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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인플레’ 필요하다

‘준비된 인플레’ 필요하다

‘준비된 인플레’ 필요하다
지난해는 우리에게 값진 한해였다. 실물경제는 경기 과열을 우려할 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됐고 이에 뒤질세라 증권시장의 상승세도 눈부시게 이어졌다. 각종 지표상으로 볼 때 정부 당국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구조조정과 거시경제 운용에 있어서 향도 역할을 잘해낸다면 2000년 거시 정책의 목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의 거시경제운용 계획이 이러한 소망을 담아낼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견이 상당히 좁혀지고 있지만 저금리 정책의 지속 여부를 둘러싼 당국자들간의 견해차는 여전하며 오는 4월 총선으로 인해 정치논리가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의 입장도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새해 거시경제운용 계획에 대한 양자의 논리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적어도 내년 1·4분기까지는 저금리 정책을 고수한다.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인상은 위험하며 원화 절상이 인플레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에는 총선에 대비해 표를 잃지 않으려는 집권 여당의 정치논리가 압력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2·4분기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단기금리를 인상해 급속한 경기회복으로 인한 인플레 상승 압력을 해소한다. 이는 사전예방적 차원의 금리인상을 포기하고 물가추이를 보아 가면서 금리를 조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구상은 새해 인플레 리스크에 대한 낙관적 가정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실제 한국은행이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새해 물가안정 목표치는 2.5±1%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상황이 과연 정부 당국의 소망대로 전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몇 가지 불안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화된다고 해도 그 시기는 오는 3월 종료될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협정의 지속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현재와 같은 수급상황이 지속된다면 최소한 1·4분기까지는 유가가 25달러 안팎에서 고공행진을 계속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감산협정이 3월 이후로 연장될 경우 유가의 하향 안정화는 더욱 지연될 수밖에 없다. 둘째, 현재 물가 상승 압력을 상쇄시키고 있는 원화 절상 추세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반기 이후에는 국제금리 상승과 무역흑자 감소 등의 여파로 반전될 수 있다.



이러한 불안요인들이 현실화된다면 물가상승 압력이 미미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가정에 기반한 정부의 거시경제운용계획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소지가 충분하다. 다음과 같은 비관적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4월까지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고수한다. 그동안 국제유가 상승, 원화 절상 속도 둔화 및 총선 휴유증으로 인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 하지만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한다면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증권시장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경제주체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정부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경제 외적인 논리가 대책 마련을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운명에 몸을 맡길 수만은 없는 일. 현재 시점에서는 선제적 금리인상은 이미 실기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비관적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에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4월 이전에 투신사 등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해 금리를 대폭 인상해야 하는 불가피한 경우에 일어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도의 정책적 결단이 요구되는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판단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법. 구조조정 당국자들의 건투를 바란다.



주간동아 2000.01.13 217호 (p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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