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4

2000.07.27

반갑지 않은 물난리 추억

  • 입력2005-08-08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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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지 않은 물난리 추억
    장마와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갔다. 이때가 되면 비만 와도 온몸이 찌뿌드드하다는 외할머니의 신경통이 걱정되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수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유독 물난리를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시뻘건 흙탕물이 혀를 낼름거리듯 집안으로 들이닥치던 기억이 새롭다.

    어디를 가나 가난을 이삿짐 꾸리듯 끌고 다니던 우리 가족은 이사할 때마다 싼 집을 찾다 보니, 자연 상습 수해지역이거나 도로가 인접한 곳이었다. 강원도에 살 때는 물이 방안의 절반까지 밀고 들어와 온 가족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아버지는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들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디딤돌을 놓으셨고, 강아지가 떠내려갈까봐 지붕 위에 올려주시는 느긋함을 보여 가족의 원성을 샀다. 물론 아버지는 흙탕물이 빠져나간 뒤에도 돼지우리며 강아지집을 청소하느라 가족은 뒷전이셨다.

    또 서울에 올라와서도 큰 물난리를 겪었다. 그때에는 북한에서 쌀과 옷감을 보내줘 우리 가족도 동사무소에서 배급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학생이던 우리 형제들은 북한에서 보낸 물건이 얼마나 특별할까 호기심어린 눈으로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먹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쌀과, 유행에 뒤지기는 했어도 예전에 한두 번은 봤음직한 옷감들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는 그 옷감을 해진 이불 위에 호청으로 덧씌워 요긴하게 쓰셨다.

    그러고도 몇 차례 수해를 더 겪고 나서야 제법 탄탄한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그 이후 나는 결혼을 하게 됐다. 장마철의 무서웠던 기억 때문에 높은 곳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창 밖을 보며 아늑한 여유를 즐기던 내 행복도 남편이 이곳 갈현동에 가게를 얻으면서 끝나고 말았다. 작년 여름에는 가게 안까지 물이 들어와 얼마나 놀랐던지…. 시뻘건 물이 응큼스레 유유히 밀고 들어오는 통에 눈물을 글썽이며 물을 퍼내야 했다.

    올해는 장마가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작년에 수해를 당했던 파주나 동두천,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여태껏 수해복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스럽게 장마를 맞았으리라.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면 사라질 법도 한데 물난리는 해마다 거르는 법 없이 지속되고 있다. 장마철의 연례행사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천재야 어쩔 수 없지만 인재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타성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물난리로 인한 피해도 상당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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