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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정치 참여

독일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실습’

청소년의회 '토론의 장'… 정치 무관심 해소·정책에 반영 '일석이조' 효과

독일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실습’

독일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실습’
하이델베르크. 활기가 넘치는 열댓 명의 청소년들이 짝지어 대화를 나누며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하이델베르크 청소년의회 의원들이다. 청소년의회? 청소년들이 모여 의회를 만들었다고? 이 말을 듣는 한국의 독자들은 “일종의 가상의회 같은 것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 의회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명실공히 하이델베르크시의 의회와 행정기구에 구체적으로 참가하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기구다.

1999년 5월, 2년 동안의 토론과 준비 과정을 거쳐 설립된 청소년의회는 14∼21세까지의 청소년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급학교의 대표들이 모여 그들 중에서 20명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한 것이다. 독일 학제의 특성을 고려해 학교 유형별로 의원 숫자가 분배되어 있는데 중학교 및 특수학교, 그리고 실업학교에서 각각 3명, 김나지움 7명, 직업학교 7명으로 이뤄져 있다. 대학생들은 이 기구에 포함되지 않으며, 나이를 21세까지로 한 것은 실업학교나 김나지움을 마치고 직업교육을 택한 청소년들의 연령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나이로 보면 16∼19세까지가 가장 많다. 명예직의 청소년 의원들이 관장하는 연 예산은 1만∼1만5000마르크로 별로 큰 액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구의 중요성은 예산의 분배보다도, 이것을 통해 청소년들을 지역사회의 정치적 진행과정에 참여시키는 데에 있다.

청소년 의회를 방문하여 회의 진행을 지켜본 사람들은 일반적인 의회 진행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회가 시작될 수 있도록 의원들이 자리에 있는지 서로 확인하고, 서기는 회의록 작성을 준비한다. 이어서 의장이 개회 선언을 하고, 지난번 회의에서 결정된 당일의 토론 안건이 열거된다. 회의 안건은 필요에 따라서는 합의를 거쳐 즉시 추가될 수 있다. 의원들이 의견을 발표하려면 손을 들어 의장에게 발언권을 얻어야 하며, 의장은 발언 요청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도록 노력한다. 서기는 가끔 토론이 혼란해지면, 기록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제동을 건다. 의장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안건이 논의될 수 있도록 조절을 한다. 회의 모습은 기대 이상으로 질서정연하고 민주적이면서도 활기가 있다.

지난 2월 열린 청소년 의회에서는 의회가 주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의 연장 운행 문제가 심도 깊게 논의되었다. 설문조사는 청소년의회의 활동 목표를 구체화하고, 청소년의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지도와 기대, 그리고 청소년들의 관심사와 시 당국에 대한 요구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실시되었다.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작업팀은 그 결과를 세밀하게 도표로 만들어서 보고했는데, 제3자가 보기에도 노력과 정성의 흔적이 역력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사회에 가장 바라는 것은 밤 12시 정도면 끝나는 대중교통 수단의 운행을 새벽 2∼3시까지로 연장해달라는 것이었다.

청소년 의회에서의 토론은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할 관련기구들을 점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운수업체, 시 교통당국, 시 교통위원회, 청소년부 등을 설득하기 위한 논거와 전략 등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역 사회를 구성하는 행정 조직과 이들 사이의 업무 연관성까지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알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하이델베르크시가 청소년국의 전문요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청소년들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청소년국은 이 청소년의회를 후원하는 가장 든든한 조직이다. 청소년의회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한 것도 청소년국이었다. 지금까지 청소년의회를 지원해온 전문요원 놀렉씨는 이들 ‘젊은 의원’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렉씨 역시 “의원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질서있게 회의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회의를 이끌어 나가고,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실천해야 했다는 것. 그는 “물론 의회를 구성하는 청소년들의 성실하고 의욕적인 자세가 아니었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델베르크의 청소년의회는 그러나 이 도시만의 독자적인 기구는 아니다. 하이델베르크가 속해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는 현재 약 60개 지방자치 단체에서 이와 유사한 청소년의회, 또는 심의회의 형태로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 활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 사회가 이렇듯 청소년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마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우선 독일 사람들은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회에 반영하고 정치적 삶을 공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90년대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정치적 무관심, 나아가 냉소적인 태도였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원인이 드러난다.

첫째, 무력감. 청소년들은 스스로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자신들은 정치적 현실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고 느낀다. 둘째, 정치적 무능력. 즉 정치에 대해 불충분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적 능력과 표현 부족으로 정책 결정에 기여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다. 그러나 이 무력감과 무능력은 청소년들이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의 요소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청소년들은 환경파괴,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건강에 대한 위협, 에이즈의 확산, 경제 위기, 실업 등을 바라보면서 불안감을 갖게 된다. 이 사회적 현실이 주는 불안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며, 이것은 다시 더 큰 불안을 가져온다. 이런 정서적 불안의 쳇바퀴는 정치에 등을 돌리게 하며, 결국 사회현안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거부하게 만든다. 셋째, 불투명성. 어떤 정치적 결정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정치적 전개과정이 투명치 못하며 정치 지도자들의 입장과 정책적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넷째, 불신. 정치인들이 내리는 정치적 결정이 적절하고 올바르며, 국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청소년들은 누적되어 있는 사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치가들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청소년들 중 약 16.5%만이 정치가들의 문제 해결능력을 인정하고 있을 뿐, 50.8%는 정치가들의 문제 해결 능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청소년들의 정치적 냉소주의가 생겨나고 있다. 결국 청소년들은 ‘정치가들의 목적은 개인의 출세이며, 정치는 이것을 위한 지저분한 쇼’ 정도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교육전문가인 클라우스 후렐만에 의하면 폭발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가 이렇게 인식되면 국가 자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삶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 빠지거나 극우 또는 극좌의 성향으로 돌변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적 붕괴의 첫 징조라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의 이러한 의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가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였다. 여기에는 물론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의회야말로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문제에 정통한 하이델베르크시 청소년국의 놀렉씨는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는 일종의 교육과정임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가 몇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청소년들이 지역 정치 시스템에 적극적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 정치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주는 교육, 그리고 이런 참여를 통해 실제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적절한 정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청소년의회의 구성을 환영하는 하이델베르크의 여시장 베버가 청소년들 앞에서 한 축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경청할 구절이 있다.

“청소년 참여를 위한 지역정치 활동이 단지 형식적 기능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허구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자신들이 상징적으로 정치에 이용되고 있음에 환멸을 느낄 것이다.”



주간동아 2000.05.18 234호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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