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2000.06.15

참았던 첫 만남, ‘경제’가 핵심

북한, 우리측 선물보따리에 큰 기대…이산가족 문제 양보하며 더 큰 파이 요구할 듯

  • 입력2005-12-26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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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았던 첫 만남, ‘경제’가 핵심
    백남순 외무상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주룽지 총리(오른쪽)와 회담을 갖고 이례적으로 다롄(大蓮) 개방특구를 시찰했다(왼쪽). 이런 사전 정지작업 끝에 김정일은 최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를 시찰했다(오른쪽).

    DJ선생 건강은 정말 괜찮습네까? 우리 장군님(김정일 총비서)에 비하면 노인네기 때문에 걱정이 참 많습네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공화국에 오셔서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 아닙네까, 걱정 없겠디요?”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대외경제위윈회 참사 A씨가 한 말이다. A씨의 걱정 어린 말투는 의례적인 빈말이 아니었다. 비단 A씨뿐 아니라 그와 동행한 북한측 인사들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남한의 여론을 묻더니 “최고위급 (정상) 회담을 앞두고 DJ선생의 건강을 가장 염려하는 사람은 우리네 공화국 사람들일 것입니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들은 1994년 7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타계함으로써 조문시비 등이 불거지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된 경험을 의식하는 듯했다. 이들은 만에 하나 한번 더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더 없는 민족의 불행이라고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분단 55년 만에 처음인 남북정상간 만남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을 김일성 주석의 유훈과 연관지어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주석이 94년 카터 전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이후 타계 직전에 남겼다는 “내가 인민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조국통일이다”라는 유언이 그것이다. 이번 회담도 대내용으로는 ‘통일사업의 일환’임을 내비치는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그보다는 경제일꾼답게 실사구시적인 허심탄회한 대화를 더 많이 했다. 남한의 경제 방조(원조)와 비료 지원 등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이번 회담이 중차대하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의 방북도 5월10일 기한으로 틀어막고 있다고 했다. ‘귀한 손님’(DJ)이 오기 때문에 5월10일부터 정상회담 기간까지는 다른 손님을 아예 안받는다는 말이었다. 또 우리측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 역할을 하는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 조통련(조국통일연구원)에서 회담 준비와 이론 등을 지원한다면서 회담 준비의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요컨대 이들이 털어놓는 속내는 이번 회담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성에 비하면 너무 짧은 만남이라는 우려였다. 55년 만에 처음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의사소통하는 데서도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자칫 서로 오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밑에서 실무적으로 완벽한 자료를 준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8일 베이징에서 남북한 특사들이 만나 정상회담을 합의할 때처럼 밑에서 다 합의해 놓고 최고위급은 수표(서명)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바쁘다(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베이징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일 총비서는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비밀 방문(5월29∼31일)해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보름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김총비서는 공식적인 국제무대 데뷔전을 형제국 중국에서 먼저 치른 것일까. 왜 김총비서는 ‘결전’을 앞두고 자신이 갖고 있는 ‘패’를 까 보여준 것일까.

    조(朝)`-`중(中) 관계에 밝은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우선 김정일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이전에 전개된 일련의 흐름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했다.

    김정일은 지난 3월5일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전격 방문한 바 있다. 의전의 파격을 수반한 그의 중국대사관 방문 이후에는 백남순 외무상의 중국 방문(3월18∼22일)이 이어졌다. 백남순 외무상은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등과 회담을 갖고 쌍방 친선관계를 확인하는 한편 지방도시를 시찰했다.

    백남순의 중국 방문은 탕자쉬안 외교부장 방북(99년 10월)에 대한 답방으로서 양측이 시종 ‘쌍방 친선 발전’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 복원 및 강화에 주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이한 점은 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방중 때와 달리 ‘중국의 대북지원 문제’ 등 구체적 합의사항이 발표되지 않은 점이다. 그러나 당시 김영남은 중국측의 개방특구 방문 요청을 거부했다.

    주목할 점은 그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중국의 대북지원 문제’ 등 합의사항이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백남순 외무상이 중국측 요청을 받아들여, 혹은 김정일 총비서의 지침에 따라 다롄(大蓮·3월20, 21일)을 방문한 점이다. 그동안 중국을 방문한 북한 고위 인사들은 중국 개방개혁의 상징인 개방특구 시찰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원시해 왔다. 김일성-김정일이 교시한 중국과는 다른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 원칙 때문이었다. 따라서 백남순이 다롄을 둘러본 것은 중국 개혁-개방의 현장 방문이라는 의미가 있다.

    당시는 일부 언론의 보도로 김정일 방중 또는 중국 지도자의 방북 관련 사안이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3월21일 정례 기자브리핑 답변을 통해 “양국 지도자의 상호방문에 대해 현재 협의중”이라고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북한측의 ‘사인’을 받은 김대중대통령이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대북 특사로 임명(3월17일)한 이후 남북한 사이에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전격적인 비밀 방중은 이런 사전 정지작업을 거친 끝에 나온 것이다. 앞서의 소식통은 “김정일의 개방 의지는 확고하다”고 단언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의 불안감을 떨쳐버리려는 김정일 총비서의 의도된 자신감과 독특한 스타일이 그의 방중을 더 전격적으로 비치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일 총비서는 그가 평소 즐기는 군사용어 ‘전격전’(電擊戰)을 수행하듯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본격적으로 ‘정상외교’의 길에 나서는 방법을 택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허(虛)를 찌른’ 그의 외교공세는 드라마틱한 행동을 좋아하는 그의 정치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정상외교의 세계 조류를 타면서 내부적으로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하려는 면밀한 계산이 깔려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총비서의 귀국 후에 중국 당국이 한국 정부에 브리핑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일-장쩌민 두 사람은 극소수의 인물만 배석시킨 채 진행한 회담에서 북한-중국 양자관계, 양국 국내정세와 개혁개방 정책,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3개의 의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브리핑에서 공개한 발언록의 핵심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성공한 것을 평가한다”(김정일)며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지난 1987년 7월 역시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던 김총비서는 당시 중국식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深 土川) 특구를 돌아본 뒤 귀국해 ‘주체사상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이란 논문을 발표해 중국식 개방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었다.

    그의 수사적 발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장쩌민 주석과의 회담을 끝낸 뒤에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과 중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제조업체인 롄샹(聯想)그룹을 방문해 첨단산업시설을 둘러봤다는 점이다. 그가 중관춘을 찾은 것은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T) 산업 수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한편, 컴퓨터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외부에 드러내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와 관련,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김정일은 최근 하루 두 시간 넘게 웹서핑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개발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IT 수준은 대단히 낙후한 편이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만큼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이 IT 업계의 분석이다. 최근 평양에 다녀와 한국을 방문한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회장도 북한의 소프트웨어 개발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24일 내각에 전자공업성을 신설했다. 세계적인 정보화 물결과 전자산업 발전 추세를 받아들여 경제 재건의 토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북한 컴퓨터 관계자들은 김정일 총비서가 관계자들에게 “컴퓨터를 안하면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컴퓨터산업에 주력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컴퓨터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외부에 드러내려는 의도는 정상회담을 앞둔 김대중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앞서의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대중대통령의 ‘지식강국’ 논리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DJ가 ‘김정일 연구’에 들어갔듯이 김정일도 ‘DJ 연구’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에 비춰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정보수집을 통해 김대중대통령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인터넷 선진국 한국을 지식정보의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논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두 정상간의 대화에서는 김정일의 ‘강성대국’ 대 DJ의 ‘지식강국’의 논리가 자연스레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김정일의 태도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것은 탕자쉬안 외교부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민주당 대표단에 김정일의 방중 결과를 설명하면서 “과거 김총비서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시각은 미국을 위주로 하는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한반도 내부의 문제는 남북 쌍방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크게 바뀌어 있었다”고 밝힌 대목이다. 물론 이는 김정일-장쩌민 회담에 배석한 탕자쉬안 자신의 느낌을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추가로 전한 다음과 같은 김정일의 회담 발언 요지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김정일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을 평가한다. 이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제기한 개혁-개방정책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선은 이제 ‘고난의 행군’을 끝마치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선은 자국의 상황에 근거해 조선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중국은 자국의 실제에서 출발해 중국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조선은 이제 고난의 행군을 끝마치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그의 자신감과 개방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역으로 식량난의 해소와 경제의 회복으로 개방에 대한 자신감이 섰기에 김정일이 정상회담에 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중요한 대목은 그가 “경제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경제문제 해결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가 경제문제를 틀어쥐겠다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가 ‘조선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중국식 개방개혁에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지도자가 한다면 하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특성을 감안하면 무섭게 경제 건설에 매진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물론 그 기폭제는 남북정상회담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분단 55년 만의 첫 정상회담이 곧바로 경제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측은 우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에서 확인된다. 최근 탈북자 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에서 북한 난민 1000여 명과 남한 주민 5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남-북한 주민 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북한 사회의 통제와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낙후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4쪽 기사 참조).

    이와 같은 결과는 회담의 의제와 관련해 회담 전망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대와 부담은 남북한 당국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대북 투자를 해온 베이징의 P회장은 “특히 정상회담 이후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만에 하나 회담이 결렬되거나 오히려 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어 남한의 경제지원을 받아내지 못할 경우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상회담 이후 국민에 안길 ‘선물 보따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뜨거운 기대감은 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북한을 방문하고 온 인사들의 경험담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5월초 제12차 대북 지원품을 실은 화물선을 타고 남포에 다녀온 허연실 전 국제옥수수재단 기획과장은 “한결같이 정상회담 이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기대에 들뜬 모습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최소한 경제회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성사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정상회담이 당초 당국자간 경제회담을 원하는 북한의 제안을 계기로 해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즉, 당국자간 경제회담을 원하는 북한의 움직임을 간파한 국가정보원이 정상회담 카드라는 역제안을 내놓음으로써 북한측은 고민에 빠졌고, 이후 국정원과 북한측의 물밑 협상 끝에 김정일이 정상회담 카드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단행함으로써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이 결렬되지 않는 한 당초의 남북한 구상대로 ‘경제회담→정상회담→경제회담’ 식의 순환 과정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상의 경제공동위가 가동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한측은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전력 북송 등 SOC(사회간접자본)지원을 고리로 최소한 이산가족 문제에서만큼은 최대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할 것이고, 북한측 역시 이산가족 문제를 고리로 최대한의 경제지원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이산가족 문제가 경제회담의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 즉 북한식으로 말하면 ‘가족 찾기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태도를 보인 점이다.

    북한측은 지난 5월초 민화협을 내세워 남한의 모방송국이 추진하고 있는 ‘가족찾기 사업’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아태평화위원회와 민경련이 전담해온 교류협력사업에서 민화협의 등장은 향후 문화교류사업을 민화협이 전담하겠다는 사인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이는 그동안 북한측이 상대하기를 거부해온 남한 민화협과의 교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남한 공영방송의 ‘가족찾기 사업’은 김정일 총비서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김정일 총비서의 인도적 차원의 ‘통큰 결단’과 경제 건설을 틀어쥔 김총비서와 북한 동포들에 대한 김대중대통령의 대북 경제지원 약속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서로 내밀 수 있는 ‘카드’이자 남북한 주민들에 대한 ‘선물 보따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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