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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환상적 술잔치 뒤 해장 천국

서울 무교동의 밤과 낮

환상적 술잔치 뒤 해장 천국

서울 종로 일대가 재개발로 옛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지만 명동이나 무교동에는 여전히 오랜 공간들이 남아 있다. 특히 무교동에는 유서 깊은 식당들이 보석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무교동의 밤은 불야성을 이룬다. 오래된 식당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도 무교동의 미덕이다. 1932년 개업했다는 ‘용금옥’은 추어탕으로 일세를 풍미한 식당이다. 저녁이면 모듬전이나 수육에 술 한잔 하고 추어탕으로 마무리하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다.


환상적 술잔치 뒤 해장 천국

‘충무집’의 김밥(왼쪽)과 잡어회.

‘충무집’은 봄이 되면 유독 손님이 북적인다. 충무는 통영의 일부분이 되면서 사라진 지명. 지금 ‘충무집’의 주인은 통영에서 식당으로 유명하던 집안 출신이다. 2000년 ‘충무집’을 시작해  통영식, 혹은 경상도 남해안식 음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재료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에 지금도 통영 서호시장에서 매일같이 고속버스로 재료를 공수해온다. 생선들은 숙성시켜서 먹고, 톳이며 파래무침 같은 반찬들도 다 경상도 남해안식으로 낸다. 재료가 좋고 간이 맞아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 대개는 잡회를 모듬으로 먹는데 요즘에는 학꽁치, 개상어, 숭어 같은 다양한 생선이 나온다. 숙성 회 특유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봄이면 남해 섬 멸치로 만든 조림과 통영의 대표적 음식인 도다리쑥국을 먹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길게 이어진다. 진정한 통영의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환상적 술잔치 뒤 해장 천국

‘남포면옥’의 냉면(원 안)과 어복쟁반.


작고 허름한 ‘산불등심’은 점심에는 된장찌개, 저녁이면 등심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산불등심’ 바로 옆에는 동치미 냉면으로 유명한 ‘남포면옥’이 있다. 저녁이면 어복쟁반에 소주잔을 곁들이고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선주후면(先酒後麵)족이 넒은 실내를 가득 메운다.

무교동을 이야기하면서 ‘부민옥’을 빼놓을 수 없다. ‘부민옥’은 1970년대 이전 한식 주점의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집이다. 선짓국이나 육개장, 양곰탕 같은 탕반류와 양무침, 제육 같은 음식을 다양하게 판다. 부드러운 양무침은 한국인의 양 다루는 솜씨를 보여준다. 양을 구이로 먹은 사람들에게 양무침은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느껴질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선짓국이나 육개장 같은 해장용 음식들도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해장국이 해장술을 먹을 때 곁들였던 안주에서 출발한 점을 감안하면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실제 무교동 주변에는 저녁 내 부대낀 속을 풀기에 좋은 식당들도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줄을 서야 하는 무교동 ‘북어집’의 인기는 아직도 정상에 있다. 깊고 품위 있는 북엇국은 다른 집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부드러운 황태를 이용하는 다른 북어 해장국집들과 달리 이 집은 오직 북어로만 국물과 건더기를 내는 게 인기 비결이다. 황태는 부드럽지만 깊은 맛이 덜한 반면, 북어는 진한 국물 맛을 낸다. 곰국에 국수를 말아주는 ‘곰국시집’의 인기도 그에 못지않다. 서울 탕반의 핵심인 양지로 우린 맑은 육수에 국수를 담고 파, 호박, 양송이버섯과 양지를 고명으로 올린 모양새가 깔끔하다. 해장국으로 이만한 음식이 없다.



북한 사람이 창업한 ‘리북손만두’도 빼놓을 수 없다. 커다란 평안도식 만두를 넣은 만둣국이 간판 메뉴이지만, 밥이나 국수를 밑에 깐 뒤 차가운 김칫국물을 넣고 얼음을 동동 띄운 이 집의 김치말이는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찾는 이가 많아지는 음식이다. 평안도에서는 냉면처럼 겨울 음식이지만 서울에서는 여름에 인기가 더 많다. 찬 냉면으로 해장하는 사람에게 권할 만한 해장용 음식이다.







주간동아 2016.04.20 1034호 (p77~77)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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