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2000.08.10

냅스터의 패배…소수만의 승리

美 법원, 음악파일 교환행위 중단 명령…인터넷 전문가 등 “근시안적 결정” 비난

  • < 김상현/ e-저널리스트·my.dreamwiz.com/solaris/ >

    입력2005-08-22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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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전은 미 음반산업협회(RIAA)의 승리로 끝났다. 미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법은 7월27일 온라인 음악 교환 서비스기업인 냅스터(Napster)에 대해, 주요 음반업체와 일부 음악 출판사가 저작권을 가진 음악파일을 교환하는 이용자들의 행위를 중단시키라고 명령했다. 그에 따라 냅스터는 7월29일부터 모든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냅스터는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음반산업, 더 나아가 음악산업에 혁명을 몰고 왔던 한 벤처기업이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유니버설뮤직그룹 EMI BMG 소니 등 초대형 음반사들을 대변해 온 RIAA측은 자축 분위기에 젖었다. RIAA는 냅스터로 인해 음반 판매가 현저히 줄었으며 3억 달러(약 33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며 지난해 12월 법원에 소송을 냈었다.

    RIAA의 고문변호사인 캐리 셔먼은 “이 판결에 따라 음반업체와 냅스터가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이들이 밝히는 ‘상호 협력방안’이란 냅스터가 종래의 무제한적인 음악 공유에서 음반업체가 인정한 음악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냅스터측 변호사인 데이빗 보이스는 그러나 “냅스터는 네티즌들의 음악 공유를 가능케 한 ‘통로’였을 뿐”이라며 “이용중지 명령을 받은 저작권보호 대상 파일과, 아무 이용자나 내려받을 수 있는 비(非)저작권보호 파일을 구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냅스터측은 자사의 서비스를,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ISP업체에 비유해 왔다. 특정 ISP를 통해 음란물이나 반사회적 정보, 저작권법을 어긴 콘텐츠가 제공되더라도 그 책임은 이를 만든 곳에 있지 그 도관(導管) 구실을 한 ISP에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RIAA와 함께 냅스터를 제소한 인기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도 “말이 좋아 ‘음악 공유’지 그 실상은 불법 복제며, 더 나아가 도둑질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RIAA의 승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놀랍게도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시장 분석가와 인터넷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판결에 대해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15회를 뛰는 권투 경기에서 이제 고작 1, 2라운드를 뛰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명 랩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리더인 척 디(Chuck D)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뉴욕타임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인터넷은 미래의 라디오 같은 것”이라며 냅스터의 음악파일 공유 방식을 지지해 왔다. “정부는 인터넷상의 파일 공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은 한두 기업일 뿐 파일 공유의 문화는 아니다.”

    웹진 살롱의 칼럼니스트인 스콧 로젠버그는 판결에 대해 한층 더 비판적이다. “음악산업계는 이번 판결을 승리로 해석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더 깊은 무덤을 판 것에 불과하다. 음반사는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로젠버그는 RIAA나 이를 두둔하는 언론이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개 회사로서의 냅스터와, 심대한 ‘현상’(Phenomenon)으로서의 냅스터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냅스터라는 ‘회사’는 명백하다. 같은 이름의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여 벤처캐피털을 끌어모은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의 신생기업이며, 냅스터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대박’의 꿈에 부풀었으나 이번 판결로 치명타를 입은 힘없는 소규모 기업일 뿐이다.

    냅스터 ‘현상’은 이와 크게 다르다. 냅스터 현상은 이처럼 기업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인터넷 이용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음악을 찾아 마음대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해주는 냅스터 프로그램은 처음 나온 지 9개월여 만에 무려 2000여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연방지법 판사도 “이대로 가면 연말쯤에는 7800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을 정도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냅스터 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다. 한번 다운로드받아 설치하고 나면 두번 다시 쓰는 일이 드문 여느 인터넷 기반 프로그램과 달리 냅스터의 경우에는 설치한 사람의 80%가 이를 실제로 반복해 썼다. 리얼플레이어나 윈도 미디어플레이어의 40%보다 2배나 더 높은 수치다.

    “냅스터라는 기업은 바로 내일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 모르지만 냅스터가 처음 촉발한 아이디어는 그렇지 않다”고 로젠버그는 지적한다. “넷스케이프를 생각해 보라. 그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소멸됐다. 그러나 넷스케이프가 처음 만들었던 웹브라우저라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다.” 냅스터가 창안한 ‘P2P’라는 아이디어, 다시 말해 인터넷상에서 각 개인이 음악(또는 다른) 파일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은 수백만명의 머릿속에 살아남으리라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맞는 것 같다. 냅스터 폐쇄 명령이 나오자마자 누텔라(Gnutella)에 대한 접속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누텔라는 냅스터와 비슷한 인터넷 파일 공유 프로그램. 그러나 서버를 통해 개인 이용자들을 중개하는 냅스터와 달리 각 개인 이용자들끼리 직접 교신-공유케 하기 때문에 더욱 폭발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뿐이 아니다. CuteMX, 아이메시, 스카우어, 프리넷, 랩스터 등 냅스터와 비슷한 개념의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냅스터라는 회사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그 현상과 아이디어는 수백만 혹은 수천만 명에게 ‘전염’될 기세다. 로젠버그의 말대로, 음반산업계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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