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총선 특집 | 무소불위 여론조사

“20, 30대 할당 채우기 급급”

겉으론 ‘임의걸기 방식’, 실제론 패널 DB 사용하고도 신고 안 해…엉터리 결과로 공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2-22 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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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특히 선거 영역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이제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다. 국민을 대표해 입법부 구성원이 될 예비 국회의원 후보자를 가를 판단의 근거로 격상했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각 당 공천 일정까지 덩달아 늦춰져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공천 작업에 여론조사가 활용될 공산이 크다. 특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은 경쟁이 치열한 선거구의 예비후보자를 2~3명으로 압축하는 이른바 ‘컷오프’는 물론, 최종 후보자를 선출하는 데도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할 뜻을 밝히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공천’이란 점에서 여론조사는 현대판 ‘제왕적 총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ARS 못지않게 부실한 전화면접 조사

    ‘주간동아’는 60대를 20대로 둔갑시킬 수 있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의 위험성(‘주간동아’ 1020호 참조)을 경고하고, 초등학생도 유효한 응답자가 될 수 있는 ARS 여론조사의 허점(1021호 참조)을 지적한 바 있다. ARS 여론조사가 조직 동원과 여론 왜곡 가능성에 노출돼 있어 공천자 당락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유효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런데 ARS 여론조사 못지않게 전화면접 여론조사 또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여론조사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화면접 여론조사가 부실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전화면접원의 자질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일부 여론조사업체의 경우 시간으로 계산해 일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최종 응답 건수로 수당을 줘 부실 조사를 방조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간을 기준으로 일당을 주지 않고 최종 응답 건수로 수당을 주면 전화면접원이 일당을 높이고자 무리해서 더 많은 응답을 받으려 하고, 그 과정에 부실 조사가 끼어들 개연성이 커진다는 것. 허위 응답이나 불성실 응답 등 유효 응답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응답은 과감하게 부적격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최종 응답 건수를 높이려는 유혹에 빠져 유효 응답으로 처리하려는 전화면접원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실에서 2월 1일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공개한 한 전화면접 여론조사 사례를 보면 응답자가 조사 설계가 잘못된, 적절치 않은 여론조사라며 거듭 응답을 거부하고 문제 제기를 했지만, 해당 전화면접원은 예정된 설문조사를 계속 진행하려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응답 거부 시에는 부적격 응답으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지속하려 한 것은 유효 응답으로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론조사업체들은 전화면접원들의 이 같은 부실 조사를 걸러내고자 감청과 녹취를 한다. 그러나 녹취와 감청만으로는 모든 부실 조사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대표 여론조사업체 간부인 A씨는 “부실 조사를 행하는 전화면접원은 감청 등을 통해 즉시 걸러내고, 이후 다른 여론조사에서 배제하는 등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여론조사업체 C대표는 “ㄱ사에서 일하던 면접원이 며칠 뒤 ㄴ사에서 일하고, 며칠 뒤 ㄷ사에서 일한 뒤 다시 ㄱ사에서 일하는 게 여론조사업계 현실”이라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자격이 없는 면접원의 경우 협회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부실 조사로 적발된 전화면접원을 특정 회사가 여론조사에서 배제한다 해도, 여론조사업체가 공유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전화면접원을 동시에 걸러내지 않는 한 부실한 전화면접원의 활동 가능성은 상존하는 셈이다.



    패널 DB의 객관성, 공정성 검증 필요

    실적에 목맨 전화면접원의 부실 조사 못지않게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할 위험성이 큰 것이 이른바 패널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한 조사다. 특히 응답률이 낮은 20, 30대 연령층의 경우 여론조사업체가 별도로 관리하는 DB를 활용해 조사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일해본 전화면접원들의 입을 통해 업계에 퍼져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지고 있다. 다음은 B여론조사 업체 대표의 전언.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처음에는 RDD(Random Digit Dialing·임의걸기) 방식으로 조사하다 20, 30대 응답자가 부족하면 저녁 6시쯤 DB를 별도로 분배해준다. 그 DB를 받아 조사하면 20대와 30대가 집중적으로 여론조사에 응해 조사 시간 내 할당 건수를 거의 채울 수 있다.”
    별도의 DB는 어떻게 구축한 걸까. 여론조사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한 것도 있겠지만, 일부는 해킹 등 불법적 방법으로 흘러나온 DB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여론조사업계에서 나온다.
    만약 여론조사업체가 별도 패널 DB를 활용해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에는 그 같은 사실을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과 제도에서는 여론조사업체들이 심의위원회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RDD 방식인 것처럼 공표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내 여론조사업체 가운데 패널 DB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국리서치의 김춘석 이사는 “응답률이 낮은 연령대의 경우 적은 응답에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법과 패널 DB를 활용해 응답률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더욱 정확한 조사 결과를 얻으려면 가중치를 주는 것보다 패널 DB를 활용하더라도 할당된 응답 수를 채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는 전국적으로 36만여 명의 패널 DB를 구축하고, 이 가운데 20만 명은 우리나라 국민의 구성 비율 그대로 세대, 지역, 연령, 직업이 일정하게 분포돼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리서치는 패널 DB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통계청으로부터 인정받기도 했다고. 그래서일까. 한국리서치는 자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패널 DB 사용에 대한 사실을 당당히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업체의 경우 패널 DB를 사용하고서도 이를 숨기는 사례가 적잖다는 게 여론조사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패널 DB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염된 패널 DB가 사용될 경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패널 DB인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자 결정의 중요한 판단 자료로 활용할 예정인 만큼,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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