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정치

親朴은 분화, 非朴은 세력화

새누리당 8월 전대와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박’ 속출할 것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6-27 11: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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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한국의 정당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파벌갈등과 계파정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현상적으로 볼 때, 당권 획득과 공천권 행사와의 관련성 때문이다. 당권 경쟁에서 이긴 계파나 혹은 계파승리연합(담합된 계파들)이 총선과 대선 등 주요선거에서 공천권(공천권과 관련된 게임의 룰 포함)을 유리하게 행사할 수 있으며 반대로 당권경쟁에서 패한 계파들은 공천권에서 배제당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진원의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211쪽/ 인물과사상사)

    18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새누리당이 선보인 공천 잔혹사(史)는 당권과 계파의 함수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는 당권을 쥔 친이(친이명박)계의 친박(친박근혜)계 공천 배제가 있었고, 2012년 4월 19대 총선 직전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출범으로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가 역으로 친이계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20대 총선에서 당권은 비록 비박(비박근혜)계가 쥐고 있었지만, 청와대를 등에 업은 친박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실질적으로 공천을 주도하면서 친박, 비박 간 공천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 결과가 과반 의석 확보 실패와 원내 제2당 추락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원 구성 이후 총선 공천 탈락 또는 무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다 무소속으로 당선한 이들을 다시 받아들여 원내 제1당 지위를 되찾았다.



    6·16 결정 후 유명무실 ‘친박 천하’

    공천을 주도한 세력이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권을 내놓는 것이 책임 정치의 순리. 그러나 새누리당은 총선 이후 정반대 모습을 보였다. 공천과 총선을 거치며 여전히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친박계가 8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권을 쥐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졌을 정도. 더구나 5월 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을 계기로 내년 대통령선거(대선) 때 친박계와 반 총장이 손잡는 이른바 ‘TK(대구·경북)+충청 연대론’이 제기되면서 친박계가 내년 대선 관리를 위해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이른바 ‘친박 효용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들이 무기명 투표로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총선에서 당선한 무소속 의원들의 일괄 복당을 결정한 ‘6·16 결정’을 계기로 ‘친박 천하’는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당내 세력 판도가 친박 중심에서 비박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 여권 한 관계자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는 중”이라고 촌평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20대 총선 이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으로 권력이동이 진행되는 동시에 권력누수로 여권 전체의 파워가 축소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여권 내 권력이동과 권력누수는 같은 의미”라며 “권력누수와 권력이동은 동시에 일어나고 일반적으로 권력이동 과정에서 권력누수가 생긴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커지고 있다.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의 당권 도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원조 친박 이정현 의원이 호남에서 재선한 이력을 발판 삼아 전국을 돌며 홀로서기에 나섰고, PK(부산·경남) 출신인 친박 이주영 의원의 당권 도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총선 이후 8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친박 분열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에 비해 비박계는 당권 장악을 위한 세 규합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는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 주관으로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포럼)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 포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해 강석호, 김성태, 박성중, 이군현, 이진복, 정양석 의원 등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주요 멤버로 참여했다. 그뿐 아니라 김재경, 나경원, 박인숙, 안상수, 정운천 의원 등 비박계 인사도 이름을 올렸다.

    새누리당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누리당 비박계가 ‘미래’와 ‘혁신’을 명분 삼아 포럼을 통해 세 규합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특히 포럼에는 비박계로 당권 도전 뜻을 밝힌 정병국 의원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권성동, 김영우, 김용태, 신상진, 이종구 의원 등 비박계 인사 상당수가 준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포럼에 대거 참석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표의 내년 대선 경선을 위한 ‘싱크탱크’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권성동 사퇴 표결 못 한 이유

    비박계가 포럼 등을 통해 세 규합에 나서는 것과 대조적으로 친박계는 대주주 지위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6·16 결정 이후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려고 마련한 6월 17일 친박 회동에는 고작 6명이 참석했고, 6·16 결정 과정의 언사 등을 문제 삼아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칩거에 들어간 뒤 당무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친박계 의원 25명이 모여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비박계 한 핵심 관계자는 “만약 친박계가 수적 우위를 확신했다면 의원총회 등을 소집해 비대위의 복당 결정을 무력화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수적 우위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박계가 요구한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비대위에서 표결에 부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복당 결정 과정에서 비대위원들이 무기명 투표를 했는데, 투표용지를 모두 개봉하기 전 이미 유효 득표수를 넘어섰다. 만약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두고 표결에 부쳤다면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이혜훈, 김세연 두 비박계 비대위원을 비대위에서 빼는 대신 친이계 출신이자 비박계인 권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친박, 비박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을 친박계가 일방적으로 무위로 돌리려 했다면 비대위원들이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지도부는 내년 대선 경선 룰을 결정하게 된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12년 4월 총선 이후 지금까지 여권에서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른바 친박 딱지는 새누리당 공천은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본선에서도 유리한 요소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 임기 종료가 가까워지면서 권력의 균형추는 현재권력에서 미래권력으로 기울고 있다. 친박 딱지가 더는 훈장이 아닌 ‘짐’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친박계 인사들이 임기 말 대통령과의 친소관계를 앞세워 친박 딱지를 언제까지 유지할까. ‘진실의 시간’은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8월 전당대회가 친박계에서 ‘탈박’하는 의원을 확인할 첫 번째 ‘진실의 시간’이며, 내년 대선후보 경선이 두 번째 진실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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