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2016.03.30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달달, 알싸한 멍게에 참기름 넣고…

경남 통영의 봄철 음식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3-28 12: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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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되면 경남 통영은 행복한 웃음이 넘실거린다. 거리를 꽉 메운 관광객과 현지인들은 제철 음식을 먹으며 봄날의 따스함을 만끽한다. 통영 서호시장은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이다. 통영 앞바다 150개 섬에서 나는 봄나물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섬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캐서 내다 파는 곳이다. 섬 노지에서 자란 달래, 냉이, 쑥은 재배나물과 비교하기 힘든 향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캔 쑥으로 만든 음식이 그 유명한 통영 도다리쑥국이다. 옛 통영 버스터미널(무전동)에 있는 ‘팔도식당’은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사랑하는 밥집으로, 이맘때면 도다리쑥국을 판다. 그윽한 쑥향과 도다리의 무덤덤하고 개운한 맛이 절묘한 맛을 만들어낸다. 다른 곳에 비해 국물맛이 약해 쑥향이 더욱 강하다. 직접 담근 갓김치의 알싸한 맛이 쑥 향과 어울려 복합적인 맛을 낸다. 반찬도 좋고 전통 있는 노포의 분위기도 편안하다.

    통영은 남해안의 유명 도시가 다 그렇듯 ‘다찌 문화’가 발달했다. 다찌는 통영이 원조로 일정한 금액을 내면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내놓는 식당 또는 판매 방식을 가리킨다. ‘대추나무’는 통영의 전통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다찌’로 유명하다. 조개를 다져 양념과 함께 구운 통영 전통음식 유곽도 나온다. 통영 다찌들은 이즈음 도다리쑥국 대신 조개쑥국을 내놓는다. 현지인이 도다리쑥국보다 조개쑥국을 더 많이 먹기 때문이다.

    도다리는 2월까지가 맛있고 3월 이후에는 쑥이 좋기 때문에 도다리와 쑥이 만나 절정의 맛을 내는 기간은 너무 짧다. 도다리쑥국이 통영을 넘어 전국적인 유행이 되면서 외지인은 누구나 도다리쑥국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현지인은 살이 올라 졸깃하고 풍만한 식감에 깊은 국물맛까지 내는 조개와 쑥을 함께 넣어 국으로 먹는다. 쑥은 한반도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식물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가장 사랑한 봄철 식재료였다. 흰색이 도는 작은 쑥의 향이 특히 강하다.

    통영 노포인 ‘호동식당’은 봄철 졸복탕으로 유명하다. 원래 졸복은 참복과 전혀 다른 생선이지만 졸복이 인근 바다에서 거의 사라진 뒤 지금은 작은 참복을 의미하는 단어로 고착됐다. ‘호동식당’은 물에 소금과 졸복만 넣고 끓인 뒤 봄철 미각의 최고봉인 미나리를 마지막에 넣는다. 국물이 맑고 맛이 깊다. 감칠맛이 넘실거리고 미나리는 아삭거린다. 반찬은 좀 평범하지만 졸복을 넣은 복국만은 사람의 허기와 욕망을 채울 만큼 매력적이다.



    통영의 봄은 붉은 꽃처럼 피어난 멍게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영은 대한민국 멍게의 70%를 양식하는 제일의 생산지다. 대개 2년산 멍게를 출하하지만 마지막 출하 월인 6월에는 1년생 가운데 크게 자란 멍게들도 시장에 나온다.

    2년이 지나도 잘 자라지 않은 멍게들은 속을 따내서 모아 판다. 멍게는 현지에서 먹으면 단맛이 돈다. 멍게 특유의 휘발성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 멍게의 휘발성 향은 신티올(cynthiol)이라는 불포화 알코올에서 나오는데 채취 후 몇 시간이 지나면 나기 시작한다. 속설에는 이 성분이 숙취에 좋다고 하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거제에선 통영 멍게를 봄날에 급속 냉동한 뒤 사시사철 분말 형태로 넣어 먹는 멍게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통영에는 생멍게 비빔밥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통영의 음식연구가 이상희 선생이 운영하는 ‘멍게가’에서는 통영식 멍게 비빔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달달하고 알싸한 멍게향이 참기름향과 합해져 봄날의 미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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