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2000.05.11

믿었던 의학상식 ‘오류 투성이’

‘섬유질은 결장암 예방’ ‘구강 성교는 에이즈 안전’ 등 소문난 정설 “사실 아니다” 결론

  • 입력2005-11-01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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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었던 의학상식 ‘오류 투성이’
    최근의 의료정보를 접하면서 의사인 필자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학설을 뒤엎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겼던 설(設)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예는, 물론 최근에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학은 완벽하지 않으며, 새로운 발견과 경험이 축적됨으로써 발전하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맥을 절단하여 피를 빼는 방혈(放血)이 건망증 청력상실 뇌졸중의 치료법으로 이용됐다. 질병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 혈액이 정체되어 생긴 것이므로 방혈을 통해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 근거였다. 당시 외과의사 겸 이발사는 피를 뜻하는 적색과 붕대를 뜻하는 백색의 줄무늬 기둥 위에 피를 받아내는 세숫대야를 걸고 방혈 치료를 한다는 광고를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이발소 상징물로 남아 있음을 보면 당시 인기가 굉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근대에 이르러 혈액에 대한 생리적 고찰과 각 질환에 대한 원인이 밝혀짐에 따라 더 이상 이러한 통념은 없어지게 됐다.

    현대의학은 통계적 타당성을 갖추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요즘도 어제까지의 정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일이 많다. 최근 섬유질을 많이 먹으면 결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설이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학설은 1970년대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촌지역 주민들의 결장암 발생률이 생활이 윤택한 서방지역 주민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대두됐다. 섬유질이 대변을 크게 만들고 발암물질들을 희석시키며 나쁜 물질들을 소화관을 통해 신속하게 체외로 배출시킨다는 점들이 지적되면서 보건당국은 결장암 예방법으로 고섬유식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보고서에서 저지방-고섬유 식사를 하게 한 결과 결장암 시작의 제1단계인 용종 발생률이 전혀 낮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학과 또다른 연구보고서에서도 섬유질과 결장암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흡연을 할 경우 인체는 치매를 예방하는 유일한 이득을 얻는다”는 일부 학설은 최근까지 통용됐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리처드 피토 박사는 3만4439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6~12년 간격으로 50년에 걸쳐 흡연습관을 기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들 중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473명이었고, 치매발생률은 생전에 담배를 피웠던 사람들과 전혀 피우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 40%였다고 한다. 그는 이 조사에서 치매발생률이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금까지의 신뢰할 만한 증거로 평가했을 때 오히려 흡연이 조금이나마 치매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미 통제센터에서 발표한 구강성교를 통한 에이즈 감염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모든 체액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적어도 구강성교를 통해서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샌프라시스코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102명의 환자를 조사한 결과, 8명은 구강성교 외의 다른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전체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의 약 8%는 구강성교가 원인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구강성교는 안전하다고 여겨 상대와의 구강성교에는 별로 주의를 하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원인이 되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많은 애처가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여성을 당황하게 한 내용도 있다. 유방을 너무 자주 만지는 것이 오히려 유방암을 일으킬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이는 자가진단 또는 배우자에 의한 진단 횟수가 많을수록 유방암을 미리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것이다. 연구대상인 유방암 환자의 18% 이상이 일주일에 몇 번씩 또는 하루에 한 번씩 스스로 또는 남편 등이 유방을 만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나치게 민감하게 유방암에 반응하는 여성들은 자주 유방을 만짐으로써 오히려 암의 조기진단을 방해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자궁절제수술을 받은 여성은 성생활이 위축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정반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매릴랜드대학 의대교수인 크리스텐 크예룰프 박사는 미 의학협회저널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궁절제수술을 받은 여성은 수술 후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나아지고 생활의 질이 향상돼 성기능과 성생활도 크게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자궁 질환에 의한 심한 골반통과 요통으로 자궁을 절제한 35∼50세 여성 1132명을 대상으로 2년에 걸쳐 수술 전과 후의 성생활을 비교한 결과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생활을 조사한 결과 성교 횟수도 수술 전에 비해 늘었을 뿐 아니라 오르가슴을 경험하는 여성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면서 성기능 저하를 우려해 자궁절제를 망설이는 많은 여성들이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궁절제수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식생활을 통해 건강을 지켰던 이들에게 충격이었을 법한 연구결과도 있었다. 이른바 좋은 콜레스테롤도 나쁜 콜레스테롤과 마찬가지로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미 심장학회의 발표가 그것. 최근까지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과다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여 동맥경화를 막아 심장병과 뇌졸중의 위험을 줄인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발표에 의하면 좋은 콜레스테롤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혈관에 염증반응을 일으켜 심장병과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설들이 다시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의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차 거짓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현재의 정설을 가볍게 평가해선 안된다. 어디까지나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하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없는 정설의 맹신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정설의 경시나 정설에 대한 무지다.

    우리나라는 비의학적인 주장에 대해 관대하다. 효과도 없으면서 건강식품이란 이름으로 약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으며, 검증되지도 않은 의학적 발견들은 또 얼마나 쉽게 유포되고 있는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학적 통념의 잇따른 파기현상은 현대의학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비의학적인 사실들에 대한 관용 또한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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