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커버스토리 | 청춘이라 죄송합니다

‘알바’에겐 회사도 甲, 고객도 甲

상시적 인권침해 노출된 행사장 알바…화장실 자주 가도 ‘해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1-25 15: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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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공연, 스포츠경기 같은 각종 행사의 안내 아르바이트(알바)는 청년들 사이에서 ‘꿀알바’로 통한다. 값비싼 행사를 공짜로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기 때문. 문화계 직종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은 이 ‘알바’를 진로탐색 기회로 삼기도 한다. 한 공연장에서 ‘어셔(usher)’로 불리는 좌석안내원 ‘알바’를 하는 대학생 A(24)씨는 “문화계 쪽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화행사 ‘알바’는 청년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관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수모를 당하는 일이 많아서다. 공연장 어셔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 B(24)씨는 “만취한 노인 관객이 공연장으로 술을 반입하려는 걸 막다 침 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뱉은 침이 얼굴과 상의에 다 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도 관객에게 멱살 잡히는 정도의 일은 늘 겪어서’ 생각보다 덤덤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관객에게 성희롱당해도 참아라”

    행사장 ‘알바’의 또 다른 ‘갑(甲)’은 주최 측, 즉 고용주다. 업무규정이 다른 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기 때문이다. 미술대를 졸업하고 전공 관련 경력을 쌓고자 지난해 한 미술관에서 도슨트(docent·작품해설자) 겸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했던 C(27)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 빼고는 내내 서 있어야 했다. 안내원은 정자세로 서서 관객을 맞는 것이 업계 불문율이기 때문”이라며 “다리가 아파서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곧장 ‘똑바로 서라’는 관리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화장실도 주위 동료에게 반드시 말하고 다녀와야 했다고 한다. C씨는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관리자 눈 밖에 나기 때문에 화장실 한 번 마음 편히 다녀온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용모에 대한 지적이 많다는 점도 문화행사 ‘알바’의 스트레스 요소라고 경험자들은 입을 모은다. 공연장 안내원 면접을 본 D(30)씨는 “면접관에게 ‘몸무게와 키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들었다”며 “공연장 안내원은 젊고 예쁜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약간 살찐 체격의 내게 면박을 준 것 같다”고 했다.
    한 미술관 안내원으로 일하는 E(31)씨도 회사로부터 옷과 말씨를 교정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어느 날 한 관객이 내가 입은 복장이 안내원 의상으로 부적절하다며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들었다. 한 번은 또 다른 관객이 내가 작품해설 과정에 사용한 어법에 문제가 있다고 회사 측에 항의했다. 회사는 일단 민원이 접수되면 어떻게든 시정 조치를 해야 한다는 방침이라, 의상도 교체하라 하고 작품해설 대본을 만들어 어법을 손본 뒤 상사에게 결재를 맡게 했다”고 밝혔다. “안내원의 복장이나 어법이 전시 관람을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걸로 트집을 잡는 고객이나, 그걸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회사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고 E씨는 말했다.  
    한 스포츠행사에서는 인력관리 담당자가 안내원 교육을 하면서 “일하는 도중 관람객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신고하지 마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르바이트생 인권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인 ‘알바노조’는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이와 관련한 피해자 증언 녹취록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스탠리 큐브릭 전 벌점제도’ 논란은 이러한 문화행사 안내원 특유의 업무 환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3일 엠엘비파크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스탠리 큐브릭 전 근무자 벌점제도 실시’라는 제목의 문건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전시 안내원이 복장불량(벌점 1점), 근무태도불량(벌점 1점), 근무 중 휴대전화 소지(적발 시 바로 퇴사 조치), 근무 중 자리 이탈(화장실 포함, 벌점 1점) 등을 해 벌점을 5점 이상 받으면 해고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건은 해당 전시 기획사인 지앤씨미디어가 인력관리를 위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김현지 지엔씨미디어 전시사업팀 과장은 “일부 아르바이트생이 업무를 게을리하고 구두로 지적해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경고 차원에서 만든 것”이라며 “우리는 1시간 30분을 일하면 30분씩 쉬게 했다. 그동안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같은 개인적 용무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또 ‘근무 중 휴대전화 소지’를 금하고, ‘자리 이탈’에 벌점을 매기는 이유에 대해서도 “미술관 안내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안내원이 다른 데 한눈을 팔거나 자리를 비우면 감시초소가 뚫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그런 규율을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미술관 안내원 ‘알바’를 했던 C(27)씨는 벌점제도와 관련해 “문서가 없을 뿐 이쪽 업계 어디나 비슷한 규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용을 ‘알바’들에게 구두로 지시한다”고 밝혔다. C씨는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해당 규율을 3번만 어기면 바로 해고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규율을 어겨 하루에 여러 번 지적받은 동료가 다음 날 바로 해고되기도 했다”고도 했다.


    안내원이 행복한 행사장

    이러한 문화에 대해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한국 사회 소비자들은 ‘손님이 왕’이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게 문화예술공간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반 평론가는 “유럽 미술관에 가보면 안내원 대부분이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전시장 안내원이 작품 감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우리나라가 진짜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 평론가는 또 “유럽의 미술관 안내원은 거의 예외 없이 중·장년층 또는 노인”이라며 행사장 안내원이 젊고 예쁜 여성이어야 한다는 한국 특유의 편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백우연 청년유니온 노동상담국장은 “행사 주최 측이 ‘무리한 민원에는 응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고객의 무리한 민원이 안내원에게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관리자의 성과에까지 영향을 미쳐 관리자가 안내원에게 과도한 인내를 요구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고리를 끊어내려면 관리자와 사업주가 고객이 요구할 수 있는 문제 범위를 정확히 한정하고,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설희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졸업
    박세준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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