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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개성공단 폐쇄 한 달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强 대 强 대치 손익계산서…‘배수의 진’이 발목을 노리다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개성공단 폐쇄 한 달째인 3월 10일 우리 측에서 바라본 북한. 남측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함께 펄럭이고 있다. 동아일보

3월 중순, 국내외 관련 전문가와 기업들 사이에 미묘한 소문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북측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일부 업체에 우회적인 경로로 흥미로운 제안을 던졌다는 것. 신의주 등 북·중 접경지역에 대체 토지를 조성하고 개성공단 내 공장에 남은 설비와 자재를 옮겨줄 테니, 중국 현지인을 내세워 유령회사나 합자회사를 만들어 투자하는 형식으로 재가동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물론 예전처럼 남측 직원이 공장에서 함께 일할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중국 측 대리인이 상주해 관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덧붙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북측이 실업자 신세가 된 근로자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공단 설비 등을 활용해 다양한 경로로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 정작 이 제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당사자가 북한 당국이 아니라 개인적 거래관계를 맺어오던 북측 사업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평양 당국의 계산이 숨어 있겠지만, 최소한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만 놓고 보면 개인사업자들이 ‘해결사’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 셈이다.
북한에 개인사업자가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전통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 같은 그림은, 개성공단 폐쇄와 그에 이은 대북제재가 품고 있는 본질적 한계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첫 번째 퍼즐조각이다. 이미 평양은 경제적 파급을 최소화할 다양한 길을 창의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최전선에는 독자적인 활동 공간을 확보하게 된 ‘돈주’ 또는 밀무역에 종사하는 개인사업자들이 있다. 최근 수년 새 큰 폭으로 확대된 북한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탄력적인 대응이다. 바로 이 ‘탄력성’이라는 단어야말로 제재 국면의 전망을 읽을 키워드인 이유다.



김정일의 북한, 김정은의 북한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황해도와 강원도 등 북한 지역 상설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확장됐다며 공개한 구글어스 위성사진. 2006년 황해남도 옹진군 한 마을의 공터로 남아 있던 곳(왼쪽)에 2010년 건물들이 새로 들어섰다. RFA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두 달,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이후 한 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메커니즘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첫 번째 분기점을 넘었다. 이를테면 1라운드가 끝난 셈.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상황은 나쁘지 않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초강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 청와대와 외교부의 쏟아지는 자화자찬을 미심쩍어하는 전문가들 역시 공단 폐쇄가 ‘역대 최강 제재 결의’의 도화선 구실을 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목표는 명확하다. 이러한 공조체제가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면, 1차적으로는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쏟아부을 수 있는 외화 등 경제여력 자체가 줄어들 것이고, 2차적으로는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핵과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병진노선을 더는 고집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압박에 못 이겨 평양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 두 손 들고 나온다면 가장 좋고, 끝까지 버티다 김정은 체제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 역시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는 한 가지 전제가 빠져 있다. 과연 개성공단 폐쇄와 대북제재는 북한에 얼마나 큰 압박을 가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분은 정부가 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하면서 밝힌 ‘연 1억 달러 안팎의 근로자 인건비’다. 여기에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최대치로 해석해 석탄과 철광석 등의 수출이 완전히 중단된다고 가정하면 그 전체 분량이 연 11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규모다. 통계마다 다르긴 해도 북한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은 300억 달러(약 35조 원) 안팎이라는 게 정설. 대북제재로 발생하는 타격은 북한 전체 GDP의 3~4% 수준이라는 뜻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 정도 수준의 경제적 타격은 분명 감당하기 쉽지 않지만, 가장 큰 함정은 2016년의 북한이 10년 전 북한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체제는 북한 전역에서 열리는 장마당을 사실상 허용해왔고, 군 단위로 기동타격대를 조직해 소요 발생 등을 차단하면서도 시장을 통해 오가는 상업거래 자체는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2010년 200개 남짓이던 전국 상설시장은 2015년 기준 2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수년간 북한이 연 4~5%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당국의 통제 밖에서 이뤄지는 민수경제 혹은 사경제가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움직이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제 메커니즘이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통계수치 하나 더.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 이래 단 한 차례도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적자폭이 더욱 커져 연 8억~16억 달러 안팎의 적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 통상의 국가라면 해외에서 차관을 빌리는 방식으로 적자를 메우겠지만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북한 처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엄청난 적자를 장기간 기록하면서도버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뿐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밀무역이 최소한 10억 달러 이상 흑자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앞서 본 북한의 최근 경제성장률까지 감안하면, 밀무역 규모는 이미 공식무역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어떻게든 살길 만드는 ‘사경제’의 위력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 만찬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성공단 폐쇄와 뒤이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모두 북한의 공식경제에 대한 압박이다. 다른 말로는 공식경제가 곧 전체 국가경제였던 김정일 시대의 북한 경제구조를 전제로 한 ‘돈줄 끊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 김정은 시대의 모델은 전혀 다르다. 사경제 규모 자체가 비약적으로 커졌을 뿐 아니라, 사경제와 공식경제가 사실상 화학적 결합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최근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국제 금융거래. 이번 대북제재의 중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는 북한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지점을 개설하거나 거꾸로 해외 금융기관이 북한 내부에 지점을 개설하는 일을 금지하는 조치였지만, 이미 북한은 국제금융 거래망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를 관장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통계를 보면 2013년 북한이 국제금융 거래망을 사용한 횟수는 2000여 건에 불과하다. 같은 해 한국이 사용한 횟수의 3만 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외국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북한의 돈주와 사업가들은 현금이나 물물교환, 심지어 중국 삼합회 등이 운영하는 ‘검은 거래망’을 이용한다는 게 정설. 모두 국제사회 대북제재로는 규모조차 파악이 불가능한 경로다.
3월 17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한 ‘개성공단 완제품이 장마당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제재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경제가 공식경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묶여 있는지 잘 보여준다. 남측 기업이 개성공단 내 공장에 두고 온 완제품이 이미 사경제로 넘어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 외부에서 어떤 압박이 가해지든 살길을 만들어내는 장마당 경제의 놀라온 생명력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풀뿌리 경제주체들이 저마다 해결책을 강구하는 ‘자본주의의 힘’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평양은 이러한 사경제의 탄력성을 활용해 제재 국면을 돌파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대북제재 항목은 대부분 민생경제 관련 부분을 금수조치나 화물검색 등에서 예외로 인정한다. 사경제는 앞으로도 아무런 제약 없이 돌아간다는 뜻이고, 이는 곧바로 걸림돌을 만난 공식경제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중이 가장 큰 석탄·철광 수출만 해도, 지금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국가기관 명의로 돼 있는 수출기업소나 무역회사를 민간 명의로 돌리기만 하면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제동을 걸고 나설 근거가 사라진다. 이미 이들 기업소의 실질적인 운영권은 민간사업자들에게 돌아간 지 오래고, 명의를 빌려준 국가기관은 수수료를 떼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게 최근 수년 사이 관행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간단한 서류 처리만으로 제재를 우회하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다.
개성공단 폐쇄와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견해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통일부 등 주무부처에서는 ‘대북제재 후폭풍으로 김정은 체제가 1~3년 내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지만, 이러한 ‘주문생산형 보고서’에 대해 전문연구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견해가 흘러나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부는 저만치 앞서가며 제재의 위력을 홍보하는 데 여념 없으나,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구멍이 무수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달라진 북한 경제 메커니즘을 따라잡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효과를 과신하는 셈이다.





‘한중 정상회담’ 염려하는 이유

박근혜 정부, 쓸 카드가 없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키리졸브가 시작된 3월 7일 오후 미 해군 ‘본험 리처드함’(4만500t급)과 상륙선거함 ‘애실랜드함’(1만7000t급)이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작전지역인 동해로 출항하고 있다. 동아일보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2라운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지를 결정할 모든 키를 중국이 쥐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 어디까지가 민생경제인지는 북한 전체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정부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이 포함돼 주목받은 미국의 대북제재 법령 역시 실행 여부는 상당 부분 행정부의 판단에 달렸고, 그나마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행정명령 차원에서 이행된다. 심지어 일본이 꺼내든 독자제재 조치 역시 상황이 바뀌면 즉각 철회 가능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애초부터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대북제재의 목표가 ‘북한 경제 붕괴’가 아니라 ‘대화 재개’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다. 평양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면 이내 거둬들이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어야 카드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 한번 정해지면 돌아올 수 없는 조치로 점철돼 있다면 북한이 대화에 나설 이유도 사라진다. 이른바 ‘끝장제재’를 공언해온 한국과는 근본적인 목적 자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청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다른 나라의 제재조치와 유독 성격이 다른 이유는 돌이키기 어려운 한 수라는 점에 있다. 상황이 달라져도 공단을 복원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이를 통해 북측에 전달된 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쓰였다는 논리를 구사하면서 앞으로 모든 남북경협사업은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측의 조치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면 평양이 손을 들고 나올 이유도 사라진다. 북한 붕괴만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전략으로 남는 셈이다. 개성공단의 의미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떠나, 이로써 한국이 쓸 수 있는 지렛대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사상 최강의 제재’라는 목표를 위해 손에 쥔 카드를 모두 한꺼번에 쏟아부은 형국. 대북정책의 강약 조절이 불가능해진 현 상황에서는 미·중 간 막후협상으로 상징되는 국제사회의 북핵 관련 논의에서도 의사를 관철할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두가 평양의 다음 수가 무엇인지 주목하는 현재 상황만 보면 오히려 국면의 주도권은 북측으로 넘어갔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 반면 3월 8일 독자제재 조치 발표와 14일 대통령 주재 재외공관장 만찬을 끝으로 청와대의 관심사는 북핵 문제에서 총선으로 옮겨가는 기류가 역력하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의 말이다.
“쉽게 말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분위기다. 북핵 문제는 장기전으로 넘어갔지만 총선은 코앞에 닥친 이슈 아닌가. 당초 청와대는 3월 말 미국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었고,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정상회담을 열어 담판 짓는 방안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라도 언급한다면 우리에게는 외교적 재앙 아닌가. 막대한 외교력을 소비해가며 양국 지도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봐야 긍정적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전직 외교당국 고위 관계자는 “자칫하면 돌격대장으로 최전선에 섰다 홀로 남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국방부가 역시나 ‘역대 최고 수위’를 강조해온 올해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 대해 미군 측 관계자들이 “훈련 내용이나 규모 모두 예년 수준과 다르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는 점만 봐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것.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사드든 평화협정이든 더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속내”라고 전했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 한 달, 꼼꼼히 복기해본 현실은 이렇듯 간단치 않은 계산서를 내민다. 애초 내심 호기롭게 꿈꿨던 ‘김정은 체제 흔들기’에는 변화한 북한 경제의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근본적 한계가 숨어 있고, 강대국은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대신 한반도의 긴장을 하루빨리 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고 기세 좋게 외쳤지만, 이제 와 되짚어보니 더는 수가 남지 않은 상황. 박근혜 정부가 맞이하는 ‘봄 아닌 봄’의 진짜 얼굴이다.  







주간동아 2016.03.23 1030호 (p28~31)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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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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