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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맹이라 핵무장 봐준다? 시범 케이스 삼아 훨씬 가혹할 것”

2004년 ‘핵물질 실험 파문’ 진화 주역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동맹이라 핵무장 봐준다? 시범 케이스 삼아 훨씬 가혹할 것”

“동맹이라 핵무장 봐준다? 시범 케이스 삼아 훨씬 가혹할 것”

사진·김성남 기자


‘북한 핵개발에 대항하는 한국의 핵무장은 그 나름의 명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불량 국가’인 북한의 핵 도박과 한국의 자위적 고민을 동일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이어진 평양의 도발 행보에 쏟아져 나온 이른바 ‘자위적 핵무장론’의 논리적 배경이다. 그간 쌓아온 동맹의 신뢰를 감안하면, 미국 역시 한국의 절박한 선택을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를 엿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04년 9월 불거진 ‘우라늄 농축’ 파문이다. 1982년과 2000년 한국의 원자력 연구기관이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실험을 비밀리에 실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단을 보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부를 논의했던 이른바 ‘남핵(南核) 의혹 사건’이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상대

국가정보원 3차장을 지낸 서훈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는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보관리실장으로 재직하며 이 사안에 대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외교부와 과학기술부(과기부), 국정원 간부들이 3개월여 동안 진행한 수십 차례의 회의와 해외 주요국 방문, 국제기구에 대한 총력 외교전을 조율하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주간동아’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한국의 핵 관련 움직임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서 전 차장의 회고를 들었다. 인터뷰는 2월 24일 그의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사안이 어떻게 불거졌는지부터 시작해보자. 미국 워싱턴 외교정보지 ‘넬슨리포트’가 처음 이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넬슨리포트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캐낸 건 아니다. 2004년 2월 한국이 IAEA 추가의정서를 비준함에 따라 6개월 뒤인 그해 8월까지 그간 보고하지 않았던 관련 정보를 신고해야 했다. 이를 앞두고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가 ‘2000년 극미량의 우라늄 농축실험을 진행했다’며 과기부와 청와대에 보고한 게 8월 22일이었다. 그 직후 우리가 IAEA에 제출한 보고가 미국 정부에 전달됐는데, 불과 며칠 뒤인 9월 2일 넬슨리포트가 이를 공개했다.
원자력연구소의 첫 보고에는 한 가지 사실이 누락돼 있었다. 1982년에도 역시 극히 미량이지만 플루토늄 추출을 진행했다는 정보였다. 과학자들 역시 걱정이 앞서 일부를 빠뜨린 것이겠지만, 이후 IAEA가 국내에 들어와 사찰을 진행하면서 이 ‘불일치’를 정확히 찾아냈고 이는 이내 미국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기억하다시피 이 시기 6자회담이 한창이었고, 이란과 리비아의 핵개발 문제도 첨예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비밀리에 핵 물질 확보 실험을 했다는 건 곧장 안보리 회부로 연결되는 사안이었다. 정부로서는 이후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한마디로 국가적 위기였다.”
안보리 회부 여부를 결정짓는 건 IAEA 이사회였지만,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미국과 협의했을 것으로 안다. 당시 미국 정부의 반응이나 인식은 어땠나.
“미 국무부 대변인의 일성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라는 지적은 물론, 한국 정부 주도설이나 파키스탄 협력설 같은 근거 없는 의혹마저 워싱턴발(發)로 쏟아졌다. 한마디로 당시 IAEA 이사국 등 관련국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겨웠던 상대는 소원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아무리 오랜 동맹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해도 핵 투명성 문제만큼은 완전히 이해가 달랐다.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눈에 한국은 이미 1970년대 핵 개발을 시도한 전력이 있고, 북한의 핵 개발 이후 언제든 이에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전과자’였다. 한국이 핵 개발을 시도한다면 자신들의 전 세계 비확산 전략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가장 오랜 동맹국을 일종의 시범 케이스로 삼아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아무도 감히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예컨대 안보리 회부 여부를 결정짓는 그해 11월 25, 26일 IAEA 이사회 전날까지 미국은 한 차례도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 후임으로 결정됐던 콘돌리자 라이스와 협의해 IAEA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끝까지 애를 먹인 것이다.”



핵은 미국과의 게임

최근 국내에서 핵무장 주장이 불거지면서 당시 상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때 경험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앞서 말했듯 1982년 플루토늄 추출은 극히 미량이었고, 연구소 외에는 정부 관계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IAEA는 데이터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모든 핵 물질의 반입량과 사용량, 폐기량을 밀리그램 단위로 확인하는 관리체계는 그렇듯 정밀하다.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일본과 달리, 우라늄 광산조차 없어 모든 핵 물질을 수입하는 우리는 기술은 있을지언정 재료가 없다. 결심한다 해도 물리적 수단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현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를 공론장에서 떠드는 건 불필요한 의심과 감시를 자초하는 일일 따름이다.
핵무장 주장을 통해 우리의 절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수단으로서는 유효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다. 전문가 사이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로 이러한 주장이 나오면 효과는 사라지고 부메랑이 될 공산만 커진다. 미국으로부터 전술핵을 재반입하거나 확실한 핵 방위 공약을 다시 한 번 확인받는 수준에서 접어야 옳다.”
NPT 탈퇴를 선언하고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를 끌어다 농축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NPT 탈퇴를 선언하는 순간 앞서 말했듯 미국은 시범 케이스를 단죄하는 차원에서 매우 단호하게 나올 것이다. 동맹국이므로 양해하는 게 아니라 동맹국이기 때문에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그간 북핵 문제로 코너에 몰렸던 중국이 반전의 계기 삼아 우리에게 가할 압박과 제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핵무장 시도가 경제와 안보 모두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얘기는, 내가 경험한 2004년 사례를 바탕으로 말하건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어지는 주장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있다고 보나.
“2004년 케이스의 경우 사안이 최종 종료된 건 2008년이었다. 한번 금이 가면 회복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하고 연구하는 일에도 장애가 생긴다. 당시 우리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정부는 몰랐다’는 것이었다. 바보같이 들리지만 탈출구는 그뿐이었다. 그러나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핵무장을 역설하는 상황에서 더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핵 문제는 IAEA나 NPT가 아니라 한미원자력협정의 문제다. 모든 여탈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핵무장은 북한 이 아니라 미국과의 게임이라는 뜻이다. 모든 피해를 감수하며 핵을 갖는다고 미국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이 커지는 것도 아니다. 북한만 보며 감정적으로 말을 꺼내거나 수를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6.03.02 1027호 (p22~23)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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