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3

2016.04.13

안보

오바마의 말뿐인 ‘대북제재 강화’

미국 기업·펀드 대북사업 버젓이 지속…‘세컨더리 보이콧’은 공염불?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04-11 09:12:5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미일 세 나라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중략) 북핵 문제와 대응 공조는 국제사회에도 중요한 이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시행함으로써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활동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제재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즉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이나 기관 또는 정부를 폭넓게 제재하는 방안은 예외적으로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 먼저 심각한 위협이나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전제돼야 하고, 일차적인 직접 제재가 현저하게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는 조건에서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뉘앙스의 두 발언. 전자는 3월 3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직후 발표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남긴 말이고, 후자는 그 이틀 전인 29일 역시 워싱턴에서 열린 카네기재단 토론회에서 제이컵 루 미 재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반복되는 언급이 보여주듯, 외교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만 놓고 보면 미국 측 의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과의 지난한 밀고 당기기를 통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이끌어냈고, 그에 앞서 미국의 독자 제재 수위를 한층 높이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도 통과시켰다.



    오라스콤과 에이치비오일의 경우

    그러나 미국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못한 루 장관의 발언은 이를 보여주는 심상찮은 신호 가운데 하나다. 핵 비확산과 동맹국 공조를 앞세우는 국무부와 백악관은 저만큼 앞서가지만, 본격적인 대북제재의 후유증에 신경 쓰는 재무부 등 경제 부처의 속내는 그림이 다르다는 것이다.



     2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2016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 법안’이 세컨더리 보이콧 개념을 도입해 제3국을 제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언제 어떻게 가동할지는 온전히 미 행정부의 재량에 달렸다. 실제로 미 재무부 해외자산국통제국(OFAC) 등 실무부처와 오랜 기간 공조 방안을 논의해온 한국 측 카운터파트 당국자들의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드러나는 말과 달리 실행 문제에서는 난색을 표한다는 것. 익명을 요청한 한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는 ‘대대적 제재 강화’라는 성과를 강조하려 하지만, 현장에서 접하는 미국 측 태도는 여전히 굼뜨다”고 전한다.

    사실 미 행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제3국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고사하고, 미국 기업이나 국민이 북한과의 대규모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 휴대전화사업을 주관하는 오라스콤(Orascom) 문제다. 8년 전 이동통신 독점 사업권을 따내 고려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240만 대가 넘는 휴대전화시장을 만들어낸 당사자다.

    문제는 이집트에 기반을 둔 이 다국적 회사의 대표이자 북한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 지분 구조가 복잡하긴 하지만 주요 투자자 역시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해외 전문가들 분석이다. 엄밀히 말해 고려링크는 오라스콤이 지분 75%, 북한 체신성이 세운 조선체신회사가 지분 25%를 가진 합작회사다. 2010년 발효된 미 행정부의 대북제재 행정명령 제13551호는 ‘북한 당국이나 조선노동당의 통제를 받는 기관이나 조직’과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오라스콤은 2013년 시도했던 캐나다시장 진출이 캐나다 정부에 의해 좌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과 오라스콤의 합작사업이 큰 성공을 거둬온 8년간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고, 행정명령 제13551호를 비롯한 주요 입법조치가 완결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오라스콤의 일부 계열사는 같은 기간에 미 국방부와 계약을 맺어 납품했다는 기록도 있다. 의문을 풀 열쇠는 행정명령 속 ‘금지할 수 있다’는 표현. 미 재무부와 OFAC이 국무부와 협의를 거쳐 특정 사업을 금지 대상으로 정해야만 비로소 불이익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해 실무부처가 나서지 않으면 제도적 장치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북한의 석유개발 합작사업 파트너인 몽골기업 에이치비오일(HBOil) 역시 유사한 케이스다. 2013년 5월 나선(나진·선봉)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지분 20%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한 이 회사는 이후 내륙지역의 석유개발사업을 위해 북한 조선원유개발총회사와 평양 현지에 공동사무실을 열었다. 이 회사의 지분을 50% 가까이 보유한 곳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헤지펀드 파이어버드 매니지먼트이고, 사업을 주도하는 인물은 제임스 패신이라는 이름의 미국인 펀드매니저다. 이들의 북한 비즈니스는 1월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보도돼 미국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소식이다.

    3월 하순 한 국내 언론은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에이치비오일이 사업을 포기하고 북한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에이치비오일 측은 이를 부인하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법률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자신들이 진행하는 사업은 유엔이나 미 행정부의 대북제재와 관련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골자다.



    달라지지 않았다, 목소리만 커졌을 뿐

    요약하자면 이렇다.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어느 때보다 대북제재에 열을 올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전에도 제재가 가능하던 자국 국민과 기업의 주요 대북사업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이들은 조세피난처와 헤지펀드를 활용해 지분 구조를 복잡하게 하는 간단한 방법만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었고, 그 활약상을 다룬 미국 언론 보도에는 ‘폐쇄국가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모험적 기업가 정신’을 상찬하는 기조마저 묻어난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미 의회와 행정부가 새 법안을 만들어 공포한 후에도 변함이 없다는 게 미국 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외교석상마다 소리 높여 제재를 외치지만, 묵인돼온 대형 비즈니스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있다는 것. 자국 시민과 기업에 대해서도 유보적 태도를 취해온 미국 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해 중국 등 제3국 기업이나 사업가를 제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과연 앞으로는 달라질까. 오라스콤과 에이치비오일의 추이를 앞으로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