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2016.03.16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2007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경우

음악과 인공지능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3-14 11: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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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류와 인공지능’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다시 꺼내게 한다.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의 육체는 결코 강하지 않다. 근력은 침팬지보다 약하고 빠르기는 토끼보다 못하다. 그런 인간이 자연을 제패하게 된 건 도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바퀴와 수레를 개발해 코끼리보다 많은 화물을 나를 수 있었고, 투창을 개발해 매머드를 사냥했다. 단순하게 말해 그 동기는 편리함의 추구였다. 즉 인간의 근육노동을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1937년 영국 앨런 튜링은 계산기의 모형이 되는 튜링 머신을 개발했다. 49년에는 이진법을 채택한 에드삭이 개발되면서 현대 컴퓨터의 개념이 확립됐다. 그 후 개인용 컴퓨터(PC)가 개발, 보급되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보편적인 용도는 연산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수행이다. 인간이 내린 명령을 수행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는 디렉터(director)와 오퍼레이터(operator)다.
    이 관계 속에서 인간은 컴퓨터를 창작의 영역에 활용해왔고, 비약적인 성과를 얻었다. 1982년 설립된 어도비는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미술에 디지털 개념을 입혔다. 음악은 더욱 빨랐다. 62년 로버트 모그 박사에 의해 최초의 기계식 신시사이저 모그(사진)가 양산됐다. 아날로그 악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소리가 ‘기계음’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귀와 처음 만난 것이다. 그리고 50여 년, 짧다면 짧은 시간에 컴퓨터는 오늘의 대중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미디(MIDI) 프로그램은 누구나 집에서, 아니 스마트폰을 들고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작곡과 녹음을 가능하게 한다. 심지어 실제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더라도 마우스 클릭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오직 프로그래밍으로만 작업되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은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이 큰 장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쨌든 인간의 디렉팅, 컴퓨터의 오퍼레이팅이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래 컴퓨터는 인간의 창작력, 즉 디렉팅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다시 알파고로 돌아가자. 알파고의 원리는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개념을 활용, 수많은 바둑의 기보를 분석해 경우의 수를 체득하고 실전에서 ‘판단’을 통해 한 수 한 수를 두는 데 있다. 이 원리를 음악에 적용한다면? 2007년 발매된 음반 한 장이 이 물음의 답에 대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하자면 글렌 굴드가 ‘직접’ 연주한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렇다.
    먼저 컴퓨터 프로그램이 글렌 굴드의 1955년 레코딩을 분석했다. 그래서 당시 레코딩 기술로 녹음된 ‘음원’을 배제하고 스튜디오에서 울리는 그의 연주만 남겼다.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이 데이터에 의해 작동되는 피아노가 오리지널 연주를 ‘재현’했다. 이 피아노는 어떤 건반을 얼마나 길게 눌렀는지는 물론,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는 물리적 과정까지 고스란히 연주했다. 따라서 55년 미국 뉴욕 CBS 스튜디오에서 울리던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가 2006년 캐나다 토론토 CBC 스튜디오에서 ‘원음’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 연주를 녹음한 게 이 음반이다. 말하자면 이 음악에서 글렌 굴드는 일종의 설계도 노릇을 한 것이다.
    이 설계도가 쌓이고 쌓인다면? 다시 말해 슈퍼컴퓨터를 통해 인간이 만든 모든 악보와 음반을 ‘딥러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첫 승을 거뒀듯 최상위급 음악 재능을 가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음악 이상을 ‘창작’해낸다면? 그 음악이 인류를 열광하게 한다면? 답은 하나다. 예술, 영감, 감성 같은 ‘숭고한’ 개념은 뿌리째 흔들릴 거다. 그런 세계가 ‘터미네이터’일지 ‘바이센테니얼 맨’일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상위 0.001%의 재능을 인공지능이 위협하는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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