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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DS 환자들의 외침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일상 접촉으로 감염 불가능…진료 거부와 취업 차별 이중고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AIDS 환자들의 외침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AIDS 환자들의 외침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플러스’의 문수 대표(오른쪽)가 기자 에게 HIV 감염인의 사회적 낙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최근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의무경찰이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으로 옮긴 A일경은 4월 헌혈 후 결과를 통보받는 과정에서 감염 사실을 알았다. 경찰의 말을 인용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A일경은 추가 정밀검사 후 HIV 감염으로 최종 확진되면 직권 면직 절차를 밟는다. 즉 경찰공무원으로서 더는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행법상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직업군인은 HIV 양성 판정을 받으면 직업을 유지할 수 없다. 유혈사태가 발생할 경우 HIV를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HIV 감염인이 받는 제약 가운데 극히 일부다. 감염인들은 “취업, 의료지원 등에서 너무 큰 제약과 차별을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HIV 및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오해, 멸시가 감염인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감염 사실을 숨기고 은둔형 외톨이가 돼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에이즈 환자?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 위험하지 않나.”

기자가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플러스’ 사무실을 방문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많은 사람의 뇌리에 HIV, 에이즈, 바이러스 전파자, 불치병 같은 개념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먼저 HIV와 에이즈는 다르다.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로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이며 보균자의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에 존재한다.





전염력 낮아, 침대보 같이 써도 안전

한편 에이즈는 ‘후천면역결핍증’으로, HIV 감염으로 면역이 약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HIV에 감염되면 면역체계가 서서히 손상되고, 손상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건강한 일반인에게 잘 나타나지 않는 감염, 종양, 뇌신경질환 계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면역 상태가 에이즈다. 즉 HIV 감염인 가운데 일부만 에이즈 환자인 것이다. 이들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라는 약물을 복용하면 일반인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HIV 감염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주변의 오해는 ‘HIV는 쉽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KNP플러스의 문수 대표는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 지인은 물론, 가족조차 피하고 연락을 끊는 일이 허다하다. HIV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감염인 차별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먼저 HIV는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거의 전파되지 않는다. 최준용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HIV는 주로 혈액 또는 성교를 통해 전파되며 악수, 기침, 타액, 공기를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만약 HIV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먹지 않는다 해도 악수, 기침, 대화 등으로 HIV를 전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에이즈 환자를 다수 진료해온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상처 부위가 아닌 정상적인 피부나 점막을 통해 HIV가 유입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보다 훨씬 전파력이 낮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3년 발간한 ‘병력차별 예방 안내서’에 따르면 HIV 감염인과 음식을 먹거나 식기, 머리빗, 침대보, 문손잡이 등을 함께 사용해도 감염 위험성이 없다. 목욕탕, 변기 사용 시에는 감염인의 출혈 여부를 주의하면 된다.  

하지만 ‘HIV는 일상 접촉만으로도 감염된다’는 잘못된 상식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병원 의료진도 편견을 갖고 HIV 감염인을 두려워하거나 진료를 거부한다는 것. 문수 대표는 “‘진료할 여력이 안 된다’ ‘HIV 감염인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병원 측이 진료,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다수다. 감염인과 신체 접촉하거나 주사 놓기를 무서워하는 간호사도 있다. 의료인조차 감염인을 문전박대하거나 회피하면 감염인은 아파도 갈 곳이 없다. 기본 건강권 침해 문제”라고 주장했다.

2015년 10월에는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보라매병원)에서 HIV 감염인 B씨의 치과 진료를 거부해 논란이 일었다. B씨가 치과 스케일링을 요청했는데, 병원 측은 “환자의 침 등 체액이 튀면 감염 우려가 있기에 별도의 분리된 진료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원에서는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 이에 B씨는 “병력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며 병원 및 서울시에 항의했다. 이에 보라매병원장은 “병원 내규인 ‘HIV감염관리지침’에 따르면 치과 진료 시 표준예방지침(개인보호구 착용) 준수 외 별도 공간은 필요하지 않으므로 즉시 시정 조치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서울시도 “보라매병원이 HIV 감염을 이유로 환자를 차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B씨가 보라매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치과 진료실 의자에는 커다란 비닐이 덮여 있었다. 보라매병원 관리지침에는 ‘HIV 감염인이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방포를 덮을 필요는 없다’는 문구가 있다. 그럼에도 병원 의료진은 HIV 감염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보라매병원 관계자는 “의료진 및 다른 환자에게 감염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병원 관리지침의 기준보다 더욱 강화된 조치로 비닐을 덮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엄중식 교수는 “의료인은 HIV 감염인을 대할 때 일반 환자와 똑같이 하면 된다. 진료할 때도 기본 개인보호구인 장갑, 마스크, 모자 등을 착용하는 걸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국내 의료인이 에이즈 환자를 진료해 HIV에 감염됐다는 기록도 없다”고 말했다. 이훈재 인하대 의대 기초과학교실(사회의학) 교수는 “국내 의사들의 HIV 관련 지식과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에서 에이즈는 의과학적 속성만 짧게 다룬다. 또 국내 에이즈 환자는 1만여 명에 불과하므로 감염내과 외 일반 의사가 에이즈 환자를 진료현장에서 접할 기회도 적다. 에이즈 환자 발생 원인의 99%가 성 접촉이라는 것, 모자보건법상 에이즈 감염 임신부는 낙태가 금지될 정도로 ‘수직감염’(태아가 임신부로부터 감염되는 것) 위험성이 낮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의사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HIV 감염인이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의 확충도 불투명한 상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5년 12월 의료법 시행규칙을 일부 개정하면서 전국 모든 요양병원이 HIV 감염인의 입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개정령 발표 직후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가 “에이즈 환자가 병원에서 성폭행을 저지르면 수많은 환자가 HIV에 감염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시행규칙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 정부와 민간단체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젊은 감염인 좌절 “취업이 두려워요”

AIDS 환자들의 외침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2014년 7월 17일 HIV 감염인 관련 단체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양병원은 HIV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KNP플러스]

HIV 감염인에 대한 공포는 취업 차별로도 이어진다. 에이즈 환자인 C씨는 HIV 양성 판정을 받고 경찰공무원 꿈을 포기했다. 이후 한 기업에 취직해 열심히 일했지만
1년 후 직장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건강검진에 HIV 검사가 포함돼 있었지만 검진의 일부 또는 전체를 거부할 수 없었기에 C씨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가 나오고 며칠 뒤 회사 사장이 C씨를 불렀다. “몸이 많이 아픈 것 같으니 잠시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사장이 C씨가 HIV 감염인임을 알고 퇴직을 권유한 것이다. C씨는 다음 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랫동안 방황했다. 어느 기업에 취직해도 자신의 HIV 감염 정보가 공개되고, 그것이 취업 차별로 이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에이즈 전담기구 유엔에이즈(UNAIDS)에 따르면 ‘고지된 동의와 비밀 보장이 없는 에이즈 검사는 인권 침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반인의 HIV 감염 정보가 본인 동의 없이 타인 또는 직장에 공개되는 경우가 흔하다. 청년 HIV 감염인 커뮤니티 ‘알’ 운영자인 ‘소리’는 “젊은 HIV 감염인은 취업 문턱에서 좌절한다. 취업난 속에서 겨우 취직이 돼도 신체검사 때문에 입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HIV에 감염된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것을 채용 기관에서 알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HIV 감염인들은 “우리가 평생 감당해야 할 편견, 멸시, 차별을 바로잡는 일에 정부는 노력하는 기미조차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문수 대표는 “HIV 감염인이 차별이나 인권 침해를 당할 때 이용할 핫라인이 없다. 감염인은 보건소, 정부기관 등 이곳저곳에 연락하다 결국 시민단체를 찾는다. 질병관리본부에 에이즈결핵관리과가 있지만 담당 공무원이 자주 바뀌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민원을 넣어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라며 “결국 감염인은 의지할 곳 없이 차별을 내면화하게 된다. ‘나는 남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구나’라는 자괴감만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에이즈는 한국을 HIV 감염인 차별이 심한 국가로 보고 ‘에이즈 차별 낙인지표조사’를 지원한다. 이 조사는 2015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수행된다. 조사에 참여하는 문수 대표는 “HIV 감염인이 겪는 부당한 차별과 사회적 낙인을 개선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IV 관련 인권단체들은 “HIV 감염인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소리’는 “현재 청소년 성교육에는 ‘피임’ 비중이 크고 HIV·에이즈는 꺼림칙한 것, 예방해야 할 것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HIV 예방은 중요하지만 감염인을 무서운 존재로 낙인찍는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재 교수는 “‘차별 해소’라는 메시지를 반복하기보다 실제적인 정보를 제대로 알려야 HIV 감염인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에이즈는 성매개 감염병 가운데 전파력이 가장 낮으며 국내 의료기관에서 전파된 사례도 아직 없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당뇨보다 사망률도 낮다. 이런 구체적 정보를 알려야 HIV 감염인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이즈가 동성애자의 전유물이며 동성애자를 성적 쾌락만 추구하는 흉악한 사람’으로 단정하고 일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받지 않는 등의 차별은 엄격하게 시비를 가려야 한다. 말로만 차별과 편견 해소를 강조하고 실제 차별 사례를 계속 방조한다면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16.06.08 1041호 (p30~32)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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