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강유정의 영화觀

시대와 불화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

톰 후퍼 감독의 ‘데니쉬 걸’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3-04 15: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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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된다. 삶이 드라마가 되는 데는 몇 가지 교호작용이 필요하다. 시대적 억압은 필수다. 시대와 인간이 조금 불일치할 때 교호작용은 배가된다.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문제적 인물이 되는 원리와 비슷하다. 적서차별이 없었다면 호형호제가 뭐 대수로운 문제였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의 시대엔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자, 그의 삶이 곧 드라마틱한 삶인 것이다.
    영화 ‘데니쉬 걸’의 주인공인 화가 에이나르(에디 레드메인 분)는 그런 점에서 무척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그는 세상이 요구하는 삶에 고개 숙이지 않고 스스로 살고 싶은 삶을 선택했다. 그것이 어마어마한 대가를 요구하는데도, 결코 타협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성정체성에 대한 선택이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그는 스스로를 남자가 아닌 여자로 여기며, 여성일 때 자신이 더 자기답다고 느낀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는 사상 처음으로 성전환수술을 시도한 사람이다. 때는 1926년, 동성애나 성정체성 문제는 공공연히 드러낼 수 없는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시대에 살던 에이나르는 아주 우연한 일을 계기로 진짜 자신은 겉모습과 다른 성별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 역시 매우 드라마틱하다.
    에이나르는 무척 인정받는 화가였다. 그의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 분) 역시 화가지만 남성 위주의 덴마크 미술계는 게르다의 재능을 좀체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에이나르가 아내의 모델이 돼준다. 장난처럼 스타킹을 신고 발레 튜튜를 입고 모델이 된 에이나르,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환희를 얻는다. 처음엔 바삭거리는 투명한 질감의 옷에 대한 매혹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점점 일이 커진다. 여자옷을 입고, 스타킹을 신고, 화장하는 데 만족하던 초반에서 벗어나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 그대로 타인을 만나고 싶어진 것이다. 남자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남성으로서의 자신에게 불만족이 점점 커진다. 에이나르는 자신이 잘못된 성별을 갖고 태어났음을 확신한다.
    영화는 성정체성을 깨달은 남편 에이나르만큼이나 곁에서 그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아내 게르다의 갈등을 섬세히 들여다본다. 어떤 점에서 에이나르에겐 여성으로의 변화가 확신에 찬 선택이었지만 그의 아내에겐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게르다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남자를 넘어 하나의 인간으로서 진정 사랑하고 이해했기에 에이나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한다. 그가 성전환수술이라는 전무후무한 도전에 나설 때도 게르다는 에이나르의 손을 꼭 쥐어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적 있는 배우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다. 전작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역을 실감 나게 연기했던 레드메인은 이번엔 성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 사이의 갈등을 훌륭한 눈빛으로 보여준다. 그는 눈빛으로 연기한다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아내 게르다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도 무척 훌륭하다.
    톰 후퍼 감독의 잔잔한 연출력은 불가능한 꿈을 이루고자 했던 인물의 도전을 담담하고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감독은 에이나르의 선택이 옳았다 혹은 틀렸다고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간절한 바람을 절실한 눈빛에 실어 전달하고자 했고,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진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이렇듯 삶 속에서 이미 현재진행 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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