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20대 총선 특별기획 | 여론조사의 함정

선관위 처벌받고도 여심위원?

중앙여심위원 활동 중인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적정성’ 논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1-25 1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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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9일. 6월 4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 여론조사업체 L사는 지방언론사 C사의 의뢰를 받아 ㅊ지역 교육감 후보 지지율 등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닷새 뒤인 4월 14일 C사에 보도됐다. C사는 ‘보수성향 후보자 지지도’ 조사에서 두 후보자의 지지율을 장모 씨는 5.7%로, 홍모 씨는 23.2%로 보도했다. C사 보도가 나가고 사흘 뒤 손모 씨는 C사가 활동하는 지역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여심위)에 ‘여론조사 결과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이의를 신청했고, 해당 지역 여심위는 손씨가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이유 있다’고 인용을 결정했다. 아울러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그 혐의에 대해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측에 통보했다.
    여심위가 ‘이의 있다’고 인용 결정을 내린 이유는 C사 보도 내용과 여론조사업체의 원자료(raw data)에 큰 지지율 격차가 있었기 때문. 여심위가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장씨 지지율은 10.5%였고, 홍씨는 18.3%로 나타났다. 장씨 지지율은 4.8%p 줄여서, 홍씨 지지율은 4.9%p 높여서 보도한 것이다.



    과태료 1500만 원 부과

    여심위는 보도 내용과 원자료 지지율 격차가 큰 여론조사 결과 왜곡은 공직선거법 제108조 8항 2호의 규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지역 선관위는 여론조사 결과 왜곡으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훼손한 혐의를 인정, 여론조사업체 대표에게 과태료 1500만 원을 부과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여심위의 시정명령, 정정 보도문 게재 명령 통보를 받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1500만 원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행 기간을 넘어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을 때는 하루에 100만 원씩 가산토록 하고 있다. 과태료 법정 상한액은 3000만 원이다.
    여심위가 구성된 이후 처음으로 1500만 원 과태료를 부과받은 이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다. 과태료 부과 당시 이 대표는 선거여론조사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 위원이었다. 중앙여심위원은 중앙선관위 인사가 당연직으로 상임위원을 맡고, 한국조사연구학회에서 2명을 추천하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에서 각 1명씩 위원을 추천한다. 대한변호사협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도 각 1명씩 위원을 추천한다. 이 밖에 조사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한국조사협회와 한국정치조사협회에서 각각 추천한 이들이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승열 월드리서치 대표는 한국조사협회, 이택수 대표는 한국정치조사협회 추천 몫으로 중앙여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택수 대표는 중앙여심위원으로 위촉된 지 한 달여 만에 여론조사 결과 왜곡 혐의로 과태료 1500만 원을 부과받은 것이다. 과태료 처분에도 이 대표는 1월 현재까지 여전히 중앙여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4년 3월 5일 구성된 여심위원의 활동시한은 3년. 여심위 한 관계자는 “여심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명시된 해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이 위원은 내년 3월까지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심위 운영규칙 제8조는 위원의 해임 사유로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한 때 △금고 이상 형의 선고를 받은 때   △직무수행에 있어 중립성이나 공정성을 현저히 저해한 때 △정당추천위원으로서 그 추천 정당이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게 된 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여심위 한 인사는 “선거여론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심의 의결해야 할 여심위원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1호 과태료 부과업체라는 점은 여심위의 공정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공정성과 객관성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버젓이 위원으로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여심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업계의 삼성전자

    선관위의 과태료 처분에도 리얼미터는 2014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국내 여론조사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리얼미터는 179회 여론조사를 실시해 전체 21.9%의 점유율을 보였다. 리얼미터 다음으로 여론조사를 많이 실시한 회사는 KM조사연구소로 44건, 5.4%의 점유율에 그쳤다. 2위 업체에 비해 리얼미터가 4배 이상 많은 여론조사를 실시한 셈이다. 리얼미터를 두고 ‘여론조사업계의 삼성전자’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리얼미터의 탁월한 존재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실시 현황에서도 확인된다. 1월 21일 오전 10시 현재, 여심위에 등록된 1277건의 여론조사 가운데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건수는 291건으로 점유율이 22.8%에 이른다.
    ‘주간동아’가 이택수 대표의 중앙여심위 원 적정성 논란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뒤 당사자인 이 대표가 1월 19일 장문의 해명 e메일을 보내왔다. 이 대표는 “200개 가까운 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산 직원이 보기 로테이션 문항의 코딩을 잘못해 ㅊ지역 교육감 선거에서 1~5위 순위는 바뀌지 않았는데, 1위와 3위의 지지율이 일부 계산이 잘못돼 바로 정정보도했고, 해당 언론사인 C사 신문 1면에 사과 광고와 바로잡는 글을 게재했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명백히 우리 직원의 잘못이었으나 선관위 조사 결과 고의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정정보도했다는 점이 참작돼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됐다”며 “이 부분은 내가 이해당사자임으로 제척 사유에 해당돼 심의에 당연히 참여하지 않았고, 실수를 인정해 즉각적인 조치, 사과, 과태료 납부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 대표는 “다른 조사기관들도 고의성 없이 실수를 통해 통계상 오류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체로 주의, 경고, 과태료 등의 조치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 임상렬 한국정치조사협회 회장(리서치플러스 대표)▼
    “과태료 처분 받은 업체 대표의 여심위 활동, 바람직하지 않다”
    총선 공천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조직 동원 등으로 왜곡 여지가 큰 자동응답시스템(ARS) 여론조사로 공천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여론조사업계는 43개 회원사를 둔 한국조사협회와 14개 회원사가 있는 한국정치조사협회, 그리고 두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기타 조사업체 등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조사협회는 1992년 출범했고, 한국정치조사협회는 2011년 출범했다. 두 협회는 ARS 여론조사 실시 여부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한국조사협회 회원사들은 2014년 7월 14일 ARS 여론조사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에 비해 한국정치조사협회 회원사들은 ARS 여론조사 방법을 주로 채택하거나, ARS 여론조사 방법을 허용하고 있다. 1월 19일 오후 임상렬 한국정치조사협회 회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임 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여론조사업체 리서치플러스는 한국정치조사협회 회원사일 뿐 아니라, 한국조사협회 회원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임 회장과의 일문일답.
    ▼ 한국정치조사협회를 별도로 꾸린 이유가 뭔가.
    “실무적으로 필요했다. 여론조사업체를 선정할 때 ‘협회 가입사’ 같은 자격 조건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별도 협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한 당시 여론조사에 필수적이던 RDD(Random Digit Dialing·무작위로 선정된 전화번호를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전화여론조사 방법의 일종으로 무작위 전화걸기라고도 한다) 시스템을 메이저 여론조사업체만 보유하고 있었다. RDD 시스템은 당시 2억, 3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였다. 검증된 유효한 DB(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려는 차원에서 작은 회사들이 모여 협회를 꾸린 측면이 있다.”
    ▼ 한국정치조사협회 회장을 맡게 된 계기는.
    “회장의 구실이라는 게 회원사들 모임 정도를 챙기는 수준이다.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협회를 꾸릴 때 내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회장을) 맡긴 것 같다.”
    ▼ ARS 여론조사가 조직 동원으로 실제 민심과 동떨어진,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ARS 여론조사의 경우 젊은 사람들의 응답률이 떨어져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여지는 많다. 하지만 이의 제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해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도 있고, 정치공세로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여론조사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에 여심위를 꾸려 심의하는 것이다.”
    임 대표는 현재 서울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서울여심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한국정치조사협회 차원에서 ARS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특별히 결의하거나 한 것은 없다.”
    ▼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여심위)에서 ‘문제가 있다’고 인용하는 여론조사는 어떤 경우인가.
    “중요한 것은 (여론을 왜곡하려는) 의도성이 있었느냐 여부다. 조사가 합당한 절차를 통해 이뤄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통계적 임계치라는 것이 있는데, 임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학자마다, 전문가마다 판정 기준이 다르다. 서울여심위의 경우 위원 8명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어느 지점이 문제가 있는지 토론을 거쳐 위원들 간 합의해 결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의도성 여부다.”
    ▼ 여론조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여심위가 판단하고,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 여론조사업체 대표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선관위에서 행정처분을 했다면 상당히 명백한 경우라는 얘긴데,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행정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 과태료 처분을 받은 여론조사업체 대표가 여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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