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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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오빠, 제 e-메일 보셨나요”

DJ 주소 공개 후 하루 500통 이상 폭주…민원 부탁·건강 걱정 등 사연도 가지가지

  • 입력2005-10-26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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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오빠, 제 e-메일 보셨나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44세로 주부이자 대전대학교 문과대학 문예창작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김○○입니다. 오늘 날짜 신문에서 대통령님의 e-메일 주소를 봤지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두서 없이 이렇게 글을 올리는구먼요… 대통령님의 글을 전에 읽었습니다. 감옥에서 마흔이 훨씬 넘어 영어를 공부하셨다는…. 저도 사실 그 말씀에 많은 도전을 받았답니다. 올해 제 아들놈이 대학 1학년인데 같이 장학금 타자고 약속했지요. 저요? 작년에 과 톱(top)했습니다요. 죽기 살기로 공부했지요. 늘 건강하십시오. 참, 다음 번에 국민과의 대화 시간에 저 좀 불러주실 수 있으신지요. 대통령님 바로 뒷좌석에 앉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대통령님 파이팅!!”

    (4월24일, 김○○)

    김대중대통령 앞으로 국민의 e-메일 편지가 쇄도하고 있다. 지난 4월24일 청와대가 김대통령의 e-메일 주소를 공개하고 난 다음부터의 일이다. 청와대 담당자에 따르면 주소가 공개된 뒤 며칠간 하루에 500여통이 넘는 e-메일이 쏟아졌고, 지금도 하루 300여통이 넘는 편지들이 오고 있다는 것.

    물론 그 이전에도 청와대 홈페이지(www. cwd.go.kr)의 ‘열린 청와대’ 항목 중 ‘대통령께 편지를’ 코너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근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교감할 수 있는 채널을 더욱 넓게 개방한다는 취지에서 김대통령의 e-메일 주소(www.president@cwd.go.kr)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 청와대의 박선숙부대변인은 “모든 민원이 대통령에게만 쏠릴 위험이 있는 등 대통령의 e-메일 주소 공개의 부작용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국민의 진솔한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주소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전처럼 굳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오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는 한층 편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매일 몇백통씩 되는 e-메일을 직접 읽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분 단위로 공식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는 김대통령 입장에서는 컴퓨터 단말기 들여다볼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 이 때문에 매일 박부대변인이 오늘은 e-메일이 몇 통이나 왔고, 어떤 내용이 많다는 보고를 간략하게 한다. 편지 중에는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도 적지 않은데, 이런 편지는 제일 먼저 보고한다는 것이 박부대변인의 설명.



    또한 김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에는 우송된 e-메일을 언제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항상 컴퓨터 단말기가 켜져 있기 때문에 간혹 시간이 날 때면 김대통령이 직접 편지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대통령도 e-메일을 읽고 쓰고 보내는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2월에는 김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e-메일로 업무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물론 국무위원과 국정을 논할 때에는 다른 비공개 주소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의 e-메일 주소가 공개된 뒤 온 편지들은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편지의 70%는 주부들과 아이들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자신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며 민원을 부탁한 것이 많다”는 게 홈페이지 담당자의 말이다. 이런 편지들은 대통령에 대한 호칭도 ‘대통령 할아버지’ ‘대통령 오빠’ ‘젊은 대통령 오빠’ 등등 다양하다고. 박부대변인은 “지난번 대통령이 국민 담화를 발표했을 때 안색이 약간 좋지 않았는데, 편지로 금방 대통령 건강을 걱정하는 글들이 쏟아지는 등 매우 민감한 반응들이 즉각 나타난다”며 “대통령 건강을 걱정하는 편지들도 꽤 많다”고 전한다. 그러나 30% 정도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비판하는 내용,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국가 정책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거나 찬반 양론이 팽팽한 경우 반드시 정책 변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집권 세력에게 금전적으로 유리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강댐 건설, 공기업 민영화, 대기업 구조조정 등 몇 가지 정책의 변경에 있어 정부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으며, 그 비난과 의구심이 의혹의 눈길이 되어 대통령님께 쏠리고 무조건적인 비판 세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아무리 잘하고 계서도 대통령님만 알고 계시면 되는 일이 아닙니다….” (4월29일, 윤쭛)

    “저는 교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요. 꿈을 이루었다고 기뻐했던 게 4년이 채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 그 꿈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의 주체인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세요… 교사들에겐 더 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교사들이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20년이 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까, 그 퇴직금을 받으면 명퇴해서 차라리 다른 일을 하겠다, 그게 더 보람될 것 같다… 더 이상 교사를 비참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 (4월28일, P.S.M)

    “저는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남편 없는 미혼모의 몸이 되었습니다. 제 딸은 이제 18개월 된 어여쁜 아이입니다. 그런데 단지 외국인, 그것도 중국 조선족과의 결혼으로 인해 늘 숨어 지내야 하고,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제 한숨은 깊어갑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결혼을 해도, 아이가 있어도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출입국에 가면 고작 남편 나라에 가서 살라는 말뿐이니 누가 무슨 권리로 저와 제 아이에게 남편과 아빠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왜 저에게 국민의 권리인 투표의 권리는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그건 바로 저도 여자이기 이전에 이 대한민국의 당당한 한 국민이라는 증거가 아닙니까… 더 이상 저와 같이 불쌍한 아내와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4월28일, 寒氷)

    이처럼 편지들은 최근의 시사 쟁점인 과외 허용, 남북정상회담, 주가하락, 인터넷 음란 사이트 문제 등 온갖 사회 문제를 총집약하고 있다. 이런 의견들은 “고맙다”는 답장 발신과 함께 각 정부 부처 민원실로 이관된다. 그러나 예상 외로 부정부패 비리 고발은 적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부대변인은 “각 부처의 민원 부서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징표”라면서 “물론 신원이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대통령에게 오는 편지를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음처럼 대통령 퇴임 후의 일을 미리 ‘조언’하는 편지도 적지 않다.

    “대통령님은 이산가족 문제만 물꼬를 터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이 민족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퇴임하면 전임 대통령처럼 서울에 살지 말고 하의도나 제주도 같은 경치 좋은 곳에서, 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처럼 인류의 소외받고 약한 자를 위하여 사셨으면 합니다. 대통령께서 세계의 정치 문화 종교지도자들과 이 세계의 어두운 곳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날, 이 7000만 겨레는 그토록 소망하시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이 땅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대통령님이 속을 끓이면서 마음 고생해야 할 상대는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님을 괴롭히고 헐뜯어서 명실상부한 ‘DJ의 상대’가 되기를 바라는 영웅주의자일 것입니다. 100%의 지지는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하지 않습니까. 모든 면에서 그래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계시는 대통령님은 행복하신 분입니다…” (4월24일, C.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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