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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중력파 발견 한국도 함께 했다

13억 년 전 소멸된 블랙홀이 알려준 우주의 비밀…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공동저자로 이름 올려

  •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중력파 발견 한국도 함께 했다

중력파 발견  한국도 함께 했다

사진 제공 · SXS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가 중력파를 검출했습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We did it)!”
2월 11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인터넷을 타고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데이비드 레이츠 ‘라이고’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를 본 것 같다’라거나 ‘아마도 찾은 것 같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표현은 쓰지 않았다. 이 발표 내용은 당일 출판된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에도 실렸다. PRL은 물리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이후 세계는 온통 ‘중력파 발견’의 흥분에 휩싸여 있다.
사실 과학계에 이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건 훨씬 전부터다. ‘한 세기를 뛰어넘는 대발견’인 만큼 과학자들도 입이 근질근질했던 것일까. 공식 발표가 있기 몇 주 전, 이르게는 수개월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레 중력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이 소문의 진위를 가리는 무게 추는 캐나다 이론물리학자인 클리퍼드 부르게스 맥마스터대 교수에 의해 ‘사실’ 쪽으로 급히 기울기 시작했다. 2월 3일 부르게스 교수가 대학 동료들에게 단체 e메일을 보내 “11일 게재 예정인 논문을 직접 본 사람에게 들은 것”이라며 “라이고 연구팀이 2개의 블랙홀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온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5일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학술지 ‘사이언스’가 부르게스 교수를 인터뷰해 뉴스 섹션에 ‘아마도 사실’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으면서 논란에 방점을 찍었다. 마침내 9일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은 “80개국 연구진이 참여한 중력파 연구 성과를 현지 시간 11일 오전 10시 30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 중력파가 인류에게 최초로 포착된 뒤 암암리에 소문이 퍼지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과정을 빠르게 훑었다. 이제는 잠시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자. 중력파란 무엇이고, 라이고는 또 뭘까.



시공간을 흔드는 물결

먼저 중력파란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에너지 일부가 손실돼 만들어지는 파동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뒤, 그 이론으로부터 직접 이러한 가설을 도출했다. 중력파의 발견이 물리학계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쉽게 말해 일반상대성이론이 올바른 이론임을 증명하려면 중력파가 반드시 존재해야 했던 것이다. 73년 이미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하는 간접 증거가 발견돼 오늘날 일반상대성이론을 의심하는 과학자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게 과학자들의 습성이다.
다시 중력파로 돌아가자. 중력파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비유는 ‘시공간을 흔드는 물결’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는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 푹신한 매트리스(시공간) 위에 볼링공(질량을 가진 물체)을 얹고 이리저리 흔들 때(가속운동) 출렁거리는 파동(중력파)이 매트리스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만들어지는 만큼, 자동차도 사람도 움직일 때마다 중력파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질량이 작아 시공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이 때문에 포착도 쉽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 뒤 “중력파는 너무 약하고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아 누구도 검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낙담했다고 한다. 이후 과학자들은 시공간을 흔들고 모든 물질을 투과해 지나가는 중력파를 탐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민했다. 라이고 연구팀이 선택한 건 중력파가 지날 때 시공간에 생기는 미묘한 변화를 직접 감지하는 방식이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을 맡아 대중에 널리 알려진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와 같은 대학 로널드 드레버 교수, 라이너 와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이 이 작은 변화를 감지해내기 위한 이른바 ‘라이고 프로젝트’의 시작을 주도했다.
라이고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의 줄임말. ‘중력파 검출기’가 아닌 ‘중력파 관측소’라는 말을 쓴 데서 알 수 있듯 일종의 천문대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터널을 지나는 두 레이저빔이 만나면 서로 완벽히 상쇄돼 아무런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중력파로 시공간에 변화가 생기고 빛이 터널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지면 신호가 나온다. 라이고는 바로 이것을 잡아낼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에 남은 중력파의 흔적을 찾는 대신 중력파가 지나면서 흔들리는 시공간의 변화를 직접 포착한 것이기 때문에 라이고 연구팀은 ‘중력파를 관측했다(observe)’는 표현을 썼다.


중력파 발견  한국도 함께 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있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왼쪽). 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단장이 2월 12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중력파 발견과 관련한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뉴시스

“한국 과학의 성과”

이번에 라이고 연구팀이 관측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떨어진 먼 우주공간에서 태양보다 질량이 각각 36배, 29배 큰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이다(사진). 수십억 년에 걸쳐 서서히 서로 접근하던 블랙홀은 빛 속도의 절반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해 결국 하나의 블랙홀이 됐다. 라이고가 이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라이고 연구팀의 이번 성과는 최초로 중력파를 직접 관측한 것 외에도, 블랙홀과 블랙홀의 충돌이라는 극적인 현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블랙홀 2개로 이뤄진 쌍성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또한 사상 최초다.
앞으로는 라이고가 중력파를 검출하는 것뿐 아니라 천문 현상을 관측하는 데도 적극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력파는 지구를 통과하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남반구의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간접증거들을 통해 존재만 짐작할 수 있던 블랙홀을 이번처럼 관측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킵 손 교수는 “중력파를 이용한 천체 관측은 21세기 천문학과 우주론의 큰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력파 발견 성과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강궁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 14명이 이 연구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orean Gravitational-Wave Group) 소속인 이들은 2009년부터 라이고 연구에 참여해 PRL 논문에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연구팀은 라이고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은 물론, 데이터 중에서 노이즈(잡음)를 제거하는 소프트웨어와 중력파를 만든 천체의 물리량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해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강 연구원은 이에 대해 “중력파 실험을 통해 예상되는 과학적 성과가 매우 큰 만큼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투자를 통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02.24 1026호 (p70~71)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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