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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헬조선 교육난민

“중간고사 망쳤어요. 유학갈래요”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의 그림자…중간고사 성적 따라 자퇴 후 유학으로 진로 바꿔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중간고사 망쳤어요. 유학갈래요”

“중간고사 망쳤어요. 유학갈래요”

[shutterstock]

4월 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학입학전형위원회는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의 ‘2018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18년도 전체 대입 모집 인원은 35만2325명이며 이 중 73.7%인 25만9673명을 수시로 모집한다. 수시모집 비율이 커진 만큼 학생부종합전형 비중도 늘어났는데, 2018학년도 수시모집에서는 전체 인원의 86.3%인 22만4166명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된다. “수시 아니면 대학 가기 힘들다”는 말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처럼 대학 입시에서 학교 내신을 비롯해 다양한 교내활동 사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수시 비중이 날로 커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는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고교를 자퇴하고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고교 자퇴생 4704명 가운데 20.6%인 1052명이 유학을 택했다. 전체 자퇴생 가운데 절반 이상(51.3%)이 유학을 택했던 2004년에 비하면 조기유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지만, 학생부종합전형에 따른 내신과 스펙 관리에 실패해 유학 쪽으로 진로를 급선회하는 고교생은 오히려 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과거에는 영어 습득을 목표로 조기유학을 가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학생 때까지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고교 진학 후 내신 관리에 실패해 외국 대학에 진학하고자 유학길에 오르는 아이가 많다. 지난해 ◯◯외고 자퇴생 3명을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내신이 좋지 않아 국내에서는 도저히 본인이 목표로 하는 대학의 이과계열 진학이 힘들 것 같다며 유학을 선택하더라”고 했다. 



“그만둘 거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자”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교과목 지필시험과 비교과활동이 대학 문을 여는 열쇠로 인식되면서 강남지역 일반계 고교나 특수목적고교(특목고)·자율형사립고교(자사고) 학생의 내신 관리는 가히 전쟁 수준이다.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적잖다. 그래서 중간고사 성적이 나올 때쯤 유학원 상담 전화도 부쩍 많아진다. A원장은 “미국지역을 염두에 둔 경우 고1이 지나면 지원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고교 입학 후 첫 시험(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유학을 결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통계상으로도 고1 때 가장 많은 수가 학교를 그만둔다. 교육통계서비스 조사에 의하면 2014년 서울 소재 일반고 자퇴생 가운데 1학년은 1866명, 2학년은 1180명, 3학년은 233명이었다.



지난해 고교생 자녀를 캐나다로 유학 보낸 주부 B씨는 “어차피 해외로 나갈 거면 한 살이라도 일찍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고1 때 유학을 고민하다 최종 결정은 고2 때 내렸다. 중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해서 고교에서도 잘할 줄 알았는데, 강남지역 고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워낙 많아 상위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차선책으로 유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4월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고1인 아이를 자퇴시켰다는 주부 C씨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러 갔더니 같은 이유로 온 아이가 20명 정도 됐다. 학업 중단 업무를 이날 하루에 몰아서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도 안 돼 그렇게 많은 아이가 자퇴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중간·기말고사 같은 지필시험 말고도 수행평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적잖다. 학부모 D씨는 “지필시험에서 1~2점 깎이는 것보다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게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수행평가로는 경쟁하기 힘들겠다 싶은 아이 중에도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그 밖에 학교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비교과활동(봉사·동아리·독서활동, 교내대회 이력 등)에 대한 부담감도 유학을 부추기는 요소로 꼽힌다. 더욱이 이런 활동에 들어가는 사교육비 비중이 날로 높아지면서 ‘이 비용이라면 차라리 유학을 보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 실제로 소논문대회나 과학토론대회의 경우 ‘돈을 주고 산다’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 이에 대해 유학원 A원장은 “특목고나 강남 소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경우 어차피 들어갈 과외비에 좀 더 보태 유학을 보내겠다고 마음먹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내신을 쌓는 과정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구조라는 점도 고교생들의 자퇴를 부채질한다. 과거에는 고1, 2학년 때 공부에 소홀했어도 나중에 정신을 차려 ‘인생역전’을 이루곤 했지만, 현 입시제도하에서는 성적과 스펙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관리’된 아이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를 경쟁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교육 목표는 선량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

“중간고사 망쳤어요. 유학갈래요”

[shutterstock]

오로지 대학을 목표로 한 공교육 포기 현상에 대해 ‘가진 자들의 특권’으로 보는 시각도 적잖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관내 학생의 유학생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정도 많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은 오히려 ‘공부, 공부’ 하지 않는다. 하다가 안 될 경우 유학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도피성 유학인데도 철없는 아이들은 그걸 또 부러워하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공부가 다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섣부른 자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는 “학교생활을 포기함으로써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오로지 대학만 목표로 자란 아이에게서는 ‘결핍’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 나가 남을 배려하고 협업하는 능력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에서도 대학 입시에서 머리가 좋은 학생이 아니라 가슴이 따뜻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공교육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 1월 말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이 발표한 한 보고서는, 현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지나치게 개인 성취만을 강조하며 그 배경에는 대입 과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보고서는 앞으로 가족과 인종, 문화를 넘어 타인과 공동체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이에 하버드대를 비롯한 80여 대학이 보고서에 지지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권 대표는 우리나라 교육도 이와 같은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며, 특히 학습 능력이 조금 부족한 아이들에게 사회적 포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와 교사의 임무는 아이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키우는 데 있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데, 특히 사회적 책임은 지식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직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현 풍토는 매우 위험하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가진 탁월성을 잘 가꿔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주간동아 2016.06.01 1040호 (p46~47)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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