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2000.07.06

국정원 공채 8기 전성시대

‘기수 중시 검찰식 인사’ 첫 도입, 실무부서장 대폭 물갈이…‘정치 입김’ 축소로 조직 안정 기대

  • 입력2005-07-06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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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공채 8기 전성시대
    6월23일 국가정보원(원장 임동원) 부서장 인사를 단행했다. 한 마디로 ‘혁명적 인사’다. 1급 부서장 가운데 8명, 2급 부서장을 포함하면 10명 이상의 부서장들이 ‘대기발령’을 통고받았다. 인사폭도 대폭이다. 지원-참모부서의 일부 부서장이 유임되었을 뿐 실무부서의 거의 모든 부서장이 바뀌었다.

    국정원 역사에 이런 ‘혁명적 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0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뀔 때, 98년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뀔 때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는 말 그대로 급변기였다. ‘죄인 신세’이던 당시 상황을 지금의 ‘요순시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더구나 요즈음 국정원은 정상회담 성공의 막후 주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기수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의 인사관행을 국정원 수뇌부 인사에서 사실상 처음 도입한 것이다.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발탁되면 선배들은 옷을 벗는 것이 검찰 수뇌부 인사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국정원 수뇌부 인사에서는 그런 전례가 없었다. 때문에 그런 불문율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는 처음 ‘검찰식 인사’를 적용함으로써 이는 앞으로 국정원의 인사관행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런 인사가 전혀 ‘예상 외’는 아니었다. 지난 4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고 엄익준 2차장의 후임으로 김은성 대공정책실장을 발탁했을 때 이미 예고되었다. 공채 8기 출신인 김실장의 차장 발탁으로 그보다 공채 기수로는 선배-동기인 부하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대공정책실장 등 부서장 4명이 공석 또는 와병중이었으나 국정원은 수뇌부 인사를 남북정상회담 후로 미루어 왔다. 대폭 인사를 예고하는 징조였다.

    그 결과 국정원은 공채 8기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김은성차장을 필두로 C 대공정책실장, L 비서실장, L 감찰실장 등이 모두 공채 8기 출신이다. 국정원 일각에서는 국정원장을 보좌하는 핵심 보직을 맡게 된 이 ‘막강 8기’들의 팀워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또 국정원 직원들은 이번 수뇌부 인사로 적체된 인사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초 거론되던 조직개편은 이번 인사에서 단행되지 않았다. 정상회담의 성공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기쁜 일이지만 ‘나쁜 소식’도 함께 전했다. 남북관계의 호전으로 국정원의 대북정보 수집-분석 및 대공수사 기능이 크게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관련 부서 직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술렁거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임원장은 6월20일 직원들에게 “동요하지 말라”는 특별훈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대통령의 재가만 받으면 언제든지 조직을 개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인사결과만 보고 조직개편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국정원이 처음부터 개입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와 6·15 공동선언의 실천 및 조율을 위해서도 적어도 이를 뒷받침할 국정원장특보관(차관급 정무직) 제도의 신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기존 대북채널의 유지 및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정상회담에 깊숙이 관여한 김보현 5국장의 특보 승진과 S단장의 5국장 승계가 점쳐진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임원장의 첫 작품인 이번 부서장 인사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임원장은 그동안 지역차별 및 안배를 배제한 능력 위주의 인사를 강조해 왔다. 실제로 임원장은 정치권을 통한 인사청탁을 감찰실에 통보해 인사기록카드에 등재토록 해 오히려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게 할 만큼 정실인사를 철저히 배격해 왔다. 구설에 오른 일부 호남 출신들이 부서장에 기용된 측면도 있지만 정권교체 후 비호남 출신이 비서실장에 기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인사로 국정원 수뇌부의 조직 장악력은 더욱 커지는 반면 국정원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과 정치권에 대한 국정원의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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