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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의 상상

최저임금 논의보다 뭣이 중헌디!

1986년 법 제정 후 20년째 ‘찔끔’ 인상…6월 말 법정 시한 앞두고 논의 활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최저임금 논의보다 뭣이 중헌디!

최저임금 논의보다 뭣이 중헌디!

6월 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016 청년세대 최저임금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월급이 오르면…, 저는 실비보험(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싶어요.”

서울 한 대학가 편의점에서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는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일당은 4만8240원. 딱 2016년 최저임금(6030원×8시간) 수준이다. 현행법은 밤 10시 이후 노동할 경우 시급의 1.5배를 지급하게 돼 있지만, 이 규정은 상시 근로자 수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편의점은 대부분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A씨는 “서울 홍대 앞처럼 야간 손님이 많은 일부 지역 편의점을 제외하면 돈을 얹어주는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이 적은 주택가 편의점은 밤 시간에 오히려 시급을 깎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야간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늘 있기 때문이란다.

A씨 역시 같은 이유로 이 일을 구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 가게를 지키며 그는 영어공부를 한다. 취업준비다. 이렇게 번 돈으로 낮에는 학원에 다닌다. A씨는 “학원비, 방값, 책값 등을 내고 나면 늘 빠듯하다. 그나마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겨 먹는 덕에 굶지 않고 산다”고 했다. 이러니 매달 1만~2만 원 수준인 실비보험료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시급 1710원 오르는 동안 전세금 껑충

“얼마 전까지는 아예 가입할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 지난달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다 어깨를 좀 삐끗했거든요. 불편해하니까 사장님이 ‘요 앞 병원에 가봐라. 실비보험 있으니 치료비 얼마 안 나오더라’ 하시더라고요. ‘도수치료’라는 걸 받으셨다는데, 알고 보니 1회 치료비가 10만 원이 넘는 거였어요. 갑자기 ‘나는 어쩌다 실비보험도 없이 살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참해졌습니다.”



A씨 얘기다. 결국 파스를 사다 붙이며 버틴 그는 아직 실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몸이 낫고 나니 매달 돈 나가는 게 아까워서다. 그는 “평소엔 ‘병원 갈 일도 없는데, 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실비보험 가입자들이 싼값에 ‘마늘주사’ 같은 걸 맞는다는 기사를 보면 좀 속상해진다”고 했다. 기자가 “최저임금이 오르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을 때 불쑥 ‘실비보험’을 떠올린 건 그런 까닭인 듯했다.  

260, 280, 350, 370, 450.

2012년부터 매해 오른 시간당 최저임금 액수다. 2012년 노동자는 전년보다 시간당 260원씩 더 벌었다. 2013년에는 거기서 다시 280원씩 더 받게 됐다. 이렇게 지난 5년간 오른 노동자 최저시급은 1710원이다. 그 덕에 2016년 A씨가 시간당 6030원을 받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꾸준한 인상을 통해 노동자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까.

같은 기간 서울지역 전세가를 보면 정답은 ‘아니요’가 될 것 같다. KB국민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2012년 5월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2억6468만 원이다. 2016년 5월 이 금액은 4억676만 원으로 뛰었다. 4년 새 1억5000만 원 가까이 치솟은 전셋값을 최저임금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상당수 최저임금 생활자는 A씨처럼 꼬박꼬박 월세를 내면서 살아야 하고, 이는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A씨가 소개해준 친구 B씨는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하루 6시간씩 주 5일 일하고 한 달 70만 원을 받는다는 그는 “시급이 최저임금에 좀 못 미치는 것 같지만 일이 편하고 취업준비를 하기에도 좋아 괜찮다”고 했다. 4월 현대경제연구원(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열정페이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9세 임금근로자의 17.0%(약 63만5000명)가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통계를 활용해 산출한 결과로, 이때 열정페이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뜻한다.

연구원은 ‘열정페이’를 받는 이들에게 해당 일자리를 선택한 이유도 물었다. 응답자 10명 중 3명(35.4%)이 ‘학업, 학원 수강, 직업훈련, 취업준비 등을 병행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당장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에’(20.8%)라는 응답도 적잖았다. 상당수 청년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까지 당장 생계를 꾸리기 위해 저소득 일자리를 감수하는 셈이다. 그중 한 명인 B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취업준비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사장에게 ‘최저임금 수준에 맞는 임금을 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럴 경우 자신은 몇 푼 더 받은 뒤 쫓겨나고, 지금 일자리는 ‘취업준비를 하기 좋은 알바’를 찾는 다른 청년에게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B씨는 “또 다른 내 친구는 ‘돈을 지금보다 좀 더 벌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마음 편히 사서 쓰고 싶다’고 하더라”며 “2ℓ짜리 한 장에 190원 하는 봉투 값에 벌벌 떨 때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생을 ‘열정페이’로 살라고?

최저임금 논의보다 뭣이 중헌디!

6월 2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경실련 집중행동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주위 친구들을 보면 다들 ‘더는 지질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아끼며 살아요. 지금은 ‘취직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꿈이 있으니 버티지만, 계속 이런 삶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죠.”

B씨 얘기다.  

실제로 그런 삶이 적잖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6월 17일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3월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자가 264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양가족도 있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지난해 발표한 ‘최저임금이 가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 중 가구주 비율이 43.61%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가구주가 최저임금 당사자인 경우 이들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는 3명 수준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이 2016년 현재 주 40시간 노동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월급은 130만 원이 채 안 된다(45쪽 상자기사 참조). 실비보험료와 쓰레기봉투 값에 벌벌 떠는 오늘날 청년들의 경험이 ‘젊은 날 한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법체계에서 이처럼 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제도의 보호 밖에 있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11월부터 모든 사업장,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를 어길 경우 국가는 당사자 의사에 관계없이 위반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단속은 헐겁기 그지없다. B씨 사례처럼 ‘사업주-노동자’ 합의하에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적발되는 일은 극히 드물고,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위반 사실을 신고한다 해도 사업주는 거의 처벌되지 않는다. 녹색당은 지난해 발생한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 919건 가운데 사업주가 사법 처리된 것은 19건(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받는 노동자 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A씨와 B씨처럼 혼자 벌어 혼자 사는 ‘단신노동자’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부양가족까지 있을 경우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시간당 6~7달러를 받는 노동자는 어떻게 사는가’를 현장 취재해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을 펴낸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에서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 치 집세와 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주로 패스트푸드나 핫도그 또는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수프 같은 걸 사먹게 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소비를 줄이고, 잠을 줄이고, 개인 생활을 희생해가며 ‘악착같이’ 버틴다. 최저임금을 보장받는다 해도 생활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4인 가구가 최저임금으로 빈곤선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주당 노동시간은 61.6시간에 달했다. 반면 호주의 4인 가구는 17.9시간, 아일랜드의 경우는 18.8시간 노동만으로 빈곤선을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실업급여만으로도 빈곤 탈출이 가능해 필요 노동시간이 0시간이었다.  



노동시간 늘려 빈곤 탈출

이 때문에 노동계는 최저임금액을 올리고 위반 사업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한 번씩 노동계, 경영계 대표 등이 모여 그다음 해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연다. 2017년 최저임금 협상의 법정 시한은 6월 28일. 이를 앞두고 진행 중인 회의 자리에서 노동계는 ‘최저시급 1만 원으로 인상’을, 경영계는 ‘6030원 동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에게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고, 노동계는 ‘노동자 소득이 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반박한다(48쪽 기사 참조). 이에 대해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이란 한 국가가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최소 가치를 획정한 것”이라며 “최저임금은 그 국가와 사회가 ‘인간의 노동력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그 사회와 국가의 수준을 징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는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했다. 지난해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도 “최저임금을 올려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밝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권에서 앞다퉈 ‘최저임금 인상’ 약속이 쏟아져나왔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몰라서 못 쓰고, 알아도 못 쓰는 유급휴일

최저임금 논의보다 뭣이 중헌디!

6월 23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원회의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의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노동자가 이를 채울 경우 한 달 근로시간은 174시간이 되고, 현재 6030원인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월급여는 약 104만 원이 된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55조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법정근로시간을 채우면 사용자는 휴일에 일하지 않더라도 하루치(8시간) 급여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주휴수당이라고 한다. 이를 포함할 경우 주당 40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한 달 근로시간은 {(40시간+유급주휴 8시간)÷7×365}÷12월=208.57시간(209시간으로 반올림)이 된다. 이에 따라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월급여는 약 126만 원이다.

문제는 현장 노동자 및 사용자 상당수가 이 내용을 잘 모른다는 점. 이 때문에 지난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노동계는 시급과 월급을 병기해 고시할 것을 요구했고, 경영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이 내용은 올해 최저임금 논의과정에서도 또 한 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6월 16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 논제를 놓고 노사가 팽팽하게 맞서는 바람에 양 당사자 모두 올해 요구할 최저임금액 수준조차 밝히지 못했을 정도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액 단위를 시급·일급·주급·월급 가운데 정하되, 시급 환산액을 병기하도록 규정돼 있다.

1주 40시간 일했다면 기본 생활이 가능하도록우리 헌법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법률’이 바로 1986년 제정되고 88년 1월부터 시행된 최저임금법이다. 동법 제1조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법 제정 첫해 최저임금은 시급 462.5원에 불과했다. 경영계가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처럼 낮은 출발점에 기인한다. 이듬해 최저시급은 29.7%(137.5원) 올라 600원이 됐고, 1993년 1005원, 2001년 2100원, 2005년 3100원, 2009년 4000원, 2014년 5210원, 2016년 6030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적용 대상도 넓어졌다. 최저임금제도 적용 대상은 시행 첫해인 88년 전체 노동자의 20.1%에 불과했지만 2000년 11월 사실상 전체 임금근로자로 확대됐다(동거의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등 일부 제외).

그러나 여전히 최저임금액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기에는 매우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토론회에서 “근로자가 법정근로시간 동안 성실히 근로했다면 그 대가인 임금으로 ‘기본적 생활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우리 헌법의 요청”이라며 “법정근로시간인 1주 40시간을 근로한 소득으로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6.06.29 1044호 (p44~4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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