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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붕괴 초읽기… 미래 짊어질 아이들 건강 누가 지키나

전국 전공의 모집률 15.9% 역대 최저… 전문가 “대통령 직속 협의체 만들어 대응해야”

  •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소아과 붕괴 초읽기… 미래 짊어질 아이들 건강 누가 지키나

2021년 9월 한 아이가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9월 한 아이가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단지 건너편 ××소아과 폐업했다네요. 얼마 전 갔을 땐 아무 얘기 없었는데 ㅠㅠ 집 가까워 걸어 다닐 수 있던 소아과가 문을 닫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른 분들은 헛걸음하지 않으시길….”

경기 고양시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맘카페에 1월 4일 올라온 게시물 내용이다. 이 글엔 ‘자주 가던 소아과인데 이렇게 갑자기 없어지다니’ ‘다른 괜찮은 소아과가 있으면 추천해달라’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동네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의원 폐업으로 부모들이 곤란을 겪는 건 비단 고양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네이버 인터넷 카페에 ‘소아과 폐업’을 검색하면 지역을 막론하고 소아과가 사라져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의 사연이 2577건이나 검색된다. “동네의 유일한 소아과가 문을 닫아 이제는 아이와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는 내용부터 “한 소아과가 폐업한 뒤 다른 소아과에 환자가 몰려 대기 시간이 1시간 이상으로 늘었다”는 하소연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수요 감소, 낮은 수익, 고강도 업무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소아과 의료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12일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전국 662곳의 소아과 의원이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평균 132곳의 소아과 의원이 문을 닫은 셈이다. 대학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인천 가천대길병원은 소아과 의료진 부족으로 2월 말까지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대목동병원, 강남세브란스, 한양대병원 등 서울 주요 대학병원도 소아 환자의 응급실 진료를 전면 중단하거나 축소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소아과의 위기를 ‘도미노’에 비유한다. 개원의, 페이닥터, 전공의, 대학병원이라는 4개의 도미노가 연쇄적으로 쓰러졌다는 의미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주간동아’와 전화 통화에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개원의가 병원 문을 닫으니 페이닥터들이 갈 곳을 잃었고 이 모습을 본 예비 전공의는 소아과에 지원하기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병원의 경우 전공의 없이는 과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아과 진료를 더는 볼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전국 소아과 수련병원의 전공의 모집률은 15.9%(207명 모집에 33명 지원)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긴급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국 소아과 수련병원 96곳 중 72곳(75%)은 ‘향후 진료를 축소할 예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소아과가 ‘기피과’가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저출산에 따른 의료 수요 감소, 타 과보다 부실한 수익 구조, 혹독한 업무 강도 등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소아과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 씨는 “하루 평균 80명은 진료를 봐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지금은 30명만 와도 많이 온 것”이라며 “출생률이 줄고 있어 앞으로는 상황이 더 어려워질 텐데 소아과 간판을 떼고 일반의원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는 B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성형외과 등 미용 환자 1명 진료비가 소아 환자 50명 진료비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국내 소아과 평균 진료비는 중국, 캄보디아보다 낮은 10달러(약 1만 원) 수준이다.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소아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는 데다, 환자가 아이들이다 보니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많지 않은 탓이다. 대학병원에서 소아과를 유지할 유인이 적은 이유다.



“외국 가서 아이 치료받아야 할 판”

소아 환자는 성인에 비해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에너지도 많이 소모된다. 의료진이 환아와 보호자 양쪽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는 애로점도 있다. 이로 인해 소아과는 다른 과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2019년에는 가천대길병원 소아과 2년 차 전공의가 주당 110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대로 소아과가 붕괴되면 아동 건강 안전망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특히 중증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곧장 생사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허인영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사무총장은 주간동아와 전화 통화에서 “소아암이나 소아백혈병 환아는 응급실을 찾는 빈도가 높고 치료 과정에서도 소아과 협진이 필수적”이라며 “향후 소아과 진료를 축소하는 대학병원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여 ‘이제 중환을 가진 아이는 외국에 가서 치료받아야 할 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소아과 붕괴 현상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는 1월 1일부터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 보상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 등 권역별 어린이병원 9곳에서 소아과 진료로 발생하는 의료 손실을 보상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서울대대어린이병원의 경우 수십 년 전부터 한 해에 100억 원 이상 적자를 내왔는데 이는 소아과 진료를 보면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면서 “제값을 안 쳐주다 이제 와 겨우 적자만 면하게 해주는 것을 크게 생색내듯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빠른 시일 내 대통령 직속 협의체를 만들고 남아 있는 소아과 의사, 병원 등 자원을 어떻게 지켜낼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1372호 (p48~49)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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