯 독특한 기마자세인 그는 시즌 초반, 중심을 뒤쪽인 오른다리에 두면서 ‘방망이 감’을 잡았다. 그는 올스타전에서는 홈런 3방을 터뜨리며 최우수선수로 뽑혀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막판까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신데렐라 홈런왕 탄생의 관건이 될 것이다.

    박경완과 함께 현대의 ‘대포 트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퀸란과 박재홍도 홈런왕 후보로서 손색없는 주특기를 갖고 있다. 시즌 개막 3연전에서 6개의 홈런을 뽑아내는 등 초반 레이스를 주도했던 퀸란은 최근 페이스가 처지긴 했지만 몰아치기에 능하다. 요즘은 국내 투수들의 변화구에 상당히 빠른 적응력을 보여 후반기에 그의 방망이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96년 입단 첫해 홈런왕을 차지했던 박재홍은 자그마한 체구에서 믿어지지 않는 폭발적 힘을 뿜어낸다. KBO가 발간하는 선수 프로필엔 박재홍의 체격 조건이 분명 키 1m76, 몸무게 82kg으로 돼 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 이를 믿으려는 야구인은 별로 없다. 그만큼 ‘작은 거인’ 박재홍은 불타오르는 투지와 승부에 강한 강심장을 갖고 있다. 그의 홈런 비법은 뛰어난 손목 힘에 있다. 그는 다른 슬러거들에게 뒤지지 않는 홈런 비거리를 자랑한다.

    현대의 주축인 박경완과 퀸란, 박재홍은 상대 투수들이 쉽사리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승엽이나 송지만과는 달리 홈런 경쟁에서 서로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

    두산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우즈와 심정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충분히 극복할 만한 타구 비거리를 갖고 있다. 98년 용병 최초로 홈런왕에 등극했던 우즈의 올 시즌 홈런타구 평균 비거리는 122.9m. 이는 7명의 홈런왕 후보 중 가장 긴 거리다.

    잠실구장이 아무리 넓다 하지만 우즈의 타구는 외야 스탠드 중단이나 상단에 꽂힌다. 그의 대형 타구는 팬들을 즐겁게 한다. 이승엽(119.8m)에 이어 홈런타구 평균 비거리 3위에 올라 있는 심정수(117.5m)도 ‘헤라클레스’라는 별명대로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그는 요즘도 아침마다 날계란을 무려 20개나 먹어치운다. 이런 특이한 아침 메뉴 덕분인지 그의 팔뚝과 허벅지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에 가깝다.

    8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그라운드에 소나기처럼 시원한 홈런을 뿌리게 될 7명의 슬러거들. 이들의 홈런만들기 기술은 ‘7인 7색’이어서 섣불리 누가 낫다고 비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환경적인 변수는 있다. 오는 9월 호주에서 열리는 시드니올림픽에 국내 선수들이 대표로 차출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과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 홈런왕 후보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 KBO는 올림픽 기간인 9월17일부터 27일까지 리그를 중단할 예정이지만 대표선수들이 소집되는 9월8일부터 16일까지 9일 동안은 나머지 선수들로 경기를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대표로 선발되지 않는 홈런왕 후보들은 이 기간이 멀리 앞서갈 수 있는 찬스다. 우선 경쟁자들보다 타석에 들어서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는 데다 에이스급이 빠져나간 뒤의 그만그만한 투수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퀸란과 우즈는 아마 이 기간 무더기 홈런을 벼르고 있을지 모른다. 치열한 홈런 레이스 경쟁에는 시드니 올림픽이라는 중대 변수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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