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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꿈이라는 미명, 비겁한 어른들

‘트와이스’ 쯔위 논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꿈이라는 미명, 비겁한 어른들

꿈이라는 미명, 비겁한 어른들
누가 예상했을까. 한 10대 여가수가 양안관계의 변수로 떠오를 줄을. 그리고 그 진앙이 한국이 될 줄을. 연예계를 넘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던 트와이스 쯔위의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논란’ 말이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2015년 11월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JYP 소속 걸그룹 트와이스의 외국인 멤버들이 출연했다. 일본 국적의 모모, 사나, 미나, 그리고 대만 국적의 쯔위였다. 인터넷 채팅 형태로 생중계되는 이 프로그램 녹화 과정에서 4명은 각자 출신 국가의 깃발을 흔들었다. 이 장면은 인터넷으로는 중계됐으나 본방에서는 편집됐다. 당연하다. 어쨌든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올림픽 같은 국제무대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편집된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용히 지나가는 듯싶었던 이 영상이 문제가 된 건 1월 8일이었다. 황안(黃安)이라는 친중(親中) 연예인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올리고 쯔위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일은 중국 현지에서 보도되며 공론화됐고, 한 방송사가 트와이스 출연이 확정됐던 춘절(春節) 특집방송 계획을 취소하면서 불타올랐다. 결국 중국 온라인에서는 JYP 거부 해시태그가 6500만 건 이상 사용되는 등 트와이스를 넘어 JYP 전체에 대한 일종의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JYP에서 두 차례 성명을 냈지만 사태는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쯔위가 JYP 유튜브 공식채널을 통해 사과성명을 발표했다(사진).
불길이 꺼졌나. 전혀. 오히려 대만 쪽으로 번졌다. 대만의 모든 TV 채널에서 쯔위의 사과 영상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그리고 1월 16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 민주진보당 후보가 압승했다. 예정된 승리였다고는 하지만, 대만 야후의 설문조사 결과 이 사건이 민주진보당의 승리 원인 3위로 뽑혔다. 차이잉원 당선인도 인터뷰를 통해 “많은 국민이 마음 아파하고 심지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다. ‘중화민국’ 국민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국가와의 일체감을 표시하는 행위로 이를 억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며 “쯔위는 강압적으로 마음과 다른 일(사과)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도 이 정도다.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난 건 한국이 동아시아권에서 엔터테인먼트 소비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방송도 아닌 인터넷 영상이 가십에 그치지 않고 양안관계의 민감한 지점을 헤집어놓았다. 논란의 당사자는 대만 국적이긴 해도 한국 연예기획사 소속이며 주된 활동무대도 한국이다. 아직 빅스타도 아닌데 이런 논란을 낳았다. 한국 아이돌이 내수상품이 아니라 수출상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외교 현안으로 떠오를 만큼 막강한 시장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과거 제조업 수출 시대만큼이나 해당 국가의 문화적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JYP의 대응은 미흡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박진영의 비겁함이다. 쯔위가 초췌한 표정으로 울먹이듯 사과성명을 읽은 반면, 박진영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소속 연예인을 지켜야 할 회사로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쯔위 본인의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열세 살 때 한국으로 건너와 3년간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 열일곱 살 소녀에게 누가 정치적 행동을 기대하겠는가. 중국에서 쯔위보다 JYP에 대한 보이콧 흐름이 강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사과하는 과정에서 박진영이 나서고 쯔위는 뒤에 숨겨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한국에 온 쯔위의 부모를 대신해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회사의 잘못”이라는 박진영 스스로 한 말에 대한 온당한 책임이다.
JYP는 스케줄 몇 개를 놓쳤고 일시적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하지만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직 쯔위가 회사 전체 이익을 위해 대속의 재단에 섰다. 쯔위의 사과 영상은,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어른들의 뜻에 따라 몸매를 드러내고 섹시 댄스를 춰야 하는 이 땅의 10대 소녀를 상징하는 기록화처럼 보였다.







주간동아 2016.01.27 1023호 (p79~79)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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