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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감칠맛의 끝판왕, 재래 흑돼지와 ‘멜국’

제주 재래음식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감칠맛의 끝판왕, 재래 흑돼지와 ‘멜국’

감칠맛의 끝판왕, 재래 흑돼지와 ‘멜국’

‘상록가든’의 재래 흑돼지고기(왼쪽)와 ‘파도식당’의 옥돔국.

제주 음식의 맛은 파고들수록 깊고 정교해진다. 제주 음식 하면 떠오르는 흑돼지. 하지만 현재 팔리는 제주 흑돼지는 대부분 외래종인 버크셔 품종을 기본으로 한 교잡종이다. 오래전부터 있던 제주 재래 흑돼지는 몸집이 30kg 정도로 작고 성장이 느린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고기 맛이 진하고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장점에도 사육문화가 본격화하면서 단점이 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돼버렸다. 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버크셔종이 유입됐고, 재래종과의 교배가 권장되면서 제주 재래 흑돼지는 멸종되다시피 했다.

1980년대 이후 종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주 재래 흑돼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주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앞에 있는 ‘상록가든’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제주 재래 흑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직접 기른 재래 흑돼지를 도축해 고기로 쓴다. 재래 흑돼지의 살코기는 겉모습만 보면 멧돼지와 비슷하다. 맑은 갈색을 띠는 일반 돼지고기와 달리 붉은 기운이 많이 돈다. 맛을 보면 밀도가 강하고 감칠맛도 좋다. 지방은 기름지지 않고 달콤하다. 세계적으로 그 맛을 인정받는 전남 남원의 흑돼지 버크셔K와 견줘도 밀도와 맛에서 손색이 없다. 문제는 사육기간이 길어 여전히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점. 최근 제주에서는 재래종의 강점을 살리고 비육기간이 짧으며 몸집이 큰 ‘난축맛돈’을 특산품으로 육성 중이다.  

제주 애월읍에 있는 ‘부두식당’도 생긴 지 60년 돼가는 재래식당이다. 여든 살이 넘은 노부부가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어부 출신 할아버지는 이제 셰프가 됐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옥돔지리로, 애월읍에서 멀지 않은 한림항에서 가져온 옥돔으로 끓인다. 특징은 날것이 아닌 살짝 말린 옥돔을 넣는다는 점. 말리면 수분이 빠져나가 생선 맛이 진해지고 살의 물성이 강해진다.

제주 옥돔국에는 무가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이 집은 다른 곳에 비해 적은 편이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국물 맛이 시원하고 깊다. 심심한 듯 깊은 맛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반찬으로 나온 작은 도미 양념찜은 짭조름하고 맛이 제법 강하다. 건건하고 깊은 맛을 내는 국과 강한 맛의 생선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제주의 맛있고 소박한 밥상을 완성한다. 제주의 옛 일상식을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감칠맛의 끝판왕, 재래 흑돼지와 ‘멜국’

‘앞뱅디식당’의 멜국.

제주 식당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주 방언을 접하게 된다. 각재기(전갱이)국과 멜(멸치)국으로 유명한 ‘앞뱅디(넓고 평평한 마당)식당’도 그중 하나다. 멸치나 전갱이는 작지만 기름이 많은 생선이다. 내륙에선 이런 생선으로 맑은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하지만, 제주에선 아주 자연스럽다. 재료가 워낙 좋은 데다 그들에겐 생선 비린내를 다루는 빼어난 기술이 있다. 맑은 국에는 제법 굵은 멸치가 생으로 들어간다. 그 주변을 청방배추가 둘러싸듯 자리 잡고 있다.



청방배추는 경상도에서 즐겨 먹는 채소인데, 제주 청방배추는 모양이 조금 길고 단맛도 더 난다. 생멸치의 감칠맛과 은근한 비린내가 청방배추의 단맛과 어울려 달고 감칠맛 나는 맑은 생선국을 완성한다. 국물의 농도와 맛의 강도가 어떤 국물에 뒤지지 않는다. 제주 사람들의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돼지고기에서 멸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굳건하다. 재료가 귀한 환경이 만들어낸 산물로 여겨진다.







주간동아 2016.06.22 1043호 (p76~77)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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