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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Asia | 주간동아 특약

AIIB, 美·中 주도권 싸움의 미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질서 유지’ vs 중국의 ‘옛 중화(中華) 질서 부활’ 논쟁의 끝은?

  • 존 아베르그 스웨덴 말뫼대 국제관계학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AIIB, 美·中 주도권 싸움의 미래

  •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 각국의 교통·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규모 개발자금을 모으자는 이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는 지난 수년간 중국과 미국의 대립을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참여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우리의 고민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격렬하기 짝이 없던 그간의 논쟁을 ‘아시아 리더십을 둘러싼 한판 승부’라는 관점에서 풀이한 영문 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 기획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주〉
2014년 10월 말 AIIB에 참여하기로 한 아시아 각국이 설립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당시 러우지웨이 중국 재정부장은 AIIB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성격을 띤 기관이며 앞으로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미국이 AIIB 설립에 반대해 각 나라를 상대로 로비를 펼치는 시점에 나온 자신만만한 발언이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영국이 AIIB 참여 결정을 발표하고 일본을 제외한 모든 주요 동맹국이 연이어 동참하면서 미국은 치욕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웃 국가를 친구로

뒤집어 말해 이제는 오히려 미국이 왜 AIIB에 반대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가깝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신뢰는 평화와 번영 유지라는 약속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워싱턴이 역시나 개방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AIIB에 반대하는 상황은 이러한 약속을 의심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오히려 경제 대신 군함과 무기로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낳는다. 그 와중에 중국은 아시아 각국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개발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통해 새로운 우방을 만들어나가며 우호적인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흔히 중국의 대외정책이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함)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AIIB는 이 유소작위가 중국의 국가 대전략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재평가하게 만든다. 그 목표가 우방을 만드는 것이라면, 중국은 이제 돈이나 사회경제적 발전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 데 주력하는 대신 한층 상호적이고 주관적인 목표를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 된다. 친구를 만들어 이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자신들의 본뜻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AIIB는 바로 이러한 ‘우정’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2013년 10월 중국 주변외교공작좌담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운명공동체 의식이 주변 국가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주변국들이 친근감을 갖고 중국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중국의 매력과 영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힘 있고 강한 선진국은 혼자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리더로서 공공재를 제공하는 의무를 다하고 이를 주변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때만 가능하다는 취지다. AIIB는 중국이 주변국과의 관계 전략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수단이다. 역내 국가 사이의 인프라를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는 지역을 통합해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만들겠다는 시도다. 그 핵심은 중국이 스스로 룰을 만들어내는 위치를 점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렇게 보면 AIIB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중시 정책을 천명했을 당시, 백악관은 이를 ‘지속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 확산을 위한 경계 유지’라는 의미로 설명한 바 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호주 의회에서 남긴 “역사는 자유의 편에 서 있다. 자유사회, 자유정부, 자유경제, 자유인의 편이다. (중략)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이며 이를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힘을 다하고 동맹·우방국과 함께할 것”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각국이 스스로 원하는 체제와 발전 방향을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는 중국의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점은 중국이 스스로를 ‘새로 부상하는 대국’이 아니라 ‘부활하는 대국’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한때 주변국으로부터 존경받는 국가였고, 지금의 목표 역시 부와 힘을 모아 이러한 예전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러한 논리적 맥락 안에서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중국의 정체성에 대한 위협에 가깝다. 중국 정치권과 지식층 상당수가 미국의 최근 행보를 중국이 생각하는 평화·안정·협력 기류에 반대된다고 믿는 이유다. 오바마 정부의 모든 메시지와 외교행위는 여전히 냉전시대의 전략적 사고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강대국의 입지를 다져온 게 어느새 30년이다. 중국은 이제 ‘때가 됐다’고 느끼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승한 경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존중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중국이 정당한 국제사회 리더가 되려면 국내 정치의 민주화가 필수라는 인식도 거부한다. 다당제와 서구식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미국식 사고방식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주도하느냐’다

20세기 후반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국제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탄생한 것이다. 미국이라는 유일 강대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러한 질서는, 그러나 점차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중국은 AIIB 같은 새로운 다자체제를 통해 지금까지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개발금융 지도자라는 소임을 맡을 수 있게 됐다. 중국이 꿈꾸던 ‘서구식 게임 룰의 붕괴’라는 목표는 아직 요원하지만, 단순히 힘으로 강대국 위치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중을 통해 리더십을 일궈가는 작업이 본격화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국이 그간 AIIB에 보여준 태도 역시 납득이 가는 대목이 있다. 리더십을 지키려는 초강대국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 심리를 정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터다. AIIB는 분명 미국의 리더십을 위협하고 국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청사진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제 와서 AIIB에 동참한다 해도 잘해야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 설 뿐이며, 오히려 2인자 취급을 받을 공산이 더 크다.

물론 AIIB 자체는 자본주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 브레턴우즈체제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과 상호보완적 체제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느냐 여부는 더는 게임의 핵심이 아니다. 이를 누가 주도하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앞으로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애쓴다면 불협화음은 커질 수밖에 없고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통증 역시 심화될 것이다. 당장 중국의 부상 및 영향력을 상징하는 AIIB에 대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김용 세계은행(WB) 총재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어쩌면 판은 이미 뒤집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존 아베르그 스웨덴 말뫼대 국제관계학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주간동아 2016.04.27 1035호 (p60~61)

존 아베르그 스웨덴 말뫼대 국제관계학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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