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7

2000.06.08

국익 앞에 인권은 없다?

대중국 공정무역관계법안 압도적 찬성 통과…정치적 도덕성보다 경제적 도덕성 선택

  • 입력2005-12-20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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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익 앞에 인권은 없다?
    미 지식인 사회가 표로 한판 승부를 펼쳤다.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의 역사적인 줄다리기였고, 팽팽한 접전이었다. 미 하원이 지난 5월24일 대중국 공정무역관계(PNTR·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to China)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단순한 표 대결이 아니었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눈감아주고 환경 문제를 외면하면서까지 13억 시장을 잡아야 하느냐는 도덕성 문제가 바닥에 깔려 있었고, 중국 위협론이 버젓이 거론되는 상황인데도 경제 포용(economic engagement) 정책을 펴야 하느냐는 안보 문제도 걸려 있었다. 의회에서는 민주-공화 양 당이 갈렸고, 당적을 떠나 소신에 따른 찬반론으로 나뉘었다. 의회 밖에서는 이익단체와 로비스트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결과는 예상 밖으로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찬성 237표 대 반대 197표라는 압도적 차이였다.

    자유 무역파와 경제 포용파의 대승리였고, 1993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클린턴 대통령의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클린턴 개인의 승리라는 평이 나왔다. 임기 말에 국내 문제보다는 외교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클린턴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선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무역 법안 반대파들은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높이 쳐들고 쉽게 꺾이지 않을 기세로 덤벼들긴 했지만, 그들은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 중국 전략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주와 인권 문제가 반대파들의 목소리를 높여주었지만, 중국을 자유 무역의 파트너로 삼지 않을 경우 미국을 의심하는 중국 내 강경파들의 입지만 강화시킬 뿐이라는 클린턴의 논리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중국의 체제 개혁도 자유 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클린턴의 논리였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액은 무려 85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산 의류와 신발, 장난감과 스포츠 용품 등이 무차별로 미국에 쏟아져 들어온다. 의류와 신발만 해도 150억 달러어치가 넘는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나마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전기-전자 장비와 부품 정도다. 인구 13억의 중국 시장에 수출하는 미국산 제품보다 인구 고작 350만명인 싱가포르에 수출하는 물량이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자유 무역 상대로 기정사실화할 경우 미 국내 노동력 시장이 잠식당하고 중국산 수출품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것은 뻔한 일이라는 것이 PNTR 반대론자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기업의 논리는 전혀 반대다.

    “중국을 세계사회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이번 법안은 중국의 민주주의와 세계 안보를 위한 것이다”는 빌 게이츠의 법안 찬성 논리 이면에는 13억이라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속셈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미 국민의 50%가 컴퓨터를 소유한 반면, 중국의 컴퓨터 소유자는 전체 인구의 2.5%밖에 되지 않는다. 1997년 중국은 세계 6위의 컴퓨터 시장으로 부상했고, 내년 말이면 세계 3위로 올라선다. 작년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네배로 늘었으며, 올해에는 두 배가 더 늘어나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사 같은 회사가 그냥 둘 리 없고, 대 중국 무역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를 쓰고 로비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이미 향후 6년에 걸쳐 중국의 컴퓨터 연구소 활성화에 8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결국 의회가 PNTR에 반대하고, 중국 인권 문제를 걸고넘어지면서 매년 최혜국 대우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경우 미국처럼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일본이나 유럽 등 경쟁국에 뒤지고 만다는 것이 PNTR 논쟁의 핵심이었다.

    PNTR는 마침내 통과되었고, 그 결과물은 미국의 대 중국 수출 증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매년 20억 달러에 달하는 미 농산물을 비롯해 통신 장비와 인터넷 산업이 중국 진출의 길을 열게 된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관세 장벽이 낮아지긴 하겠지만, 그 뒤에는 새로운 관료제의 두터운 벽이 가로막고 나설 수도 있다. 더구나 중국은 이미 자국 시장으로 미국의 경쟁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쳐놓았다. 이는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 때 캐나다와 멕시코 시장에서 미국이 경험한 바다.

    대 중국 정상무역관계법안은 미국 지식인사회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중국 무역법안을 계기로 인권, 자유 무역, 국가 안보의 3대 이슈를 논하는 가운데 지식인사회는 미국의 진정한 이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해야 했다. 1972년 닉슨의 베이징 방문에 이은 역사적인 토론이었다. 포용 정책을 통해서만이 중국을 개혁시킬 수 있다는 자유 진보주의자들의 논리에 맞서 진보적인 인권운동가들과 보수 도덕주의자들은 지금도 베이징을 응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미국은 정치적 도덕성이 아닌 경제적 도덕성을 선택했다. 자유 무역이라는 독트린 위에 세워진 실용주의의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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