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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3년 만에 기사회생 ‘약 자판기’

보건복지부, 화상투약기 허용 약사법 개정안 입법…편의성이냐 위험성이냐 논란 재개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3년 만에 기사회생 ‘약 자판기’

3년 만에 기사회생 ‘약 자판기’

2013년 4월 인천 부평구 한 약국에 설치됐다 3개월 만에 철수된 최초의 의약품 화상투약기(오른쪽). [뉴스1]

콜라나 커피처럼 약을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게 과연 가능할까. 2013년 박인술 약사에 의해 개발 및 설치된 ‘의약품 화상투약기’(화상투약기), 일명 ‘약 자판기’가 당시 전국 약사들의 반대로 철수됐다 3년 만에 기사회생할 전망이다. 6월 28일 보건복지부는 약국 앞에 화상투약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환자가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 화상통화로 약사의 복약지도를 거쳐 소화제, 감기약, 파스 같은 일반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무모한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맞서고 있다.



“문제는 원격진료야!”

정부는 5월 18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하에 열린 ‘제5회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 화상투약기 운영을 안건으로 올리면서 다시금 화상투약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소관 부서인 보건복지부는 한 달여간 논의 끝에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이후 법안은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기존 약사법 제50조 1항은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개정안에 신설된 예외 조항에 따르면 약사는 자신의 약국 앞에 화상투약기를 설치할 수 있다.

화상투약기는 약사가 투약기에 붙어 있는 영상기를 통해 환자와 통화한 뒤 원격제어로 일반의약품을 골라주는 장비다. 환자가 약을 직접 고르는 버튼이나 기능은 없다. 결제는 카드로만 가능하고, 2대의 카메라가 의약품 판매, 복약지도 등 화상통화 전 과정을 녹화하며, 약사는 이 자료를 6개월 동안 보관해야 한다.

그렇다면 3년 전 보건복지부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고 철수됐던 화상투약기가 새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화상투약기 개발자인 박인술 약사는 “법제처에 보건복지부 판정 재해석을 두 번이나 의뢰하는 등 화상투약기 회생을 위해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제처로부터 새로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던 박 약사는 1월 국무조정실 주재하에 열린 ‘기업애로 간담회’에 참석했다 화상투약기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후 화상투약기 설치안은 신산업투자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된 데 이어 규제개혁장관회의에까지 올라갔고, 결국 약사법 개정안 입법 예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박 약사는 화상투약기의 효용성에 대해 “약사와 환자 모두에게 유용한 제품이다. 재택근무가 더 편한 주부 약사나 장애 등으로 몸이 불편한 약사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으며, 환자들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약사에게 현재 건강 상태를 진단받은 뒤 약을 살 수 있으니 더욱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국 약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한약사회는 이번 약사법 개정을 두고 “지나친 규제 완화”라고 반발한다. 배성준 대한약사회 홍보팀장은 “환자 대면원칙이 사라지면 인터넷 약국 판매는 물론, 약국 외에서 의약품 판매 확대, 원격진료 도입과 의료 영리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화상투약기 문제는 수년째 대한의사협회가 주장해오고 있는 ‘원격진료 반대’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2013년 정부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이를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오진 가능성 때문이다. 아무리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했다지만 대면 진료와 비교하면 기계적 혹은 상황별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현행법상 택배로 약을 받는 행위는 금지인 만큼 노인,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원격진료로 전자처방전을 받아도 약을 받으러 약국으로 다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편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논리다.   

인력과 시설 등 인프라 및 자원 측면에서 월등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개연성이 커 동네 중소의원의 경영난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전면 허용’ 법안은 2014년 4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부위원회에 상정 대기 중이다.



“약사를 장사꾼으로 만들려는 속셈”

다시 화상투약기 문제로 돌아오면, 대한약사회 측에서 우려하는 부분 또한 법인 형태의 대형약국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점이다. 배성준 홍보팀장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법인 약국이나 대형병원 가까이 있는 약국은 형편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못한 약국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병원을 끼고 있지 않은 동네약국은 그야말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약사법(제44조     1항)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는 약국장뿐 아니라 약국에서 근무하는 약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결국 한 명의 근무 약사가 여러 약국에 소속돼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결국 법인 형태의 대형약국이 약사 몇 명을 고용해 여러 대의 화상투약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약국이라는 이름은 있으나 화상투약기만 설치해놓고 약사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약국도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약국 개설자가 실제 운영자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공산도 크다.

이 밖에도 화상투약기를 반대하는 이들은 의약품 보관 및 유통 과정에서 약품이 변질되거나 오염될 가능성이 있고, 약품 과다 복용 등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력 15년의 한 약사는 “의약품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의 경우 타이레놀 같은 일반의약품을 과다 투약해 사망에 이른 사례도 많다. 또한 특별한 이유 없이 일종의 중독 증상처럼 진통제 계통의 의약품을 복용하는 젊은 층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약 구매의 편의성이 늘어날수록 약 소비는 증가하게 될 테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약사는 “결국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화상투약기를 도입하면 약사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 약국의 약사는 “사람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약품을 편의점으로 밀어넣은 것도 모자라 자판기까지 도입한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자판기를 설치하면 퇴근 후에도 밤새워 일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이는 결국 약사를 한낱 장사꾼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심야 등 보건의료가 불가능한 시간대에 화상투약기가 아닌, 약사와 의사의 대면 의료서비스가 오히려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은 “기존 약국 시스템을 활용해 국민의 약국 접근성을 보장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즉 정부 차원에서 심야 공공병원과 약국을 법제화해 확장 운영한다면 많은 국민이 적절한 진료를 합리적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 공휴일 당번약국과 의원을 상호연계해 운영하는 방법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07.20 1047호 (p22~23)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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