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2016.01.13

커버스토리 | 속수무책 북핵

8·25합의가 오판 불렀다

韓美 공조에만 매달리는 한국…대통령은 ‘고독한 결단’ 내려야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6-01-11 14: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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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웃었을 게 분명하다. 목함지뢰 사건으로 촉발한 위기를 북한의 유감을 받아내는 8·25합의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요 서방국가 원수로서는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고 북한과의 대화에도 나섰다. 8·25합의가 있기 전 그가 우리 군에게 요구한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라”였다.
    1월 6일 수소탄을 터뜨렸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박 대통령은 심각했을 것이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고 정면 도전”이라며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연 북한으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하고 이번에도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목함지뢰 사건에 안일하게 대응했다. 재개한 우리의 심리전 방송 때문에 북한군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지만, 중국 전승절에 참가하고자 8·25합의를 해준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책이었다. 이때 북한은 이미 4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정도 카드가 있으니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어 다시 한 번 우리의 대북 심리전을 차단하려 했을 것이다.
    만일 장사정포를 비롯한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후방 이전 등 한층 구체적이고 큰 것을 요구하며 회담을 길게 끌어갔다면 어땠을까. 전승절에 박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중국은 북한을 더욱 압박했을 게 분명하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가장 원하는 ‘북·중 갈등의 심화’를 유도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박 대통령은 회담 시작 이틀 만에 합의를 승인했다. 당시 이미 제기됐던 4차 핵실험에 대한 우려는 무시해버렸다.



    ‘韓美 공조’만으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8·25합의문에 ‘남측은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확성기 발송을 중단한다’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그러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북한은 8·25합의를 깬 것은 남측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1차와 2차, 3차 핵실험을 했을 때 남측이 가만히 있었으니, 4차만 비정상적인 사태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반발할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은 박 대통령을 고독한 결심을 해야 하는 처지로 몰아넣을 공산이 크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대로 ‘전쟁은 정치의 연속’임을 보여줘야만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명분을 만든 북한이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면 남북은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를 향해 바로 달려가게 된다. ‘치킨게임’의 시작이다.
    이때 군 통수권자인 박 대통령은 우리 군에 “북한 핵을 ‘불가역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다.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는 적의 공격을 막는 억제전력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적의 무기를 격파할 타격무기 준비에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앞서의 물음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러한 한계는 여실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질문에 공군은 “F-15K에 슬램이알(SLAM-ER) 공대지미사일을 달고 출격시켜 격파할 수 있다”, 해군은 “북한 영해 바깥으로 침투시킨 손원일급 잠수함에서 잠대지미사일인 현무-3A를 쏴 격파할 수 있다”, 육군은 “유도탄사령부에서 현무-2와 에이타킴스(ATACMS·전술지대지미사일)를 발사해 격파할 수 있다”고 보고할 것이다. 다시 대통령은 이러한 보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북한이 위기를 맞으면 총참모장을 비롯한 조선인민군 지휘부는 “명령만 내리면 단번에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한다. “총폭탄이 되자”는 다짐은 수도 없이 해왔다. 우리는 이를 가소로운 군사독재문화로 여겨왔지만, 위기가 심각해지면 ‘우리 군은 과연 총폭탄이 될 수 있는가’ 의문을 품는 국민이 늘어날 것이다. 박 대통령과 군은 이러한 의문을 잠재우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김관진-한민구-이순진으로 이어지는 군 수뇌부가 제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 급작스럽게 북한의 핵시설을 점령하는 작전계획의 준비다. 작전계획 5027은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 육군 20지원사령부 예하 여단이 한반도로 날아와, 미 공군과 육군 특수전사령부 등의 지원을 받아가며 영변을 비롯한 북한 핵시설을 장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20지원사령부와 비슷한 임무를 하는 우리의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화방사)는 북한의 화학전, 생물학전 시설을 급습해 점령한다.


    ‘상응하는 대가’ 치르게 하려면

    우리는 외교적으로 북핵 문제를 푸는 것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해결하는 문제도 미국에 맡겨놓았다. 그렇다 보니 북핵 문제가 일어나면 한미 공조만 강조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박 대통령은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인 그는 화방사로 하여금 단독으로 북한 핵시설을 기습 점령하는 능력과 계획을 갖추도록 지시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를 공군과 해군, 육군 특수전사령부 등이 지원하는 작전계획을 만들게 해야 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당한 후 우리는 북한의 기습 도발을 응징하는 국지도발대비계획을 만들었다. 천안함·연평도 같은 사건만 국지도발로 볼 수는 없다.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역시 심각한 국지도발로 보고 그에 대한 작전계획을 세운 다음, 동원할 부대들은 그 계획을 연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 없이 수소폭탄 완성으로 이어지는 5차, 6차 핵실험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무너질 수 있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핵겨울’이 싫다면, 포클랜드 섬을 아르헨티나에 점령당했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박 대통령은 고독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 치킨게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면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
    확성기 방송 재개를 시작으로 국가정보원 등으로 하여금 북한에서 민주화혁명이 일어나게 하는 공작도 결사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 치러야 할 ‘상응하는 대가’다. 과거 정권처럼 한미 2+2회담에 나서면 미국은 한국을 다독이며 자국산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릴 것이다. 일본의 협조를 받겠다고 나선다면 위안부 합의를 마무리 지은 현 정부의 노력은 친일행위로 매도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비핵화선언은 무너졌다고 선언한다면 그 화룡점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주변국을 긴장케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연거푸 당하며 무너진 이명박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듣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전 이미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제 그는 8·25합의와 어설픈 방위산업 비리 수사를 잊고, 강한 지도력을 갖춘 군을 만드는 작업에 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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