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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종파 분쟁에 가로막힌 ‘테헤란의 봄’

이란 총선 앞두고 보혁 대결 팽팽…경제제재 해제와 사우디 대립이 변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종파 분쟁에 가로막힌 ‘테헤란의 봄’

이란 중도·개혁파와 강경·보수파가 2월 26일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체 290명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 1만2000여 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2012년 총선과 비교해 예비후보 등록 수가 70% 증가했으며,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예비후보들의 자격심사를 거쳐 2월 9일 최종 후보 명단을 발표한다.
이번 총선은 이란이 앞으로 정치 개혁을 적극 추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등 서방과의 핵협상을 주도해온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명운도 이번 총선 결과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취임한 중도·개혁 성향의 로하니 대통령은 2017년 재선에 도전할 계획이다. 핵심 변수는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시기 및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종파 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 대통령은 2015년 7월 강경·보수파의 반발에도 미국 등 서방과의 핵협상을 타결했다. 미국 등 서방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 합의안 이행 여부를 검증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다. 이란은 저농축 우라늄 재고분 11t을 러시아로 반출하는 등 핵 합의안을 착착 이행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과 중도·개혁파는 총선 이전인 1월 말이나 2월 초 미국 등 서방이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도·개혁파는 경제제재 해제라는 결과물을 유권자의 손에 쥐어줘야 선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호메이니 손자가 선거 나선 이유

반면 보수·강경파는 경제제재 해제라는 ‘악재’가 최대한 총선 이후로 늦춰지기를 바라고 있다. 군부와 의회를 장악해온 보수·강경파는 총선에서 중도·개혁파가 대약진할 경우 자신들의 기득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다. 보수·강경파는 제재 조치로 경제가 파탄 났는데도 국영기업은 물론 민간기업까지 장악해왔고, 각종 이권을 챙기면서 거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이 때문에 보수·강경파는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보수·강경파를 대표하는 이란 국가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76)가 연일 미국 등 서방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하메네이는 최근 이란 군부의 핵심인 혁명수비대 사령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돈과 성(性)을 앞세워 이란에 침투해 국민의 이념과 믿음, 생활방식을 바꾸려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란 최고성직자이기도 한 하메네이는 1979년 이슬람혁명을 주도하면서 신정체제를 구축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89년 서거한 이후 지금까지 27년간 국가 최고지도자직을 유지해왔다.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인준 해임권, 군사령관 임명권 등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다.
눈여겨볼 대목은 하메네이의 권위와 위상이 과거만큼 강력하지 못해 호메이니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사실. 호메이니는 1980년 9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3개 도서와 샤트알아랍 수로에 대한 주권을 선언하면서 침공해오자 이에 맞서 전쟁을 벌였고, 이란-이라크전쟁은 88년까지 이어지면서 양국은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를 입었다. 하메네이 역시 핵개발을 추진하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국민의 고통이 커지자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서방의 압력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던 하메네이는 강경·보수파의 반대를 무마하면서 로하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란 국민은 더는 하메네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
중도·개혁파는 이 틈을 노려 ‘금기사항’인 하메네이의 후계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중도·개혁파 원로이자 성직자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81) 전 대통령은 “국가지도자운영회의가 하메네이의 후계자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는 성직자인 86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기구로,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임기 8년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원 선거도 이번 총선과 함께 치른다.
하메네이의 임기는 종신이지만, 올해 76세로 지난해 3월 사망설이 나돌았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라프산자니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호메이니의 손자이자 성직자인 하산 호메이니(43)가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원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하산은 라프산자니를 비롯한 중도·개혁파 원로들로부터 출마 요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도·개혁파는 2013년 대통령선거 때 결집해 로하니 대통령을 당선케 한 바 있다. 하산은 가문의 배경 때문에 강경·보수파가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후보다. 하산은 “이란 청년들이 할아버지 호메이니의 신념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서 ”할아버지의 유산인 법의 지배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젊은 층의 지지를 상당히 받고 있는 하산은 음악, 여성 인권, 사회적 자유 등에서 개혁적 성향을 보여왔으며, 축구 광팬으로 10대 때는 축구선수로도 활동했다.



사우디대사관 방화는 보수·강경파 기획 이벤트?

중도·개혁파는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젊은 층의 민주화와 정치 개혁 의지가 분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란의 전체 인구 8000만여 명 가운데 25세 이하가 44%를 차지한다. 젊은 층은 대부분 서방의 문화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익숙하다. 이란의 인터넷 보급률은 53%나 되며, 1100만 명이 모바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펼쳐진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이 선거 혁명의 방식으로 이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불거진 사우디와의 종파 분쟁은 보수·강경파 처지에선 ‘호재’다. 사우디 정부는 1월 2일 자국의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 등 테러 혐의자 47명을 처형했다. 알님르는 사우디에서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시아파의 권익보장운동을 해온 성직자로, 이란 정부는 알님르가 처형되자 사우디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하메네이는 “사우디 정치인들이 신의 복수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보수·강경파 인사들의 사우디 규탄 발언이 이어지면서 분노한 과격 시위대는 테헤란 주재 사우디대사관을 침입해 건물 일부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질렀다. 양측의 대립으로 1400년 묵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사우디의 의도는 이란이 경제제재 해제 후 중동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을 견제하려는 데 있다. 사우디는 저유가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데다 수니파 국가들에 대한 장악력도 예전만 못하다. 우방인 미국과도 최근 들어 소원하고,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통치력도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국내외적인 위기를 정면 돌파하고자 이란과 단교한 것이다.
문제는 이란의 대응이다. 하메네이와 보수·강경파가 이번 사태를 국내 정치적으로 더욱 악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강경파는 사우디와의 종파 분쟁이 더욱 격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총선에서 중도·개혁파의 득세를 막겠다는 속셈이다. 심지어 사우디대사관 방화는 로하니 대통령과 중도·개혁파를 약화시키기 위해 보수·강경파가 기획한 이벤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이 과격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시위대는 말을 듣지 않았고, 사우디대사관 앞을 경비하던 혁명수비대와 경찰은 시위대의 방화를 아예 묵인하기까지 했다.








주간동아 2016.01.13 1021호 (p60~61)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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