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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베의 두뇌’ 일본 NSC 정밀해부

안보정책 총리 관저 중심으로 재편, 불투명한 논의 과정 도마에

‘아베의 두뇌’ 일본 NSC 정밀해부

‘아베의 두뇌’ 일본 NSC 정밀해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3월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모습.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중이다. [사진 출처 · 일본 총리 관저 트위터]

1월 6일 오전 10시 30분쯤. 신년 벽두부터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인공지진이 발생해 주변국의 관측기기를 흔들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일본 정부였다. 이날 오전 11시쯤 정례 기자회견 중이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북한의 핵실험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대응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일본의 대응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오전 11시 44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고 오후 12시 50분에는 기자단에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오후 1시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독자적인 대북제재 검토를,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대기 중 방사성 물질 관측 및 분석 준비 지시를 각각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튿날 오전 7시 37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20여 분간 전화로 북한 핵실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북한 4차 핵실험과 관련한 미·일 정상의 전화회담은 한미 정상의 전화통화보다 먼저 이뤄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낮 12시 청와대 NSC 상임위원회가 소집됐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는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됐다. 언론에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청와대보다 빠르다

적어도 북한에 관한 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은 이때만이 아니다.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대응했다. 아베 총리는 미사일 발사 3분 만에 일본 전국에 경계 발령을 내렸고 12분 뒤에는 언론에 등장했다. 또 45분 만인 오전 10시 15분에는 NSC를 개최했다. 이때는 한국 정부(10시 30분)보다 15분 빨랐다. 앞서 2월 3일 북한이 국제해사기구(IMO)에 위성발사를 통보했을 때도, 1월 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임박설이 나왔을 때도 일본 정부는 NSC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처럼 외교안보 사안에서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비결은 NSC가 단출하고 호흡이 잘 맞는 멤버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NSC의 중추는 ‘4대신(大臣) 회의’.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기시다 외무상, 나카타니 방위상 등 4대신이 멤버다. 여기에 대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합류한다. 참고로 한국 NSC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 통일·외교·국방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아베 총리가 NSC를 신설, 일본의 외교안보정책 사령탑을 맡은 시기는 2013년 12월. 이후 2년 반 동안 NSC는 모두 73차례 열렸다. 월 2~3회꼴이다. 의제는 북한 관련 내용이 11회로 가장 많았다(상자기사 참조). 멤버라고 해봐야 5명밖에 안 되니 일만 생기면 언제든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차로 15분 정도 거리인 신주쿠(新宿)구에 청사가 있는 나카타니 방위상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본 정치 1번지라는 나가타(長田)정에서 근무한다. 그래서인지 나카타니 방위상이 헐레벌떡 관저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이 때때로 카메라에 포착되곤 한다.

NSC 전신인 ‘안보회의’는 참석자가 많은 탓에 준비된 의사록대로 회의가 진행됐다. 연간 개최 횟수도 몇 차례에 불과했고 제대로 토론도 어려웠다. 지금은 회의실 안에서 속내를 툭 터놓고 논의한다. 2014년까지 방위상을 지낸 오노데라 이쓰노리 중의원 의원은 “각자 속내를 말한다. 총리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며 NSC의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때로는 각료가 제안한 안건으로 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2013년 12월 남수단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하던 자위대가 한국군에 탄약 1만 발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곳도 NSC였다. 오노데라 의원은 “자위대의 탄약이 다른 나라에 전달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좀 더 큰 시야에서 판단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NSC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총리 관저로만 쏠리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6월 6일 지적했다. 가령 NSC 지원 조직은 약 70명의 관료로 구성된 국가안전보장국(NSS)이다. 수장인 야치 쇼타로 국장은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다. 2006년 제1차 아베내각 시절부터 외무사무차관 등을 지내며 ‘아베의 외교책사’ ‘아베의 복심’으로 불려왔다. 외국 정상들도 야치 국장과 교섭하면 아베 총리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하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의 당시 야치 국장과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라인이 가동됐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야치 국장은 2014년 중·일관계 개선을 위한 합의문서 작성 등 중요한 외교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상대국과 물밑 교섭을 벌였다.



회의 사진 스스로 공개한 총리

결국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은 총리 관저가 중심이 돼 방향성을 미리 정하고 총리 측근이 교섭에 나서는 방식으로 아베 총리에게 집중돼 있는 셈이다. NSC 전 멤버는 “일본에서 외교와 방위는 각 부처가 아니라 총리 관저 주도로 행하는 체제가 완성됐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NSC에는 총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위대 군복조 수장인 통합막료장(합참의장)도 출석할 수 있다.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은 NSC에 대해 “관계부처 장관의 의견과 자위대 보고를 모두 들은 뒤 정치가 결단을 내리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NSC는 특히 지난해 안전보장관련법 성립 이후 확대된 자위대의 해외활동, 가령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존립위기 사태’나 세계 각지에서 다른 나라 군의 후방 지원을 하는 ‘중요 영향 사태’ 여부를 판단하는 사령탑이기도 하다.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결정을 이곳에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이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정책결정 과정을 검증하기 어렵다. 한 정부 고위 관료가 “4대신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은 (누설 시 강한 처벌을 받게 되는) ‘특정비밀’의 ‘덩어리’”라고 아사히신문에 털어놓았을 정도다. NSC 가 끝난 뒤엔 스가 관방장관이 정례회견에서 그날 논의된 의제를 설명할 뿐 다른 참가자들은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주제에 따라 사후 검증을 위해 내용을 공개하고 국회나 언론, 학계에서 논의에 부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NSC의 기밀주의와 관련해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3월 18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NSC 모습을 담은 사진을 아베 총리가 자신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 가와노 통합막료장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장면이었다. 이에 대해 언론으로부터 “총리가 통합막료장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최 현황⦁ 2013년 12월 4일~2016년 5월 19일 총 73회 개최
⦁ 주요 의제별 횟수(복수의제를 다룬 회의 포함)

    - 북한 관련 : 11회
    - 아시아·태평양 정세, 동아시아 정세 : 각 9회
    - 중동 정세 : 7회
    - 우크라이나 정세, 방위정비(整備) 이전 관련 : 각 5회
    - 미·일 안보 협력, 안보법제 관련 : 각 4회
    - 유럽 정세, 아시아 정세, 남아시아 정세 : 각 3회
    - 남수단 정세, 사이버 관련 : 각 2회

자료 | 일본 총리 관저 인터넷 홈페이지







주간동아 2016.06.15 1042호 (p60~61)

  • 서영아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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