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2016.05.11

정치

호남은 문재인을 버렸다

문재인만 모르는 호남의 전략적 선택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daum.net

    입력2016-05-10 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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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20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에게 이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고 끝났다. 물론 더민주당은 수도권 압승에 힘입어 123석을 얻으면서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여러 당선인을 낳는 개가를 올렸다. 그럼에도 이 모든 영예의 빛을 바래게 할 정도로 호남에서의 완패는 뼈아픈 것이었다. 광주는 8곳에서 전패했고, 전남은 10곳 가운데 1곳에서만 이겼으며, 우세를 예상했던 전북에서조차 10곳 가운데 2곳에서만 당선인을 냈을 뿐이다.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

    호남에서의 완패를 단지 한 지역에서의 패배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야권에게 호남이 갖는 전략적 의미 때문이다. 야당 역사에서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당과 인물이 집권한 경우는 없었다. 현 야권이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모두 호남이 집권 견인차가 되곤 했다. 그런데 지금 더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정반대 위치로 내몰렸다. 그런 점에서 20대 총선에서 거둔 더민주당의 성적표는 ‘절반의 승리’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나머지 ‘절반의 패배’가 갖는 의미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 됐지만, 오히려 문 전 대표는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여러 상처를 입었다. 대부분 호남에서 입은 상처다. 문 전 대표는 떠나버린 호남 민심을 되돌리고자 선거 막바지 두 차례 호남을 방문했지만, 효과는 사실상 없었다. 더구나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통령선거(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음에도, 호남 민심은 그가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나오지 않겠다는 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더구나 이제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따가운 시선까지 감수해야 한다. 호남 민심을 달래려고 내놓았던 정치은퇴 선언이 오히려 약속 불이행으로 이어져 자신에 대한 호남의 불신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일부러 호남을 찾아와 한 공언을 아무런 해명도 없이 ‘없었던 일’로 만든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20대 총선 결과가 문 전 대표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이제 두 가지다. 문 전 대표는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문 전 대표는 야권의 숙원인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먼저 호남에서의 완패에도 문 전 대표가 더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호남 민심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그래도 문재인만한 후보감이 야권 내 누가 있느냐는 대답은 아직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가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호남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가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이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한층 많아졌다. 야권 후보 가운데 문 전 대표가 고정 지지층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지만 확장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더민주당 안에서 확산할수록 더민주당의 대선후보는 문재인이라는 기존 통념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들어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자주 꺼내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대표는 전국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 더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돼야 한다고 부쩍 강조하고 있다. 문 전 대표가 호남의 지지를 얻어 전국적 지지를 받으면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실패할 경우 그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호남이 문재인을 거부하는 이유

    그런데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호남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문 전 대표가 앞으로도 호남의 민심을 돌리는 데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민주당 안에서도 문재인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할 것이다. 실제로 더민주당 안팎에서는 김부겸, 박원순, 손학규 등이 거명되고 있다. 만약 ‘문재인 필패론’이라도 확산한다면 더민주당은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추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다른 인물이 그를 제치고 더민주당 대선후보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아직 희박해 보인다. 현재 더민주당의 내부 세력 기반을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가 경선을 통해 문 전 대표에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같이 문 전 대표가 정권교체를 이룰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에 상관없이 다른 인물이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따라서 승패에 상관없이 예정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민주당의 운신 폭을 좁게 한다.  

    더구나 당 밖에는 국민의당 안철수라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달리고 있지 않은가. 야권 내 대선주자 간 경쟁은 ‘123 대 38’의 게임이 아니라, 문재인과 안철수 두 인물 간 경쟁이라는 점에서 더민주당의 큰 덩치는 별 의미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문 전 대표가 호남 민심이 자신을 거부하는 이유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총선 기간 막판에 광주를 찾아 호남홀대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길게 해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책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도대체 호남은 왜 문재인에게서 등을 돌린 것일까. 사람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가 정권교체를 해낼 수 없으리란 불신, 그러함에도 내려놓을 줄 모르는 모습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호남의 시선에서 본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좀처럼 내려놓을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고, 2015년 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이 쪼개지는 사태에 이르렀는데도 당대표로서 이를 막기 위한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이런 문 전 대표의 모습은 그가 차기 대선에 집착은 하지만, 막상 정권교체를 실현할 인물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부정적 판단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을 설득하고 마음을 돌리고자 충장로에 선 문재인은 이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별달리 말이 없었고, 호남 홀대는 없다고 설명하는 데만 애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에 대한 호남 민심의 이반이 정권교체에 대한 전략적 판단 속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감정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광주에서의 선언문 내용을 접하노라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들을 읽지 못한 채 내부자끼리의 정서에 기초해 만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문 전 대표가 자기들 그룹 바깥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진지하게 읽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서만으로 호남 민심의 문제를 해석하려 한다면 시간이 가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문 전 대표는 총선 기간 호남에 갈 때마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동행했다. 광주 선언을 할 때도 김 위원장이 나란히 서 있었다. 왜 그랬을까. 호남이 낳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아들이 자기 옆에 있다는 점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려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총선 기간에도 그랬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도 더민주당의 경쟁세력인 국민의당을 공격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제1야당 대선후보를 지낸 야권의 최대 리더다. 그런 정치 지도자가 굳이 김 위원장을 정치적 병풍으로 삼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연출해야 했을까. 그리고 야권 전체의 존경을 받았던 DJ의 아들을 두 야당 사이 공방에 앞장세우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을까. 호남의 문제는 문 전 대표 자신이 해결해야지, 결코 DJ 아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정권교체의 걸림돌

    마찬가지로 호남에서의 패배도 문 전 대표의 것이지, 결코 김종인 대표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총선이 끝난 후 더민주당의 문 전 대표 쪽 사람들이 호남 패배와 관련해 김종인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종인이 호남 사람 화나게 해 역풍이 불었다” “김종인의 셀프공천 때문에 망했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당초 문 전 대표가 영입할 때는 그렇게 김종인 찬가를 부르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사람 때문에 호남에서 패했다는 얘기를, 그것도 대단히 거칠게 쏟아냈다. 김 대표의 독선적 리더십의 문제는 그것대로 비판받아야겠지만, 그렇다고 호남 패배의 책임을 고스란히 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 이반의 근본적 문제는 문 전 대표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더민주당이 호남에서 패배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호남 참패가 현실이 되자 그 책임 논란에서 문 전 대표는 사라지고 김 대표만 남는 광경이 돼버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연 더민주당과 문 전 대표가 호남 참패의 원인을 제대로 성찰하고 회생의 길을 찾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문 전 대표는 스스로를 정권교체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호남 민심은 어쩌면 그를 정권교체의 걸림돌로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무엇보다 정권교체에 필요하다면 자신과 자신의 세력 모두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진정성을 호남 민심에 보여줘야 한다. 그에 관한 신뢰도 없이 자기 것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칠 때 문 전 대표와 호남의 화해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문 전 대표와 그의 사람들이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제까지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회피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그런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내려놓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문 전 대표는 이 어려운 퍼즐 게임을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인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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