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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대통령이 힘 실은 T-50 미국 수출, 물 건너가나

“‘한국 항공기’ 강조, 수주에 도움 안 돼”…청와대는 알고 있었을까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대통령이 힘 실은 T-50 미국 수출, 물 건너가나

군당국 주변에서 묘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한 것은 5월 하순 들어서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공동 추진하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지원하고 있는 T-50의 대미(對美) 수출사업이 그 주인공.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힘을 실어준 사업의 성사 전망이 하루가 다르게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게 그 골자다. 이 무렵부터 관계부처 주변에서는 “담당자들 얼굴이 사색이 됐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1000대, 50조 원. 미국 국방부가 추진하는 고등훈련기(TX) 사업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한마디다. 미군의 노후 훈련기 T-38을 교체하는 이 사업은 기본 물량 350대(약 17조 원)에 미 해군 등의 추가 주문을 감안하면 최대 1000대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우방국들이 워싱턴의 ‘선례’를 따른다면 2000대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쉽게 말해 전 세계 고등훈련기의 표준이 이 프로젝트 한 방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감안하면…

T-50은 KAI와 록히드마틴이 1997년부터 2006년까지 2조여 원을 들여 공동개발한 고유 기종이다. 한국 공군이 2010년까지 50대를 구매했고, 2011년 인도네시아에 16대가 수출됐다. 전술입문훈련기 TA-50, 경공격기 FA-50 등의 파생 기종이 만들어진 바 있으며, KAI와 록히드마틴은 TX 사업을 위해 이를 T-50A로 개량해 6월 2일 시제기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선정과 관련한 미 국방부의 시간표는 2017년 3월까지 제안서를 제출받아 그해 말 기종 선정과 계약을 진행한다는 것. 미국 측 예산 상황에 따라 다소 지연될 공산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업은 단지 한 건의 항공기 수출이 아니라 우리 항공산업의 장기적인 발전과 한미 공동번영이라는 큰 의미를 가진 만큼 이번 사업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2015년 12월 17일 박 대통령이 경남 사천에서 열린 ‘TX 공개 기념행사’에 참석해 남긴 이 같은 말은 정부가 이 사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최근 수년 사이 한국군의 대형 항공무기도입 사업을 ‘싹쓸이’하고 있는 록히드마틴 관련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했을 정도.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아니지만, 수출사업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KAI와 공조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VIP의 의중이 실린 사안이다 보니 경쟁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 그것도 초도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시점에 흘러나온 비관론의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미국 내부의 역학관계상 T-50은 주요 고려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근래 들어 미국에서도 록히드마틴의 수주 실적이 단연 두드러졌던 만큼 미국 정부로서는 보잉 등 다른 주요 사업자를 ‘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를 둘러싸고 보잉의 군용항공기 생산공장이 있는 미주리 주와 록히드마틴이 T-50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밝힌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출신 유력 정치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하다는 워싱턴 정치권 인사들의 설명도 확인할 수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간 미국 정부가 대형 무기도입 사업에서 이러한 정치논리를 고려한 적은 없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식 관점으로 해석한 과장이라는 것. 더욱이 아직 제안서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보잉과 노스롭그루먼 등 주요 경쟁사들은 구체적인 기종조차 선보이지 못한 만큼 유불리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이르다는 논리다.

그러나 다양한 주변 여건을 살펴볼수록 상황이 T-50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은 점차 명확해진다. 한 해외 항공 전문가는 “T-50은 이미 완성된 물건을 개량하는 개념이지만 경쟁기종들은 미국 입맛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검증된 기종이라는 점이나 개발비가 적게 든다는 건 탁월한 경쟁력이지만,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고 새로 제시되는 미국 측 요구사항을 체계적으로 반영하려면 완성품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국방예산 상황에 따라 사업 일정이 지연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이미 완제품을 갖고 있다는 장점도 희석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청와대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움직임이 TX 수주전에서 결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없으리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 정부의 방위산업정책 기조 가운데 하나인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문제가 대표적이다. 가격과 성능 등 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가급적 자국업체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이 규정을 감안할 때 ‘T-50은 한국의 고유기종이며, 성사되면 한국의 쾌거’라는 논리를 우리 정부가 나서서 강조하는 건 결코 유리할 수 없는 행보라는 이야기다. TX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한 외국계 군수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수주전략으로만 따지면 공동사업자인 록히드마틴을 앞세우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훨씬 낫다. 한국 정부가 이렇듯 공격적인 홍보를 택한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청와대는 이를 창조경제 일환이나 대통령의 성과를 과시할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연 실무부처에서 이를 면밀히 보고했을지, 청와대는 제반 상황을 두루 검토했을지 의문스럽다. 대통령이 나서자 모두가 앞뒤 재지 않고 팔을 걷어붙인 형국이다.”


‘대박 로또’ 누가 말했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한국의 예상 이익도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TX 수주에 성공할 경우 최종조립과 납품은 모두 록히드마틴에 의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서 진행되고, 판매 금액은 KAI와 록히드마틴이 70% 대 30% 비율로 나눠 갖는다. 그러나 한국 항공산업 현실상 우리가 갖기로 한 70% 중에서도 상당 부분은 외국 항공업체 부품을 구매해 조립하는 데 써야 하는 상황. 사업으로 발생하는 고용 창출 등 경제유발 효과나 총 판매 금액 50조 원에서 받게 될 30여 조 원 역시 상당 부분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성사되면 엄청난 경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대박 로또’ 수준의 장밋빛 전망에는 과장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다.

KT-1.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2011년 페루 수출을 성사시켰다며 언론을 장식했던 국산 기본훈련기다. 당시 떠들썩하던 분위기와 달리 실제 페루 측 구매는 20대에 그쳤고, 추가 구매는 페루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불가능해졌다는 게 군수항공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 정부의 공세적인 구애가 사업 수주나 확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2011년 당시에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말 TX 수주 성공에 관심이 있다면 조만간 유휴 시설이 발생할 T-50 생산라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간동아 1043호 (p20~21)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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