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4

2000.05.18

“나 여기 있소” 너도 나도 거물 연습

총재·국회의장 등 경선 12명 출마 채비…4선 이상은 전원 도전

  • 입력2005-11-04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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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K엔 병졸은 없고 장수만 있나?’ 한나라당 PK(부산-울산-경남)의원들의 동향이 요즘 정가의 화제다.

    한나라당 전당대회(5월31일)와 16대 국회 개원(6월5일 예정)을 앞두고 너도나도 총재-부총재 경선 아니면 국회의장-부의장 경선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4·13’총선 결과 PK 지역구 당선자는 모두 38명(부산 17명, 울산 5명, 경남 16명)이며 무소속 정몽준의원을 뺀 37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12명이 경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선언할 태세다. 3명 중 1명이 이번 기회에 ‘지도자 반열’에 오르겠다고 벼르고 있다.

    가장 먼저 출발선에서 뛰어나간 인사는 5선의 강삼재의원. 그는 일찌감치 총선 과정에서 당권도전을 선언했고 현재 대의원들을 상대로 표밭갈이에 한창이다.

    ‘이회창총재에 대한 도전이 아직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해 부총재 경선에 도전한 인사들은 과장해 표현하면 ‘부지기수’(不知其數). 부산의 경우 5선의 김진재의원이 먼저 출마선언을 했고 4선의 유흥수, 재선의 정의화의원이 뒤를 이었다.



    경남지역 당선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4선의 하순봉 박희태의원과 재선의 김용갑의원이 부총재 경선 참여를 선언했거나 그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울산의 김태호의원(4선)도 부총재 자리를 노리고 있다.

    국회의장단 자리를 놓고도 ‘출마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PK지역은 물론 한나라당 전체로 봐서도 최다선(6선)인 박관용의원이 의장 경선 출마의 뜻을 밝힌 가운데 5선의 정재문 김종하의원과 4선의 김동욱의원이 부의장직을 마음에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4선 이상의 PK의원 10명이 ‘전원 출마’하는 셈이다(출마예정자 12명 중 2명은 재선). 이는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부에서는 ‘다선의원 홍수 탓’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역정서 탓에 ‘선수(選數) 쌓기’가 수월했던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다선의 중진이 많으니 선수에 상응하는 자리를 노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는 것.

    실제로 PK의원 중엔 다선이 유난히 많다. 37명의 한나라당 PK당선자 중 4선 이상이 10명(27%), 3선 이상이 16명(43%)이나 된다. 한나라당 전체를 보더라도 4선 이상 지역구당선자(23명)의 43%, 3선 이상 지역구당선자(39명)의 41%가 PK다.

    다른 쪽에서는 총선에서 타당 소속의 PK중진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을 요인으로 들기도 한다. 민주당의 노무현 김정길, 민국당의 이기택 신상우 박찬종 김광일, 무소속의 서석재씨 등이 2선으로 밀려난 것을 ‘PK의 얼굴’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보다는 PK의 ‘백가쟁명’ 양상을 구심점 부재 탓으로 분석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YS라는 맹주가 물러난 뒤 ‘지도자’로 꼽을 만한 인물이 부상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교통정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것. 즉 ‘사분오열’이 ‘무주공산’에서 비롯됐다는 논리다.

    PK당선자들이 대거 경선에 나서려는 데 대한 지역여론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 고장엔 인재도 참 많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보다는 “다들 그러다 어쩌려고…”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는 것.

    PK후보를 단일화하거나 줄이지 못할 경우 당선자를 못내는 최악의 상황마저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거론되고 있는 PK들이 모두 출마할 경우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선자를 아예 못낼 수도 있고 한두명이 나오더라도 6, 7등(경선으로 뽑을 부총재는 7명임)이면 지역정서를 대변할 힘있는 부총재를 내기 어렵다.”

    물론 PK당선자들도 이런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 더욱이 ‘라이벌’인 TK지역에선 출마자가 적고 후보단일화 논의도 착착 진행중이라는 사실도 PK당선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에서는 강재섭 박근혜의원, 경북에서는 이상득의원만이 부총재경선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그래서 후보단일화 논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부산지역 당선자들의 경우 4월26일 모임(김진재의원의 부산 자택 만찬)과 5월1일 회동(서울 여의도 63빌딩 오찬) 등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박관용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김진재의원을 부총재 후보로 미는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일부 당선자들이 반발, 합의도출에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유흥수의원은 시지부장 자리를 고사하고 부총재 경선 출마를 결정했고 정의화의원마저 출마를 선언, 후보단일화 논의는 물 건너갔다는 것.

    부산의 한 재선의원은 단일화 논의와 관련한 중진들의 자세를 강하게 비난했다. “단일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립적 입장에서 논의를 주도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4선 이상의 신망 있는 인사 중에 중재자가 나와야 할텐데 하나같이 총재단이나 의장단을 노리고 있으니 교통정리가 되겠는가.”

    이런 사정은 경남지역도 비슷했다. 경남지역 당선자들은 4월26일 회동 등을 통해 나오연의원을 도지부장으로 선출하자는 데는 만장일치로 합의했지만 부총재 경선 문제에서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렇다고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선이 가까워지면 ‘약체후보들’이 중도포기,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아직은 그럴 가능성도 작아 보인다. 출마자들의 각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총재 경선 출마 선언자 중 비교적 약체로 꼽히는 한 후보의 측근은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왜 후보가 난립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건 PK정치판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PK지역을 싹쓸이했다. 후보가 예뻐서 그랬겠는가. 당선자들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못 보여주면 다음번엔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가만있을 정치인이 어디 있는가. 후보단일화는 어림없는 얘기다. 지금 PK엔 조정자도 없고 구심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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