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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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신도시 건설의 ‘모델 하우스’

20년대 건축가 17명이 빚은 ‘공동 주거단지’시초…국립현대미술관 “공간 배려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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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05-07-12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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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신도시 건설의 ‘모델 하우스’
    독일의 중부 지방도시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위치한 바이젠호프 언덕에는 새로운 건축 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독일 공작 연맹’의 실험주택이 있다. ‘독일 공작 연맹’은 1927년경 건축가와 예술가, 그리고 실업가들이 모여 독일 공업디자인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예술과 공업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태동한 모임으로 이들은 독일 근대건축 전개에 중요한 활동을 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고통받던 당시의 국내 사정으로 본다면 이같은 대규모 주택단지를 짓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독일 공작연맹에서는 개인주택들과 공동주택단지의 건설을 밀어붙였고 건축가와 예술가, 실업가들의 노력에 의해 바이젠호프 주거단지 계획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바이젠호프의 성공에 자극받아 이와 비슷한 계획을 추진했다. 지금까지도 바이젠호프의 주거단지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의 젊은 건축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실현된 건축의 미래와 비전 덕분이다.

    이 주거단지는 모두 33개의 거주 단위로 이루어져 단일 주택과 24세대가 입주하는 아파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단지 계획은 미스 반 데로(Mies Van der Rohe)가 중심이 되어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잔 네레, 네덜란드의 우트, 그리고 독일의 피터 베렌스와 발터 그로피우스를 포함하여 빅토르 부르주아, 부루노 타우트, 아돌프 라딩, 요제프 프랑크 등 당대 유명했던 건축가 17명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단지 안에 있는 모든 주택이나 연립주택들의 입구 정면에는 건축가들의 이름과 연대가 동판에 새겨져 있어 누가 설계하고 디자인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단순한 주택이라고 해도 그 집의 거주자들이 자신들의 집을 누가 설계하고 어느 건축가가 만든 것인지 오랜 세월 기억할 수 있도록 그 자취를 남겨 놓은 것이다.



    바이젠호프의 실험주택은 한 마디로 미래와 비전을 제시해 준 프로젝트였다. 이 주거단지 중심의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4층 아파트는 전체 계획을 맡았던 미스 반 데로의 작품이다. 각 층마다 8세대가 계단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단순한 구성과 합리성, 규격화 등은 미스 반 데로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그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외부도 깔끔하게 처리되어 단순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디자인한 모습이다. 그러나 내부는 외부와 달리 매우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두 채의 주택 중 단독주택은 그가 당시에 추구하였던 ‘신건축의 5개 원칙’을 정립한 것으로 자유로운 평면 구성과 입면, 띠 모양의 수평창, 피로티, 옥상정원의 5개 원칙을 구사한 주거형식이다. 이 다섯 가지 구상은 새로운 설계에 접근하는 자유스럽고 실용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건축의 표준화와 공업화를 추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주택은 외벽 창문의 수치(1.1×2.5m)에 의한 규격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모든 부분의 입구들을 이 규격에 맞추고 있다.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설계에서 노출 콘크리트가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고자 했고, 건축에서의 대량 생산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이 주택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만큼 주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건물의 역사성을 인식하면서 관리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 신도시 건설의 ‘모델 하우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두 채의 주택은 지금은 헐리고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의 문헌에 의하면 철저한 모듈 계획에 따라 완전한 공장 생산품으로 설계된 합리적인 원형임을 알 수 있다. 우트(J.J.P.Oud)의 연립주택은 데스틸(DeStil) 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대응하는 반복적인 형태의 리듬을 추구하고 있다. 정원과 골목의 출입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각각 표정이 다른 외관을 보여 주고 있는데 뒤쪽에 주방이 있다. 피터 베렌스(P.Behrens)의 작품은 한 가구의 평평한 지붕이 바로 다음 가구의 테라스가 되어 모든 세대가 전용 마당을 갖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샤론(H.Scharoun)의 주택 작품은 단순한 사각 상자모양이 대부분인 이곳 단지의 집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스팀(M. Stam)의 3세대 연립주택 작품도 우트의 작품과 같은 형태로 엄격한 비례와 규칙적인 리듬을 나타내는 경쾌한 균형을 보여준다.

    슈투트가르트의 국립현대미술관(Neue Staatsgalerie, Stuttgart 1977~84)은 영국인 건축가인 제임스 스터링(James Stirling)의 작품이다. 1926년 영국 글라스고우에서 출생한 스터링의 아버지는 조선 기술자였는데 이같은 사실은 그의 건축 작품에서 배 모양의 형태 구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임스 스터링은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신관 국제 현상에서 9명의 독일건축가와 3명의 외국 건축가가 참가한 가운데 1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 국제 현상은 1877년에 지어진 기존의 미술관과 나란히 서게 될 신관의 증축 계획에 따른 것. 구관에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낭만주의 작품들을 전시했으며, 새로 지은 신관은 20세기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이다. 처음에 국제 현상으로 이 미술관을 지을 때는 논란이 많았지만, 미술관 개관 이후 6개월 동안 관람객 수가 거의 100만명을 육박해 이런 국제 현상의 논란과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미술관은 80년대 초 독일의 새로운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뮌센그라드 바흐(Abteiberg Monchenglad Bach, 1972~82, Hans Hollein 설계)의 시립 미술관과 함께 특정한 장소와 공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유명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건축적 쟁점들을 제시했다. 신관에는 미국의 전후파, 서독, 피카소의 컬렉션 등이 차지하고 있으며, 바우하우스 운동과 관련 있는 작가들의 작품과 최근의 미술 경향을 보여주는 현대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이 미술관의 수준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도로에서 본 정면 입구에는 상징적으로 철제탑을 설치했으며 전시 내용들을 소개하는 사인들과 조형 작품들이 있다. 입구 테라스에서 조각공원으로 통하는 진입로는 계단보다 낮은 언덕을 오르는 통로로 설계돼 방문객들의 지루함을 덜어 주고 있다. 외부로부터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설계된 나선형 창문들은 실내에서 사진 촬영하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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