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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개성공단 폐쇄 한 달

대남방송과 함께한 30일, 귓전 때리는 분단의 신음소리

접경지역 주민들, 낮밤 가리지 않는 소음 공해에 시달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대남방송과 함께한 30일, 귓전 때리는 분단의 신음소리

대남방송과 함께한 30일, 귓전 때리는 분단의 신음소리

군사분계선 접경지 주민들이 북한의 국지 도발에 대비해 대피소로 이동하고 있다(왼쪽). 군 관계자의 안내로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방독면 착용법을 숙지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1 대전 중구청은 관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화재 발생을 가정해 상황 전파와 자체 화재진압반의 초동조치 훈련을 실시했다. 화재진압 훈련 후에는 어린이집 원아를 대상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소화기 사용법과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요령 등 생활안전교육도 실시했다.
#2 경기 파주시는 북한의 공격 상황을 가정해 군사분계선 접경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국지 도발 대비 주민대피훈련’을 실시했다. 노인정 등에 머물던 주민을 대피소로 대피케 하고, 화생방 공격에 대비해 군 관계자의 안내로 방독면 착용법 등을 숙지하는 훈련을 했다.
3월 15일 민방위날을 맞아 실시한 ‘지역특성화 훈련’은 두 지역이 과연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군사분계선에서 수백km 떨어져 ‘분단’을 체감하기 어려운 후방에서는 ‘생활안전교육’이면 충분했지만, 북한과 마주한 접경지역에서는 ‘국지 도발’에 대비해 대피소로 직접 이동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2016년 3월 대한민국이 처한 현주소다.
큰 병을 막으려고 예방주사를 맞듯이 한두 달에 한 번, 그것도 한 시간 남짓 실시하는 ‘훈련’은 막상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생명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2월 10일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북한과 마주한 접경지역 주민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낮으로 계속되는 ‘대남방송’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개성공단 폐쇄 직후 시작된 북한의 대남방송은 2월 하순까지만 해도 어둠이 깔린 밤 시간에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 이상 이어졌다. 그러나 3월 들어 북한의 대남방송은 초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밤새도록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피훈련’ 중이던 3월 15일에는 한낮에도 ‘박근혜 악녀’ ‘박근혜 역적패당’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대남방송을 계속했다.
자동차와 새 소리 등 주변 소음이 많은 낮 시간에는 대남방송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 하지만 멀리서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만 이따금 들려오는 고요한 새벽녘에는 대남방송 내용을 비교적 뚜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한밤에 이뤄지는 북한의 대남방송은 군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국군 장병’을 타깃으로 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대통령선거) 전에 약속했던 ‘국민행복시대’를 집권 후 헌신짝처럼 버렸다” “노동자들의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 노동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종용하고 있다”는 등 국내 일부 언론이 정부를 비판했던 내용을 되풀이하며 민심의 동요를 부추기는 식이다.
차분한 어조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다 노래 몇 곡으로 분위기를 바꾼 뒤, 이번에는 격앙된 어조로 ‘박근혜 악녀’ ‘박근혜 역적 패당’ 등 북한식 표현처럼 대한민국 ‘최고존엄’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과 저주를 쏟아낸다. 강한 톤의 연설 형식 대남방송은 남쪽 군인과 주민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기보다, 개성공단 폐쇄로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개성공단 노동자들을 향한 메시지 성격이 짙어 보인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마을 이장으로 일하는 신모 씨는 “뭔 소린지는 잘 안 들려도 윙윙거리는, 원치 않는 소리를 매일같이 낮밤으로 들어야 하는 게 고역”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 시간 남짓 자동차로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오늘도 귓전을 울리는 대남방송 소리가 일깨우는 분단 현실을 감내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평화는 멀고 분단은 가깝다. 






주간동아 2016.03.23 1030호 (p24~2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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